아국(我國)의 자연환경(自然環境)
아국(我國)은 아세아대륙(亞細亞大陸) 의 동북부(東北部)에 뻗어 나온 반도(半島)로서 삼면(三面)이 환해(環海)하고 앞으로 태평양(太平洋)과의 사이에 일본열도(日本列島)가 병풍(屛風)처럼 가리웠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地理的條件)으로 말미암아 고래(古來)로 대륙(大陸)에서 흥망(興亡)한 여러 나라 세력(勢力)이 우리를 덮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며 또 일본(日本)의 눈길이 언제나 우리에게 쏠려 있음으로 우리는 금후(今後)로도 항상(恒常) 대륙(大陸)을 돌아보고 일본(日本)을 내다보면서 생존(生存)하여야만 할 것이다.
아국(我國)은 북위(北緯) 삼십삼도(三十三度)에서 사십삼도(四十三度)까지의 사이에 있어서 가장 살기 좋은 온대(溫帶)의 한 지방(地方)이며 한서(寒暑)가 모두 생물(生物)이 서식(棲息)하기에 알맞고 또 절후(節候)를 따라서 우설(雨雪)이 고르므로 여러 가지 곡식(穀食)이 잘 자란다. 더욱이 공기(空氣)가 맑고 아름다운 산천(山川)이 어리어서 경치(景致)좋기로 세계(世界)에서 유명(有名)하고 지하(地下)에는 금(金) 은(銀) 동(銅) 철(鐵)을 비롯한 모든 광물(鑛物)이 풍부(豊富)하며 바다에는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부딪쳐서 각종(各種)의 어물(魚物)이 많이 잡힌다.
아국(我國)과 대륙(大陸)과의 지경(地境)은 근세(近世)에 와서 백두산(白頭山)과 및 거기에서 흘러내리는 두만강(豆滿江) 압록강(鴨綠江)으로 하였으나 옛날은 송화강(松花江)기슭의 만주(滿洲)벌판이 아국(我國)의 강토(疆土)이었고 또 그와 반대(反對)로 국경선(國境線)이 지금(只今)보다 축소(縮小)된 일도 있었으나 그러나 오늘날 삼팔선(三八線)이란 부자연(不自然)한 선(線)을 긋고 남북(南北)이 두 동강이로 나뉘게 된 것은 역사적(歷史的)으로 그러한 기록(記錄)이 있는 것도 아니오 또 우리민족(民族)이 이를 승인(承認)한 것도 아니다. 아국(我國)은 세계(世界)어느 나라보다도 순수(純粹)한 단일(單一)한 민족(民族)으로서 이 부자연(不自然)한 선(線)은 불원(不遠)하여 반드시 소멸(消滅)시켜야 할 것이다.
아국(我國)의 척량산맥(脊梁山脈)은 해발(海拔) 이천칠백여(二千七百餘) 미(米 미터)의 백두산(白頭山)에서 비롯하여 함경도(咸鏡道)땅에 개마(蓋馬)의 높고 넓은 고원지대(高原地帶)를 이루고 남(南)으로 내려와서 강원도(江原道)와의 사이에 철령(鐵嶺)을 이루니 옛날 여기에 관문(關門)을 두어서 출입(出入)하는 행인(行人)을 수비(守備)하였기 때문에 이를 중심(中心)으로 강원도(江原道)를 관동(關東), 함경도(咸鏡道)를 관북(關北),평안도(平安道)를 관서(關西)라 부르는 이름이 생겼다. 이 척량산맥(脊梁山脈)은 강원도(江原道)의 한복판을 타고 내려오면서 금강산(金剛山) 오대산(五臺山)같은 명산(名山)을 내고 경상도(慶尙道)와의 지경(地境)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이 되고 다시 소백산맥(小白山脈)으로 뻗어 나와서 지리산(智異山)을 이루고 그 여맥(餘脈)이 멀리 제주도(濟州道)의 한라산(漢拏山)에까지 미쳤다. 충청도(忠淸道)와 경상도(慶尙道)와의 사이에 죽령(竹嶺), 조령(鳥嶺)의 관문(關門)이 있어 예로부터 남북(南北)이 통(通)하는 길목이 되었고 경상도(慶尙道)를 영남(嶺南)이라 함은 이 두 영(嶺)의 남(南)쪽에 있기 때문이다. 충청도(忠淸道)를 호서(湖西)라하고 전라도(全羅道)를 호남(湖南)이라 함은 신라(新羅)때에 지금(只今)의 김제(金堤)땅에 벽골제(碧骨堤)라는 큰 못을 파고 이 못이 호수(湖水)처럼 크고 넓다하여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이 아국(我國)의 지세(地勢)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이 북(北)에서 남(南)으로 뻗어 있고 이 산맥(山脈)을 분수령(分水嶺)으로 하여 동(東)은 경사(傾斜)가 급(急)하나 서(西)와 남(南)은 넓은 평야(平野)가 열리고 대하(大河)가 흘러내린다. 그러므로 문화(文化)는 언제나 동북부(東北部)지방(地方)보다 서남부(西南部)지방(地方)에서 먼저 열리었다. 강(江)은 북(北)으로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이 있어서 다 함께 백두산(白頭山)에서 발원(發源)하였으나 하나는 서(西)로 흘러서 황해(黃海)에 들어가고 하나는 동(東)으로 흘러서 동해(東海)에 들어갔다. 이 두 강(江)은 근세(近世)에 와서 아국(我國)의 북경(北境)이 되고 하나는 서(西)로 중국대륙(中國大陸)과의 교섭(交涉)의 관문(關門)이 되고 하나는 북(北)으로 여진족(女眞族)의 내왕(來往)하는 길목이 되었다. 그 중(中)에서도 압록강(鴨綠江)은 길이가 이천리(二千里)에 가까워서 아국(我國)에서 제일(第一) 큰 강(江)이며 고구려(高句麗)는 이 강(江)안에서 흥(興)하였고 남(南)으로 대한해협(大韓海峽)에 들어가는 낙동(洛東)은 신라(新羅)의 발상지(發祥地)이오 그밖에 청천강(淸川江), 대동강(大洞江), 예성강(禮成江), 임진강(臨津江), 한강(漢江),금강(錦江)등(等) 황해(黃海)로 흘러 들어가는 강(江)이 대부분(大部分)이오 예로부터 이러한 강안(江岸)이 역사(歷史)의 무대(舞臺)로 등장(登場)하였다. 특(特)히 대동강(大洞江)은 고조선(古朝鮮)의 중심지(中心地)로서 나중에 고구려(高句麗)의 도읍(都邑)이 되었고 예성강(禮成江)과 임진강(臨津江) 어귀는 고려(高麗)의 근거지(根據地)이오 한강(漢江)은 삼국시대(三國時代)에도 유명(有名)한 쟁탈지(爭奪地)가 되고 근세이래(近世以來)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안(江岸)의 서울이 아국(我國)의 수도(首都)이고 금강(錦江)은 백제말엽(百濟末葉)의 도읍(都邑)이었다.
고대(古代)의 도읍(都邑)은 방비(防備)의 편리(便利)와 풍산지대(豊産地帶)를 가진 것이 주요(主要)한 조건(條件)이 되어 있었으므로 역대(歷代)의 국도(國都)는 모두 대강(大江)의 험(險)과 평야(平野)를 가진 강안(江岸)을 취(取)하였던 것이다.
아국(我國)의 기후(氣候)는 대륙(大陸)과 대양(大洋)과의 사이에 갈마드는, 일사량(日射量)의 차(差)로 말미암아 생긴 계절풍(季節風)의 영향(影響)을 받아서 좌우(左右)된다. 시월(十月)에서부터 삼월(三月)까지는 대륙계절풍(大陸季節風)이 불어서 춥고 가물며 사월(四月)에서부터 구월(九月)까지는 비교적(比較的) 약(弱)한 해안계절풍(海岸季節風)이 불어서 비가 많이 온다. 동일(同一)한 위도(緯度)의 타국(他國)에 비기어 아국(我國)의 겨울이 더욱 춥고 또 일년강우량(一年降雨量)의 사분지삼(四分之三)이 여름에 있음은 이 때문이고 아국(我國)의 농업생산(農業生産)이 이러한 기후(氣候)의 지배(支配)를 받음은 물론(勿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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