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朝建國
太祖 李成桂의 先祖는 本是 咸鏡道에 살았는데 그 高祖父가 元나라에 들어가서 벼슬을 하고 지금의 咸鏡北道 慶興에 살더니 太祖의 어버이 李子春은 永興에 살고 거기서 太祖를 낳으니 이때 永興은 雙城總督府로 되어 元나라에 屬하였다. 恭愍王때에 柳仁雨가 雙城을 칠 때에 李子春이 이를 도와서 功이 있었음으로 朔方道萬戶 兼 兵馬使가 되어 咸州를 中心으로 하여 큰 勢力을 가졌고 이때 太祖는 나이 젊었으나 特出한 武藝가 있었음으로 咸州 以北에 살고 있는 女眞族들의 推仰을 받고 있으며 後日에 太祖가 자주 큰 功을 세운 것도 그 手下에 佟豆蘭 以下 女眞 出身의 猛將을 많이 가지고 있는 까닭이라 한다.
太祖가 建國한 이듬해에 國號를 고쳐서 朝鮮이라 하고 三年 後에 都邑을 지금의 서울에 옮기고 景福宮을 짓고 城을 쌓아서 五百年 王業의 基礎를 닦았다.
이조(李朝)역대표(歷代表)
태조(太祖) |
정종(定宗) |
태종(太宗) |
세종(世宗) |
문종(文宗) |
단종(端宗) |
임신(壬申) |
기묘(己卯) |
신사(辛巳) |
기해(己亥) |
신미(辛未) |
계유(癸酉) |
7 |
2 |
18 |
32 |
2 |
3 |
세조(世祖) |
예종(睿宗) |
성종(成宗) |
연산군(燕山君 |
중종(中宗) |
인종(仁宗) |
병자(丙子) |
기축(己丑) |
경유(庚酉) |
을묘(乙卯) |
병인(丙寅) |
을사(乙巳) |
13 |
1 |
25 |
11 |
39 |
1 |
명종(明宗) |
선조(宣祖) |
광해군(光海君 |
인조(仁祖) |
효종(孝宗) |
현종(顯宗) |
병오(丙午) |
무진(戊辰) |
을유(乙酉) |
계해(癸亥) |
경인(庚寅) |
경자(庚子) |
22 |
41 |
14 |
27 |
10 |
15 |
숙종(肅宗) |
경종(景宗) |
영조(英祖) |
정조(正祖) |
순조(純祖) |
헌종(憲宗) |
을묘(乙卯) |
신축(辛丑) |
을사(乙巳) |
정유(丁酉) |
신유(辛酉) |
을미(乙未) |
46 |
4 |
52 |
24 |
34 |
15 |
철종(哲宗) |
광무황제(光武皇帝) |
융희황제(隆熙皇帝) |
|
|
|
경술(庚戌) |
갑자(甲子) |
정미(丁未) |
|
|
|
14 |
44 |
4 |
|
|
|
비고(備考)
一. 고려(高麗)왕실(王室)이 없어진 것은 태조(太祖)가 한양(漢陽)에 이도(移都)하니 전(全) 백성(百姓)이 송경(松京)에 회귀(回歸)하기에 뜻을 두니 태종(太宗)이 부하(部下)로 하여금 망월대(望月臺)를 불살라 버리라
二. 개국(開國)초(初)에 무국호(無國號)하여 고려권지국사(高麗權知國事)라 칭(稱)하고 명국(明國)에서 태조(太祖)가 왕위(王位)에 오름을 승낙(承諾)받고 화녕(和甯, 寧)과 조선(朝鮮)이라는 두 이름에서 조선(朝鮮)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이조(李朝)는 명(明)의 아유국(阿諛國))
三. 태조(太祖)는 백성(百姓)을 위하여 혁명(革命)함이 아니라 다만 일생(一生)에 왕위(王位)를 차지하려고 명국(明國)에 아유(阿諛)해서 겨우 임금이 되니 이태조(李太祖)는 명(明)에서 명령(命令)하면 모두 응(應)하였다.
'我國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王位爭奪 (서당국사) (0) | 2015.02.18 |
---|---|
李朝政治 (서당국사) (0) | 2015.02.18 |
高麗의 滅亡 (서당국사) (0) | 2015.02.17 |
外國關係 (서당국사) (0) | 2015.02.17 |
政治의 紊亂 (서당국사) (0) | 2015.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