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중운동의 극치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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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節 중(中)과 화(和)

 

‣화(和)는 중운동(中運動)의 극치(極致)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중운동(中運動)을 행(行)하고 있음은, 만물(萬物)로 하여금 모두 통일(統一)되어 화(和)를 얻게 하기 위(爲)함이니, 화(和)라 함은 그 체(體)의 조직(組織)은 각기(各其) 독자(獨自)하고 있으되, 그 용(用)의 운행(運行)은 서로 자연(自然)스럽게 조화(調和)하여 편(偏)치 아니하고 국(局)치 아니한 상태(狀態)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본원(本源)이 되고 있는 천지(天地)․산택(山澤)․뇌풍(雷風)․수화(水火)의 팔물(八物)도 또한 운행(運行)하여 이 화(和)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지건지순(至健至順)한 덕행(德行)은 이간(易簡)이되고, 산택(山澤)의 비고진열(卑高陳列)한 형상(形狀)은 질서(秩序)가 되고, 뇌풍(雷風)의 동(動)하고 요(撓)하는 작용(作用)은 성기(聲氣)가 되고, 지상(地上)의 수화(水火)는 곧 천상(天上)의 일월(日月)이라, 수화(水火)와 일월(日月)은 천지(天地)의 중기(中氣)로서 조절작용(調節作用)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간(易簡)으로써 물(物)을 생생(生生)하고 질서(秩序)로써 물(物)의 순서(順序)와 정위(定位)를 정제(正齊)하고, 성기(聲氣)로써 물(物)을 고무(鼓舞)하고, 중기(中氣)의 조절작용(調節作用)은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여, 냉(冷)으로써 열(熱)을 제(濟)하고 열(熱)로써 냉(冷)을 제(濟)하고, 한번 주(晝)하고 한번 야(夜)하여,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대대관계(對待關係)를 조화(調和)하여 써 중운동(中運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도 화(和)로써 극치(極致)를 삼나니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政寬則民慢 慢則糾之以猛 政猛則民殘 殘則施之以寬 寬以濟猛 猛以濟寬 政是以和 = 정(政)이 관(寬)한즉 민(民)이 만(慢)하나니, 만(慢)한즉 규(糾)하기를 맹(猛)으로써 하고, 정(政)이 맹(猛)한즉 민(民)이 잔(殘)하나니, 잔(殘)한즉 시(施)하기를 관(寬)으로써 한다. 관(寬)하여 써 맹(猛)을 제(濟)하고, 맹(猛)하여 써 관(寬)을 제(濟)하는지라, 정(政)이 이로써 화(和)한다」【註一】하니, 관(寬)은 유완(柔緩)함이오, 맹(猛)은 엄급(嚴急)함이오, 만(慢)은 태만(怠慢)함이오, 잔(殘)은 조잔(凋殘)함이라, 이는 정치(政治)는 화(和)로써 극치(極致)를 삼는데 관(寬)과 맹(猛)이 상제(相濟)한 연후(然後)에 화(和)를 얻을 수 있고, 또 관(寬)과 맹(猛)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가(可)히 편승편패(偏勝偏敗)치 못할 것을 말함이오, 또 말하되 「詩曰 不競不絿 不剛不柔 布政優優 百祿是遒 和之至也 = 시(詩)에 가로되 경(競)치 아니하고 구(絿)치 아니하고 강(剛)치 아니하고 유(柔)치 아니하고 정(政)을 포(布)함이 우우(優優)하니 백록(百祿)이 이에 주(遒)한다 하니 화(和)의 지극(至極)함이라」하니, 경(競)은 강(剛)함이오 구(絿)는 급(急)함이오 우우(優優)는 화(和)함이오 주(遒)는 취(聚)함이라, 이것도 강급강유(强急剛柔)가 모두 중(中)하고 절(節)하여 정치(政治)가 화(和)의 극처(極處)에 도달(到達)함을 말함이다.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있어서 천지(天地)의 이간(易簡)의 상(象)은 이간정치(易簡政治)가 되고, 산택(山澤)의 질서(秩序)의 상(象)은 전례(典禮)가 되고, 뇌풍(雷風)의 성기(聲氣)의 상(象)은 언사(言辭)가 되고, 수화(水火)의 조절(調節)의 상(象)은 조화(調和)가 되는 것이다. 원래(元來)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운행(運行)은 지대지건(至大至健)함으로 거기에는 스스로 질서(秩序)있는 행도(行度)가 정(定)하고 율동(律動)하는 성음(聲音)이 생(生)하나니, 이 행도(行度)와 성음(聲音)은 충어조수(虫魚鳥獸) 등(等)에 있어서는 동작(動作)과 명성(鳴聲)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언행(言行)이 되고, 정치(政治)에 있어서는 예악(禮樂)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수양론(修養論)과 정치론(政治論)에서 항상(恒常) 언행(言行)과 예악(禮樂)을 중요(重要)하게 말한 것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질서(秩序)있는 행도(行度)와 율동(律動)하는 성음(聲音)을 본받아야 하는 까닭이오, 다시 팔물(八物)에 취(就)하여는 산택(山澤)에서 전례(典禮)의 상(象)을 취(取)하고 뇌풍(雷風)에서 언사(言辭)와 풍악(風樂)의 상(象)을 취(取)한 것이며, 또 이 뜻을 역경조직(易經組織)에 명시(明示)하니,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초장(初章)으로부터 제칠장(第七章)에 이르기까지와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초장(初章)과 종장(終章)에 이간(易簡)의 이(理)를 말하고,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종장(終章)에 전례(典禮)를 말하고,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종장(終章)에 언사(言辭)를 말하니, 이는 중운동(中運動)에 합(合)하는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이간(易簡)․전례(典禮)․언사(言辭)가 가장 중요(重要)한 행사(行事)라 함을 말함이오. 역경(易經)의 상편(上篇)에 수화(水火)로써 종(終)하고 하편(下篇)에 또 수화(水火)의 교불교(交不交)로써 종(終)한 것은,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조화(調和)에 귀치(歸致)함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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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의 우로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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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易簡)의 우로(憂勞)

 

사람이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며, 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기 위(爲)하여는 역(易)에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 = 이간(易簡)하매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고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매 위(位)를 그 중(中)에 이룬다」【註二】하니, 위(位)라 함은 삼재(三才)의 위(位)이오 중(中)이라 함은 천지(天地)의 중(中)이라, 사람이 이간(易簡)의 이(理)를 본받아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하면, 일신(日新)하는 덕(德)이 가구(可久)하고 부유(富有)하는 업(業)이 가대(可大)하여,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룬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이간(易簡)의 이(理)를 본받아서 실천(實踐)함에는 반드시 우로(憂勞)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우로(憂勞)라 함은 시세(時勢)를 근심하고 세사(世事)를 걱정하는 지성(至誠)을 말함이니, 지성(至誠)은 진실(眞實)이므로 스스로 이간(易簡)의 길에 직통(直通)하는 것이다. 역(易)에 천지(天地)의 이간작용(易簡作用)을 말하되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盛德大業 至矣哉 = 만물(萬物)을 고(鼓)하되 성인(聖人)으로 더불어 우(憂)를 한가지로 아니한다」【註三】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어, 스스로 지성(至誠)하여 아무 사사(私邪)가 없고, 스스로 진실(眞實)하여 아무 허위(虛僞)가 없음으로,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에 스스로 이간(易簡)한 것이나, 사람은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음으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우(憂)하고 환(患)하고 노(勞)하고 면(勉)한 연후(然後)에 이간작용(易簡作用)에 합(合)할 수 있음을 말함이다.

이 우로(憂勞)라 함은 변설(辯舌)이나 문장(文章)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또 기월간(朞月間)을 면강(勉强)하여 학득(學得)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소위(所謂)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같은 것도 우로(憂勞)하는 지성(至誠)을 체(體)로 하지 아니하면, 그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가 의착(依着)할 근거(根據)를 얻지 못하고 허위(虛僞)에 흘러서, 한갓 세리(勢利)를 활쏘기하고 명예(名譽)를 낚시질하는 방편(方便)으로 되어, 스스로 기만(欺瞞)하고 세상(世上)을 기만(欺瞞)하여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적해(賊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명(有名)한 악양루기(岳陽樓記)에는 「嘗求古仁人之心 居廟堂之高則憂其民 處江湖之遠則憂其君 是 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也 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 일즉 고(古)의 인인(仁人)의 심(心)을 구(求)하건대 묘당(廟堂)의 고(高)에 거(居)한즉 그 민(民)을 우(憂)하고, 강호(江湖)의 원(遠)에 처(處)한즉 그 군(君)을 우(憂)하니, 이는 진(進)하여도 또한 우(憂)하고 퇴(退)하여도 또한 우(憂)함이라, 그런즉 하시(何時)에 낙(樂)하랴 반드시 가로되 천하(天下)의 우(憂)에 선(先)하여 우(憂)하고 천하(天下)의 낙(樂)에 후(後)하여 낙(樂)한다 할진저」하니, 이는 인인(仁人)은 벼슬에 있으면 민생(民生)을 근심하고 초야(草野)에 있으면 국사(國事)를 근심하여 진퇴(進退)가 모두 근심인데 오직 천하백성(天下百姓)을 모두 즐겁게 한 연후(然後)에 자기(自己)도 즐겨 하리라 함을 말함이니, 이 선우후락(先憂後樂)하는 심경(心境)이 곧 우국자(憂國者)의 마음이오, 이 마음에서 발로(發露)하는 행위(行爲)가 곧 이간작용(易簡作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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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와 경건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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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典禮)와 경건(敬虔)

 

만물(萬物)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이, 비록 지잡지동(至雜至動)하되 조금도 혼란(混亂)치 아니함은 자연적질서(自然的秩序)가 있는 까닭이니, 이 질서(秩序)를 사람의 사회생활(社會生活)에 적용(適用)한 것이 곧 전례(典禮)이다. 역(易)에 「聖人有 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 성인(聖人)이 써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보고 그 회통(會通)을 관(觀)하여 써 그 전례(典禮)를 행(行)한다」【註四】하니, 회(會)라 함은 사세(事勢)가 반착(盤錯)하고 중리(衆理)가 취회(聚會)하여 허다(許多)한 곡직(曲直)․난이(難易)가 있는 곳이오, 통(通)이라 함은 회(會)의 속에 질색구애(窒塞拘礙)가 있음을 통활(通闊)하는 것이오, 전례(典禮)라 함은 사람이 떳떳이 지켜야할 전장(典章)․절도(節度)․윤서(倫序)․의칙(儀則) 등(等)과 같은 것으로서 사람의 행위(行爲)에 일정(一定)한 분도(分度)를 설정(設定)하여 항상(恒常) 경건(敬虔)한 태도(態度)를 가지고 유탕(流蕩)․방종(放縱)에 흐르지 아니하게 함이다. 물(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는 반드시 중리(衆理)의 착잡(錯雜)과 또 그를 통활(通闊)하는 도리(道理)가 있는데, 거기에는 전례(典禮)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물(事物)이 순동(順動)하여 서로 문란(紊亂)치 아니하고 스스로 통(通)하는 것이오, 만일 전례(典禮)가 없으면 혼란분잡(混亂紛雜)하여 운행(運行)이 건체(蹇滯)되는 것이니, 사회(社會)가 도덕적(道德的)으로 무질서상태(無秩序狀態)에 빠지는 것은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례(典禮)를 준행(遵行)함에는 백천(百千)의 규정(規定)보다도 오직 경건(敬虔)하는 마음 하나가 주(主)가 되나니, 경건(敬虔)이라 함은 공경(恭敬)하고 엄숙(嚴肅)함을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예론(禮論)에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 임방(林放)이 예(禮)의 본(本)을 물은대 자(子) 가라사대 크다 물음이여 예(禮)가 그 사(奢)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검(儉)할지오, 상(喪)이 그 이(易)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척(戚)할지라」【註五】하여,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이 예(禮)의 근본(根本)이 됨을 말하니,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은 곧 경건(敬虔)하는 마음이다. 경건(敬虔)의 일이(一二) 예(例)를 들건대 음식(飮食)을 대(對)하여는 일죽일반(一粥一飯)이 그 내처(來處)의 용이(容易)치 아니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주지육림(酒池肉林)하는 불검(不儉)이 없을 것이오, 의복(衣服)을 대(對)하여는 일사일루(一絲一縷)의 물력(物力)이 간난(艱難)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입는다면 호화사치(豪華奢侈)하는 불손(不遜)이 없을 것이오, 사람을 대(對)하여는 비록 빈부(貧富)․강약(强弱)의 차(差)는 있을지언정, 각기(各其) 생존(生存)을 유지(維持)하기 위(爲)한 천부(天賦)의 인권(人權)이 있음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대(待)한다면 무리(無理)히 억압(抑壓)․유린(蹂躪)․침어(侵漁)하는 불순(不順)이 없을 것이니, 이러한 불검(不儉)․불손(不遜)․불순(不順)이 없다는 것이 곧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어 사회(社會)의 질서(秩序)가 유지(維持)되는 소이(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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