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設事業
土地制度
土地制度는 太祖가 新羅의 舊制를 襲用할 것을 原則으로 定하고 萬事 草創中에 있어 그 細則을 定치 못하더니 五世 景宗때에 이르러 비로소 全國의 土地를 모두 公田으로 하고 均田制에 依하여 授田收田의 法을 確立하였다. 그 法은 朝廷의 文武百官으로부터 府兵閑人(官吏에서 물러난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身分과 職位에 따라서 農事지을 땅과 柴草(땔감)로 쓸 土地를 아울러 주니 이를 田柴科라고 한다. 田柴地는 子孫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오 그 받은 사람이 死亡하거나 退職하면 國家에 返還하는 것이 原則이며 府兵은 二十歲에 田을 받고 六十歲에 이르러 도로 바치는 法이었다. 一般 田柴科外에 功蔭田柴科란 것이 있어서 國家에 功勳을 세운 사람이나 또는 그 子孫에게 주어서 世襲으로 認定하였으며 또 그밖에 公廨田(官廳의 經費를 쓰기 爲한 것) 寺院田(寺院의 經費를 爲하여 주는 것) 內桂田(王室의 財源으로 쓰는 土地) 祿科田(官吏들의 生活을 돕기 爲하여 주는 것)等이 있었다. 이리하여 土地는 모두 國有로하고 租權을 가지고 있어 土地의 買賣를 禁하고 그 兼倂의 弊를 防止하였다. 農民은 十六歲가 되면 반드시 土地를 받도록 되어 있으므로 子孫이 出生하는 때 그 出生을 登錄하여야 그 地를 받는 關係로 戶籍에 빠지는 사람이 없고 官吏가 罪를 지으면 免職이 되는 同時에 그 받은 바의 土地를 빼앗겨서 生活의 길이 끊어지게 됨으로 官吏들이 모두 일에 充實하고 淸廉하였으니 이것이 高麗初期 國勢가 隆盛한 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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