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결론(結論)
‣사람의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
사람은 무슨 까닭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問題)는 우리 인생(人生)의 사람마다 자신(自身)의 문제(問題)이다. 혹(或)은 먹기 위(爲)하여 산다 하고, 혹(或)은 살기 위(爲)하여 먹는다 한다. 만일 먹기 위(爲)하여 산다고 하면, 이는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이 오직 먹는 데에 있을 뿐이오 다른 아무런 뜻도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먹는 것만이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은 아니다. 또 살기 위(爲)하여 먹는다고 하면, 먹고살아서는 무엇을 하려는가, 아무런 할 일이 없이 다만 살기 위(爲)하여 산다고 하면, 이도 또한 사람의 사는 것이 아무런 뜻도 없고 희망(希望)도 없고 광명(光明)도 없고 스스로 염세증(厭世症)이 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만 살기 위(爲)하여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역학(易學)은 이 문제(問題)에 대(對)하여 무엇이라고 해답(解答)하고 있는가.
역(易)에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 = 이(易)하고 간(簡)하매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고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매 위(位)를 그 중(中)에 이룬다」【註一】하고, 또 「與天地相似故不違 = 천지(天地)로 더불어 서로 같은지라 고(故)로 위(違)치 아니한다」【註二】하고, 또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 = 그 대인(大人)은 천지(天地)로 더불어 그 덕(德)을 합(合)한다」【註三】하여, 사람이 이간정치(易簡政治)를 행(行)하여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고 행위(行爲)와 덕업(德業)이 천지(天地)로 더불어 상사(相似)한 것이 곧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임을 말하니, 이는 천지(天地)는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의 준칙(準則)이 되고,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은 만인(萬人)의 준칙(準則)이되고 있으므로, 사람이 천지(天地)를 본받아서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는 것이 곧 사람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이라 함을 말함이다. 그러면 천지(天地)라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역리(易理)로써 보면 천지(天地)는 무한(無限)히 부성(富盛)하고 무한(無限)히 광대(廣大)하고 또 무한(無限)히 구원(久遠)하니, 만물(萬物)을 부유(富有)하여 포함(包涵)치 아니함이 없는 것이 곧 부성(富盛)이오, 제애(際涯)가 없이 넓고 큰 것이 곧 광대(廣大)이오,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끝없이 계승(繼承)하는 것이 곧 구원(久遠)이다. 그러므로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이 곧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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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本能)은 생존목적(生存目的)을 달성(達成)하는 수단(手段)
그런데 사람에게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삼정(三情) 즉(卽) 삼본능(三本能)이 있으니, 본능(本能)은 사람이 출생(出生)할때에 천지(天地)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으로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발단(發端)이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니, 수단(手段)과 목적(目的)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호근(互根)하고 있어, 그 수단(手段)이 있는 곳에 반드시 목적(目的)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본능(本能)의 속에는 생존(生存)의 수단(手段)과 목적(目的)이 함께 함재(含在)되어 있는 것이다. 감응본능(感應本能)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무한(無限)히 창조번연(創造蕃衍)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부성(富盛)을 본받음이오, 췌취본능(萃聚本能)은 식물(食物)을 섭취(攝取)하여 자체(自體)를 무한(無限)히 성장확대(成長擴大)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광대(廣大)를 본받음이오, 항구본능(恒久本能)은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생명(生命)을 무한(無限)히 연장존속(延長存續)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구원(久遠)을 본받음이다.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은 천지(天地)의 운행(運行)하는 전형(全形)이므로 창조번연(創造蕃衍)․성장확대(成長擴大)․영구존속(永久存續)은 또한 사람의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되지 아니할 수 없고, 음양상교(陰陽相交)․식물섭취(食物攝取)․위해방비(危害防備)는 그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하기 위(爲)한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肉體)의 면(面)으로부터 본 것이니, 사람의 일신(一身)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면(兩面)이 있으므로 정신(精神)의 면(面)에도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있고, 또 사람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가 교호작용(交互作用)하고 있으므로, 통체(統體)의 면(面)에도 또한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있는 것이다.
정신(精神)의 면(面)으로는 차세대(次世代)를 널리 교양(敎養)함은 부성(富盛)의 상(象)이오, 학문(學問)을 취적(聚積)하고 인격(人格)을 크게 함은 광대(廣大)의 상(象)이오, 학술사업(學述事業)을 후세(後世)에 전(傳)함은 구원(久遠)의 상(象)이니, 이것이 또한 삼본능(三本能)에 기(基)한 것이라,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 묵(黙)하여 식(識)하고 학(學)하여 염(厭)치 아니하고 사람을 가르침에 권(倦)치 아니함이 무엇이 내게 있으리오」【註四】하여, 이 삼사(三事)는 모두 내가 능(能)치 못하노라 함을 말하니, 묵이식(黙而識)은 전언왕행(前言往行)을 다식(多識)함이니 곧 부성(富盛)이오, 학불염(學不厭)은 식견(識見)을 넓힘이니 곧 광대(廣大)이오, 회불권(誨不倦)은 차세대(次世代)의 교육(敎育)이니 곧 구원(久遠)이라, 이 삼사(三事)는 생존목적(生存目的)을 달성(達成)하는 사업(事業)인 까닭에 공자(孔子)가 스스로 불능(不能)하노라고 겸사(謙辭)한 것이다.
사회(社會)의 면(面)으로는 호구(戶口)의 번식(繁殖)은 부성(富盛)의 도(道)이오, 민생(民生)의 풍후(豊厚)는 광대(廣大)의 도(道)이오, 교육(敎育)의 보급(普及)은 구원(久遠)의 도(道)이니, 이가 또한 삼본능(三本能)에 기(基)한 정치(政治)의 삼사(三事)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子適衛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又何加焉 曰富之 曰旣富矣又何加焉 曰敎之 = 자(子)가 위(衛)에 갈새 염유(冉有)가 복(僕)하더니, 자(子) 가라사대 서(庶)한저, 염유(冉有)가로되 이미 서(庶)하면 또 무엇을 더하리까 가라사대 부(富)케 할지니라, 가로되 이미 부(富)하면 또 무엇을 더하리까 가라사대 가르칠지니라」【註五】하니, 서(庶)는 호구(戶口)의 중서(衆庶)함이오, 부(富)는 생활(生活)의 풍족(豊足)함이오, 교(敎)는 교육(敎育)의 보급(普及)함이니, 이 삼사(三事)가 겸비(兼備)한 연후(然後)에 정치(政治)가 천지(天地)를 본받아서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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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無限)한 즐거움
삼본능(三本能)에 의(依)하여 생존(生存)의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함에는 반드시 「무한(無限)」과 「즐거움」의 두 가지가 병행(倂行)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어떠한 한계(限界)가 있으면 무궁(無窮)히 생생(生生)치 못하고, 즐거움이 없으면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치 못한다.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이 모두 제애(際涯)가 없으니 이는 무한(無限)이며, 역(易)에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 만물(萬物)을 고(鼓)하되 성인(聖人)으로 더불어 우(憂)를 한가지로 하지 아니한다」【註六】하니, 기(氣)의 운행(運行)은 우(憂)한즉 체색(滯塞)하고 낙(樂)한즉 건행(健行)하는데, 사람의 체울증(滯鬱症) 같은 것이 주(主)로 우수사려(憂愁思慮)로부터 생(生)하는 것은 기(氣)가 체색(滯塞)한 까닭이라,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여 일계일성(一繼一成)하고 일현일장(一顯一藏)함이 모두 건건류행(健健流行)하여 아무런 체색(滯塞)이 없음으로, 일점(一點)의 우수(憂愁)의 상(象)이 없고 즐거움으로 충만(充滿)되어 생기(生氣)가 약동(躍動)하나니, 이가 곧 천지(天地)는 우(憂)치 아니한다 함이다. 사람의 본능(本能)에는 본시(本是) 천지(天地)와 같이 「무한(無限)」이 따르고 있으나, 즐거움이 반드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항상(恒常) 즐거움을 추구(追求)하여 발동(發動)하나니 역(易)에 「樂則行之 憂則違之 = 즐거움은 곧 행(行)하고 근심은 곧 위(違)한다」【註七】함은, 인생(人生)의 행로(行路)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함이오, 또 「樂天知命故不憂 = 천(天)을 즐겨하고 명(命)을 아는지라, 고(故)로 근심치 아니한다」【註八】함은,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본받는 것을 즐겨하고, 자기(自己)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 무엇인가를 아는 까닭에 근심치 아니한다 함이니, 이는 모두 사람은 무한(無限)히 천지(天地)를 즐겨하면서 살아야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육체(肉體)의 면(面)으로는 자손(子孫)의 번연(蕃衍)과 신체(身體)의 성장(成長)과 생명(生命)의 장수(長壽)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때에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오, 정신(精神)의 면(面)으로는 영재(英材)를 얻어서(空間的)교육(敎育)하고 학문(學問)을 쌓아서 인격(人格)이 커지고 덕업(德業)이 영구(永久)히(時間的)후세(後世)에 유전(流傳)함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한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다.
또 통체(統體)의 면(面)으로는 국가민족(國家民族)의 호구(戶口)가 날로 증식(增殖)하고 민중(民衆)의 생활(生活)이 날로 부유(富裕)하고 문화(文化)가 날로 향상(向上)됨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한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며, 이 원리(原理)는 일국내(一國內)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인류(世界人類)에 대(對)하여도 한가지로 적용(適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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