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顧談 (서당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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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顧談

二十二歲에 咸興農村에서 私立學校 敎員으로 있을때에 漢學을 하는 老人집에 우리나라 歷史 大東紀年이라는 冊이있는 것을 發見하고 그것을 빌려보았다. 이때는 日本한테 侵略當한지 八年이라 우리나라 歷史冊을 보기만하면 押收하는 까닭에 歷史冊을 얻어 보기가 極히 어려웠다. 그 冊을 보고 이 나라에 나서 제나라歷史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 冊을 秘密히 읽었다. 또 그 이웃洞里에 燃藜室記述이라는 歷史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도 秘密히 빌려 읽었다. 그때 每日申報에 朝鮮儒敎淵源이라는 論文이 繼續 發表되었는데 우리나라 歷史가 全然 發表되지 못하고 있던 當時에 이 論文은 내 歷史硏究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學校에서 退勤하여 宿所에 돌아오면 新聞에서 꼭 이 論文을 베껴가지고 그날 밤으로 이것을 精讀하였다. 그 學校를 그만둔 後에 己未年의 三一運動을 겪고 이를 契機로 사람들 中에서 우리 歷史를 알아야겠다는 民族意識이 높아지고 나 亦是 우리歷史를 더 깊이 硏究해야겠다는 생각이 切實해서 그해 가을에 歷史遺蹟을 探訪하기 爲하여 期限없는 南道旅行을 떠났다. 서울에 와서 몇日間 여러 史蹟을 돌아보고 더 南으로 내려가서 公州 扶餘 恩津 鷄龍山을 거쳐서 淸州 報恩 錦山을 보고 全州에 들어갔다가 萬頃江을 따라 내려가다 旅費가 떨어졌다. 할 수 없이 金堤郡 農村의 어느 私立學校 敎員으로 就任하여 一時지내기로 했는데 그만 六年을 보냈다. 이 學校에 있는 동안에 全北과 全南에 있는 史蹟을 두루 돌아보고 여름 겨울 放學을 利用하여 慶州 金海等地의 史蹟을 찾아보았다. 이 學校를 그만둔 後에는 北間島와 西間島를 돌아다니면서 古代 祖上들이 經營하던 滿洲方面의 史蹟을 찾아보았다. 歷史硏究 十年間 한 가지 풀리지 않는 問題는 우리나라의 古代에는 農民이 全人口의 九割이 넘었는데 歷史冊은 主로 王室과 貴族들의 歷史로 되어있고 農民의 歷史는 全然 記錄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었다. 나는 農民의 歷史를 알아보려고 하던次에 朝鮮農民이라는 月刊雜誌가 發刊되어 거기에 入社하여 農村問題를 硏究하면서 農民歷史를 아울러 硏究했다. 이렇게 五,六 年 歷史를 硏究하는 동안 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歷史는 되는대로 發展變化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原理와 法則을 따라서 發展하고 變化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다시 이 原理와 法則을 硏究하기 始作했다.

먼저 읽은 것이 西洋哲學이오 여기에 四,五年의 歲月을 쏟았는데 여기에서는 아무 所得이 없었다. 다음에는 宋代의 程朱哲學인 理氣說을 硏究하고 우리나라 先賢들의 學說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아무런 原理와 法則을 發見치 못하고 다시 易學속에는 무엇이 있을까하고 八一五解放 三年前에 처음으로 易學에 들어가니 이것이 내가 易學을 硏究하기 始作한 動機다. 易學은 宇宙萬物에 모두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生長成法則이 있고 時運에도 生長成法則이 있고 時運에 生長成法則이 있는 까닭에 人類歷史에도 또한 이러한 法則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宇宙의 法則이 바로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이 되는 것이오 여기에서 비로소 이제까지 追求하던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을 大略 斟酌한 것이오 그 實은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이 곧 易學原理의 主要部分임을 알게 되었다. 1967年回顧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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