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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15 근심과 즐거움 (역학원론)
- 2013.09.15 역학과 우리국문과의 관계 제자원리 (역학원론)
- 2013.09.15 초성은 사시의 이 (역학원론)
- 2013.09.15 중성은 삼재의 이 (역학원론)
- 2013.09.15 초와 종의 순환 (역학원론)
- 2013.09.15 만성의 생생 (역학원론)
- 2013.09.15 역학으로본 귀신문제 (역학원론)
- 2013.09.15 신인동식의 사등류 (역학원론)
- 2013.09.15 귀신의 이와 정치 (역학원론)
- 2013.09.15 역학으로본 수와상과의 관계 (역학원론)
- 2013.09.15 하도와 낙서 (역학원론)
- 2013.09.15 구륙과 칠팔 (역학원론)
- 2013.09.15 구륙칠팔은 생명의 호흡 (역학원론)
- 2013.09.15 역학으로본 시운의 변천 (역학원론)
‣즐거움도 만인만색(萬人萬色)
그러므로 마음의 즐거움은 동일(同一)한 것이로되, 즐거움의 범위(範圍)는 사람에 따라서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다. 혹(或)은 육체(肉體)에 대(對)한 본능(本能)이 만족(滿足)을 얻는 때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혹(或)은 정신(精神)의 면(面)이나 통체(統體)의 면(面)에 대(對)한 본능(本能)이 만족(滿足)을 얻는 때에 비로소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혹(或)은 호의호식(好衣好食)으로써 육체(肉體)를 양(養)함을 즐겨하고, 혹(或)은 권세(權勢)를 마음대로 행사(行使)함을 즐겨하고, 혹(或)은 포의한사(布衣寒士)의 청빈(淸貧)한 생활(生活)을 하면서 정신적(精神的)으로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을 즐겨하니, 즐거움도 실(實)로 만인만색(萬人萬色)이다. 공자(孔子)가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 = 어질다 회(回)여 일단사(一簞食)와 일표음(一瓢飮)으로 누항(陋巷)에 있음을 사람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할 것이어늘 회(回)가 그 낙(樂)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다 회(回)여」【註九】하니, 회(回)는 안자(顔子)이오 낙(樂)이라 함은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려하여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본받는 것을 즐겨 함이니, 이러한 즐거움은 식도락자(食道樂者)나 세도락자(勢道樂者)들의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는 경지(境地)이다. 또 고래(古來)의 역사(歷史)를 펴 보건대 사람을 무함음해(誣陷陰害)하고 국민(國民)에게 죄(罪)를 지으면서 권세(權勢)를 잡는 것을 무한(無限)한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는 또한 즐거움의 변태성(變態性)이라, 이러한 사람들은 동류(同類)나 아첨배(阿諂輩)이외(以外)에 진정(眞情)으로 교우(交友)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스스로 부성(富盛)을 버리고 고립(孤立)에 빠짐이오, 수인(讐人)의 보복(報復)이 있을 가 두려워하여 단신(單身)으로 산야(山野)를 소요(逍遙)하거나 필마(匹馬)로 여행(旅行)을 다니지 못하고 외출(外出)할 때에는 반드시 호위(護衛)를 따르게 하니, 이는 스스로 광대(廣大)한 천지(天地)를 버리고 소천지(小天地)에 쭈그림이오, 그 취적(聚積)한 재화(財貨)로써 일시(一時) 구복(口腹)의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으나, 인격적(人格的)으로는 죽은지 이미 오래고, 더욱이 시대(時代)는 항상(恒常) 이역(移易)하고 사필(史筆)은 사(私)없이 엄직(嚴直)한지라, 권세(權勢)를 부리는 당일(當日)에는 능(能)히 민중(民衆)의 입을 막을 수가 있으되, 시대(時代)가 바뀐 뒤나, 그 몸이 죽은 뒤의 사필(史筆)을 미리 억제(抑制)할 수는 없으니, 이는 그 자손(子孫)에게 무한(無限)한 치욕(恥辱)을 남겨서 스스로 구원(久遠)한 생생(生生)을 버림이라, 이조(李朝)의 연산(燕山)․중종(中宗)․명종(明宗)․광해(光海) 등(等)의 시대(時代)에 권세(權勢)가 흔천동지(掀天動地)하던 간신(奸臣)들의 자손(子孫)이 수백년(數百年)을 지나도록 머리를 들고 명랑(明朗)한 천지(天地)를 보지 못한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에 편경(偏傾)하면 도리어 악(惡)으로 흐름과 같이, 즐거움이 개체(個體)의 쾌락(快樂)에 편경(偏傾)하면 도리어 근심으로 화(化)하는 것이니, 남을 상해(傷害)하여 불선(不善)으로 얻은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오 곧 근심의 씨이다.
공자(孔子)가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소사(疏食)를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하더라도 낙(樂)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 의(義)치 아니하고 부(富)하고 또 귀(貴)함은 나에게 부운(浮雲)과 같으니라」【註十】하니, 이는 부귀(富貴)를 얻기 위(爲)하여 불의(不義)한 일을 행(行)하여, 민중(民衆)으로부터 고립(孤立)하고 광대(廣大)한 천지간(天地間)을 마음대로 활보(闊步)치 못하고 더러운 이름을 구비(口碑)와 사서(史書)에 전(傳)하기보다, 차라리 청빈생활(淸貧生活)로써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을 즐겨 하리라 함을 말함이다. 공자(孔子)는 부귀(富貴)를 싫어함이 아니라, 「崇高莫大乎富貴 = 숭고(崇高)함이 부귀(富貴)보다 대(大)함이 없다」【註十一】하고, 또 「聖人之大寶曰位 = 성인(聖人)의 대보(大寶)는 가로되 위(位)라」【註十二】하여, 성인(聖人)이 부귀(富貴)의 대위(大位)에 있은 연후(然後)에 인정(仁政)을 행(行)할 수가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불의(不義)의 부귀(富貴)를 배척(排斥)하는 것은, 불의(不義)의 부귀(富貴)는 즐거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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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즐거움
그러므로 사람은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의 즐거운 운행(運行) 속에 살고 있으면서, 정치(政治)의 임무(任務)를 맡은 때에는 이간정치(易簡政治)를 행(行)하여 천하민중(天下民衆)으로 더불어 함께 태평(泰平)을 즐겨 할지오, 초야(草野)에 처(處)한 때에는 이간정치(易簡政治)의 은택하(恩澤下)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써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을 양(養)하고 친척(親戚)․붕우(朋友)로 더불어 함께 그 생존(生存)을 즐겨 할지니, 이것이 곧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는 운동(運動)이다.
사람이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면, 비록 적고 적은 일속신(一粟身)이지만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의 속에 혼륜화합(渾淪和合)하여, 천지(天地)가 곧 내오, 내가 곧 천지(天地)라는, 무한(無限)한 즐거움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할 것이니, 이가 곧 인생(人生)의 사는 목적(目的)이다.
그러나 천지(天地)에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므로 그 운행(運行)이 자연(自然)스럽고 조화(調和)하여 스스로 즐겁게 행(行)하고 있으나, 사람은 편(偏)하고 국(局)하여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음으로 인생(人生)의 행로(行路)에는 육체적(肉體的)으로는 기한질고(飢寒疾苦) 등(等)이 있고, 정신적(精神的)으로는 우수사려(憂愁思慮) 등(等)이 있고, 사회적(社會的)으로는 시세(時勢)의 불리(不利)와 정치(政治)의 불순(不順) 등(等)이 있어, 즐거움보다 근심이 더 많은 것이다. 역(易)에「比樂師憂 = 비(比)는 낙(樂)하고 사(師)는 우(憂)한다」【註十三】하니, 비(比)는 조화(調和)이오 사(師)는 투쟁(鬪爭)이라, 투쟁(鬪爭)과 조화(調和)는 호근(互根)하고 있어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조화(調和)를 얻음과 같이, 근심과 즐거움도 또한 호근(互根)하여 근심을 지나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人生)은 즐거움을 얻기 위(爲)하여 근심하고, 근심하면서 즐거움을 추구(追求)하여,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한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의 경지(境地)에 이르러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는 때에, 비로소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향유(享有)하게 되나니, 이때가 곧 일생(一生)동안 더듬고 있는 목적지(目的地)에 도달(到達)하는 때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개체(個體)인 동시(同時)에 또한 통체(統體)의 일원(一員)이라, 이러한 목적지(目的地)는 개체(個體)의 독행(獨行)만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통체(統體)인 사회(社會)에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여, 사회전체(社會全體)가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향유(享有)하는 때에 비로소 그 개체(個體)도 또한 함께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맛보아 이 목적지(目的地)에 도달(到達)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繫辭上傳 第四章
註三. 乾卦文言
註四. 論語 述而篇
註五. 論語 子路篇
註六. 繫辭上傳 第五章
註七. 乾卦文言
註八. 繫辭上傳 第四章
註九 論語 雍也篇
註十. 論語 述而篇
註十一.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十二. 繫辭下傳 第一章
註十三. 雜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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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一】
易學과 우리 國文과의 關係
‣제자원리(制字原理)
우리 국문(國文)은 그 제자(制字)의 원리(原理)를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서 본받은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오, 역학(易學)이 또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상(象)한 학문(學問)이므로, 국문(國文)과 역학(易學)은 한가지로 자연법칙(自然法則)에서 발원(發源)하여 그 파류(派流)가 두 길로 나뉘운 것이다. 즉(卽)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인생(人生)과 사회(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에 응용(應用)된 것이 곧 역학(易學)이오,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성음학(聲音學)에 응용(應用)되어 문자(文字)로 나타난 것이 곧 우리 국문(國文)이라, 그러므로 우리 국문(國文)은 역학(易學)으로 더불어 동일(同一)한 계통(系統)에 연계(連繫)된 학문(學問)이오, 따라서 국문중(國文中)에는 역학(易學)을 본받은 것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제자해(制字解)에 「凡有生類 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 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則 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 무릇 생류(生類)가 천지간(天地間)에 있는 자(者)가 음양(陰陽)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오, 그런 고(故)로 사람의 성음(聲音)에도 다 음양(陰陽)의 이(理)가 있는데 사람이 살피지 아니할 뿐이라, 이제 정음(正音)의 지음은 지(智)로 영(營)하고 역(力)으로 색(索)함이 아니오, 다만 그 성음(聲音)을 인(因)하여 그 이(理)를 극(極)할 따름이라. 이(理)가 이미 이(二)치 아니하니 어찌 천지귀신(天地鬼神)으로 더불어 그 용(用)을 한가지로 하지 못하리오」하니, 이는 정음(正音)의 지음이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이(理)를 취(取)함을 말함이오, 또 그 서문(序文)에 「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형(形)을 상(象)하되 자(字)는 고전(古篆)을 본받고 성(聲)을 인(因)하되 음(音)은 칠조(七調)에 맞추니, 삼극(三極)의 의(義)와 이기(二氣)의 묘(妙)함이 널리 포괄(包括)되지 아니함이 없다」하니, 삼극(三極)이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삼극지도(三極之道)」【註一】인데,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대대(對待)의 이(理)를 말함이오, 이기(二氣)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이기감응(二氣感應)」【註二】인데, 음양(陰陽)의 이기(二氣)를 말함이며, 또 「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 동방(東方)이 나라를 유(有)한지 오래지 아니하지 아니하되 물(物)을 개(開)하고 무(務)를 성(成)하는 대지(大智)는 대개(大槪) 금일(今日)에 대(待)함이 있을진저」하니, 개물성무(開物成務)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夫易開物成務」【註三】인데, 문물(文物)을 개명(開明)하고 세무(世務)를 성수(成遂)함을 말함이니, 이 삼극(三極)․이기(二氣)․개물성무(開物成務) 등(等) 용어(用語)는 모두 역학(易學)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정음이십팔자(正音二十八字)는 각각(各各) 그 형(形)을 상(象)하여 지은 것인데, 초성(初聲)은 사시(四時)의 이(理)를 취(取)하고 【註四】중성(中聲)은 삼재(三才)의 이(理)를 취(取)하니【註五】이 사시(四時)와 삼재(三才)의 이(理)가 또한 역학(易學)의 원리(原理)와 전연(全然) 일치(一致)되는 것이다. 이제 제자해(制字解)의 요지(要旨)를 해설(解說)하면 대개(大槪)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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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성(初聲)은 사시(四時)의 이(理) 初聲은 十七字
아음(牙音) = ᅌ ㅋ ㄱ 후음(喉音) = ㅎ ᅙ ㅇ
설음(舌音) = ㅌ ㄷ ㄴ 반설음(半舌音) = ㄹ
순음(脣音) = ㅍ ㅂ ㅁ 반치음(半齒音) = ㅿ
치음(齒音) = ㅊ ㅈ ㅅ
(초중성(初中聲)에서 후음(喉音) 「ᅙ」와 반치음(半齒音)「ㅿ」는 지금 사용(使用)치 아니함으로 약(略)하고, 아음(牙音) 「 ᅌ」은 종성(終聲)에만 사용(使用)하는데 실제(實際)에는 「ㅇ」으로 대용(大用)하고 있다)
아음(牙音) 「ㄱ」은 설근(舌根)이 후(喉)를 폐색(閉塞)하는 형(形)을 상(象)하고, 설음(舌音)「ㄴ」은 설(舌)이 상악(上顎)(웃닛몸)에 붙는 형(形)을 상(象)하고, 순음(脣音) 「ㅁ」은 구형(口形)을 상(象)하고, 치음(齒音) 「ㅅ」은 치형(齒形)을 상(象)하고 후음(喉音) 「ㅇ」은 후형(喉形)을 상(象)하며 성(聲)의 출(出)함이 조금 여(厲)(힘이 强한것)한 자(者)는 획(劃)을 더하니 즉(卽) 「ㄱ」이 「ㅋ」으로되고, 「ㄴ」이 「ㄷ」「ㅌ」로되고, 「ㅁ」이 「ㅂ」 「ㅍ」으로, 되고 「ㅅ」이 「ㅈ」 「ㅊ」으로되고, 「ㅇ」이 「ㅎ」으로 된 것이오, 오직 아음(牙音)「 ᅌ」은 특수(特殊)하고 반설음(半舌音) 「ㄹ」은 설형(舌形)의 이체(異體)이다.
후(喉)는 수(邃)(깊은것)하고 윤(潤)(윤택(潤澤)한 것)하니 수(水)가 됨으로 성(聲)이 허(虛)하고 통(通)하며, 사시(四時)로는 동(冬)이 되니, 동(冬)이라 함은 물(物)의 귀장(歸藏)함이 심수(深邃)함을 상(象)함이오, 아(牙)는 착(錯)(교착(交錯)한것)하고 장(長)하니 목(木)이 됨으로 성(聲)이 후음(喉音)과 같으되 실(實)하여, 목(木)이 생장(生長)하여 형체(形體)가 있음과 같고, 사시(四時)로는 춘(春)이 되니 춘(春)이라 함은 동(冬)의 다음에 춘(春)이 와서 목(木)이 생장(生長)함을 상(象)함이오, 설(舌)은 예(銳)하여 동(動)하니 화(火)가 됨으로 성(聲)이 전(轉)하여 양(颺)(날리는 것)하며, 사시(四時)로는 하(夏)가 되니 하(夏)라 함은 물(物)이 신장(伸長)하여 발양(發揚)함을 상(象)함이오, 치(齒)는 강(剛)하고 단(斷)하니 금(金)이 됨으로 성(聲)이 설(屑)(조촐한 것)하고 체(滯)하며, 사시(四時)로는 추(秋)가되니 추(秋)라 함은 물(物)의 수렴(收斂)함을 상(象)함이오, 순(脣)은 방(方)하고 합(合)하니 토(土)가 됨으로 성(聲)이 함(含)하고 광(廣)하며, 사시(四時)로는 계하(季夏)가 되고 또 정위(定位)가 없이 사계(四季)에 기왕(寄旺)하니, 계하(季夏)라 함은 하말(夏末)에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함이 극성(極盛)하여 지(地)의 작용(作用)이 함홍(含弘)함을 상(象)함이오, 사계(四季)에 기왕(寄旺)한다 함은 순(脣)이 일구(一口)를 통(統)하여 후(喉)․아(牙)․설(舌)․치(齒)를 모두 함축(含蓄)함으로 일세(一歲)를 통할(統轄)함을 상(象)함이다. 오직 아음(牙音)의 「 」은 비록 아(牙)에 속(屬)하여 설근(舌根)이 후(喉)를 폐(閉)하고 성(聲)과 기(氣)가 비중(鼻中)으로 나오나 그 성(聲)이 후음(喉音)과 같으므로 목(木)의 생장(生長)하는 상(象)을 취(取)하지 아니하고 동(冬)의 후(後)에 목(木)의 맹아(萌芽)가 시생(始生)함을 상(象)하여 후형(喉形) 「ㅇ」에 일아형(一芽形)을 가(加)한 것이다.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l • 의 十一字는 體音이니 十一歸體의 理이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ㅎ 의 十字는 用音이오 ㅊ ㅋ ㅌ ㅍ 는 모두 用音의 合音이다. ㅏ 는 天이 비로소 사람을 生함이므로 一이 되니 一은 數의 始로서 人類創生의 始를 象함이오 ㅣ 는 十이니 十은 數의 終으로서 사람의 成道를 象함이다. • 는 天이니 ㅡ ㅣ • 는 地에서 人이 成道하여 다시 天으로 圜함을 象함이다.
用音은 四時의 用을 象하여 ㄱ 에서 始하고 ㅎ 에서 終하니 ㄱ 는 春의 象이오 ㅎ 는 冬의 象이니 四時의 用音은 十數에서 成하고 ㅊ ㅋ ㅌ ㅍ 의 合音은 春夏 季夏 및 秋의 音이 各音과 合한 音으로서 秋陰 ㅈ 의 다음에 位하여 三顯에서 一藏으로 넘어 감을 象하니 이는 ㄱ ㄷ ㅂ ㅈ 의 生長成의 三顯하는 音이 一藏하는 ㅎ 音과 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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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中聲)은 삼재(三才)의 이(理) 中聲은 十一字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중성(中聲)의 제자(制字)는 전(專)혀 천(天)․ 지(地)․ 인(人)을 상(象)한 것이니, 「•」는 설(舌)이 축(縮)(收縮하는것)하고 성(聲)이 심(深)하니, 천(天)이 개(開)하여 환전(圜轉)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천(天)을 상(象)하여 형(形)이 원(圓)하고 「 ㅡ」는 설(舌)이 조금 축(縮)하고 성(聲)이 심(深)치도 아니하고 천(淺)치도 아니하니, 지(地)가 벽(闢)하여 물(物)을 적재(積載)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지(地)를 상(象)하여 형(形)이 평(平)하고, 「 ㅣ」는 설(舌)이 축(縮)치 아니하고 성(聲)이 천(淺)하니, 인(人)이 생(生)하여 직립(直立)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인(人)을 상(象)하여 형(形)이 입(立)하니 「 • ㅡ ㅣ」는 천(天)․ 지(地)․ 인(人)의 삼재(三才)의 형(形)을 상(象)하여 지은 것이다.
「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의 팔성(八聲)은 천(天)․ 지(地)․ 인(人)의 상교(相交)하는 상(象)을 취(取)한 것이니, ㅗ의 성(聲)은 • 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축(蹙)하고 그 형(形)은 •와 ㅡ 가 합(合)하여 성(成)하며 ㅜ 의 성(聲)은 ㅡ 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축(蹙)하고 그 형(形)은 ㅡ 와 • 가 합(合)하여 성(成)하니, 이는 모두 천지(天地)가 초교(初交)하는 뜻을 취(取)함이다. ㅏ의 성(聲)은 ㅗ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장(張)하고 그 형(形)은 ㅣ와 •가 합(合)하여 성(成)하며, ㅓ의 성(聲)은 ㅜ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장(張)하고 그 형(形)은 ㅣ와 •가 합(合)하여 성(成)하니, 이는 모두 천지(天地)의 작용(作用)이 사물(事物)에 발현(發顯)하여 인(人)을 대(待)하여 성수(成遂)하는 뜻을 취(取)함이다.
ㅛ의 성(聲)은 ㅗ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 ㅣ와 ㅗ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ㅛ가되는 것) ㅑ의 성(聲)은 ㅏ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 ㅣ와 ㅏ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ㅑ가 되는 것) ㅠ의 성(聲)은 ㅜ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ㅣ와 ㅜ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ㅠ가 되는 것) ㅕ의 성(聲)은 ㅓ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니 (ㅣ와 ㅓ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ㅕ가 되는 것) ㅗ ㅏ ㅜ ㅓ 는 천지(天地)에서 시(始)하여 초출(初出)함이 되고 ㅛ ㅑ ㅠ ㅕ 는 ㅣ에서 기(起)하여 인(人)을 겸(兼)하여 재출(再出)함이 되나니, 그 원(圓)(•)을 일개(一個)로 한 것은 초출(初出)의 뜻을 취(取)하고 그 원(圓)을 이개(二個)로 한 것은 재출(再出)의 뜻을 취(取)함이다.
또 ㅗ ㅏ ㅛ ㅑ의 원(圓)이 상(上)과 외(外)에 위거(位居)함은 그 천(天)에서 출(出)하여 양(陽)이 되는 까닭이오, ㅜ ㅓ ㅠ ㅕ의 원(圓)이 하(下)와 내(內)에 위거(位居)함은 그 지(地)에서 출(出)하여 음(陰)이 되는 까닭이며, •가 팔성(八聲)에 통관(通貫)함은, 천지운행(天地運行)의 이(理)에 양(陽)이 음(陰)을 통(統)하여 만물(萬物)에 주류(周流)함과 같고, ㅛ ㅑ ㅠ ㅕ가 모두 인(人)을 겸(兼)함은, 인(人)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능(能)히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가 되는 까닭이다. 우리 국어(國語)에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있으니, 예(例)컨대 청색(靑色)을 파란빛이라 함은 원(圓)이 외(外)에 있으므로 양성(陽性)이 되고, 퍼런빛이라 함은 원(圓)이 내(內)에 있으므로 음성(陰性)이 되며, 비대(肥大)한 상(象)을 통통하다 함은 원(圓)이 상(上)에 있으므로 양성(陽性)이 되고, 퉁퉁하다 함은 원(圓)이 하(下)에 있으므로 음성(陰性)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어문법(國語文法)에 글의 토(吐)의 「하야」를 모두 「하여」로 써서 음성(陰性)으로 통일(統一)하고 있는데 원래(元來) 어음(語音)이라 함은 내(內)로부터 외(外)에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양성(陽性)을 띠고 명랑(明朗)한 것이 그 본색(本色)이니, 시(時)와 경우(境遇)에 따라서 양성적(陽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도 있고 음성적(陰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도 있으나. 양성적(陽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 있는 어음(語音)을 인위적(人爲的)으로 말살(抹殺)하고, 도리어 음성음(陰性音)을 전용(專用)한다는 것은, 어음(語音)의 본색(本色)에 합(合)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부지부식중(不知不識中)에 사람의 기성(氣性)으로 하여금 음울침담(陰鬱沈曇)한 면(面)으로 향(向)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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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初)와 종(終)의 순환(循環)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의 합성(合成)한 문자(文字)에는 동정(動靜)이 호근(互根)하고 음양(陰陽)이 교변(交變)하는 뜻이 있으니, 동(動)하는 자(者)는 천(天)이오 정(靜)한 자(者)는 지(地)이오 동정(動靜)을 겸(兼)한 자(者)는 인(人)이라, 초성(初聲)은 발동(發動)하는 뜻이 있으니 곧 천(天)의 사(事)이오, 종성(終聲)은 지정(止定)하는 뜻이 있으니 곧 지(地)의 사(事)이오, 중성(中聲)은 초성(初聲)의 생(生)(天의 發動하는 뜻)함을 승수(承受)하고 종성(終聲)의 성(成)(地의 止定하는 뜻)함에 접속(接續)하니 곧 인(人)의 사(事)이다. 종성(終聲)에 다시 초성(初聲)을 사용(使用)함은 천(天)이 지(地)를 통(統)하는 뜻이오,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으로 되고 종성(終聲)이 다시 초성(初聲)으로 되는 것은, 일원(一元)의 기(氣)가 주류(周流)하여 궁(窮)치 아니하고, 사시(四時)의 운(運)이 순환(循環)하여 단(端)이 없으므로 정(貞)하면 다시 원(元)하고 동(冬)하면 다시 춘(春)하여 생생불궁(生生不窮)함을 상(象)함이다. 동정(動靜)이 호근(互根)한다 함은 동(動)은 초성(初聲)이오 정(靜)은 종성(終聲)이므로, 초성(初聲)과 종성(終聲)이 호역(互易)하여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에 근착(根着)하고 종성(終聲)이 초성(初聲)에 근착(根着)한다는 뜻이오, 음양(陰陽)이 교변(交變)한다 함은 양(陽)은 동(動)이오 음(陰)은 정(靜)이니, 또한 동정(動靜)의 호근(互根)과 같은 뜻이다. 정(貞)하면 원(元)한다 함은 역학(易學)의 「원형이정(元亨利貞)」【註六】의 상(象)을 취(取)한 것이니, 역학(易學)에 원(元)은 춘(春)의 象이오 형(亨)은 하(夏)의 상(象)이오 이(利)는 추(秋)의 상(象)이오 정(貞)은 동(冬)의 상(象)이라,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으로 되는 것은, 춘(春)이 가면 동(冬)이 오고 원(元)이 가면 정(貞)이 오는 상(象)이오, 종성(終聲)이 다시 초성(初聲)으로 되는 것은, 동(冬)이 종(終)하면 춘(春)이 시(始)하고 정(貞)이 종(終)하면 원(元)이 시(始)하는 상(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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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萬聲)의 생생(生生)
이상(以上)에 말한 것이 제자원리(制字原理)의 개요(槪要)인데, 그 원리(原理)가 사시(四時)와 삼재(三才)의 이(理)에서 나온 것으로서, 역학(易學)으로 더불어 서로 표리(表裏)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저(大抵) 언어(言語)라 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을 통(通)하여 그 의사(意思)를 발표(發表)하는 것이오, 문자(文字)라 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을 기록(記錄)한 부호(符號)이라, 그러므로 언어(言語)를 기록(記錄)함에는 또한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문자(文字)가 있은 연후(然後)에 언어(言語)와 문자(文字)가 서로 체(體)와 용(用)이 되어 변화(變化)하기 궁(窮)함이 없는 것이다. 세계문자중(世界文字中)에서 자연(自然)의 성(聲)과 자연(自然)의 문자(文字)가 서로 배합(配合)한 것은 오직 우리 국문(國文)이 있을 뿐이니, 이가 우리 국문(國文)이 천지(天地)의 생생(生生)하는 대덕(大德)과 역학(易學)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체득(體得)하여 만성(萬聲)이 생생(生生)하는 소이(所以)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二章 「六爻之動 三極之道也」
註二. 咸卦彖傳 「二氣感應以相與」
註三. 繫辭上傳 第十一章「夫易何爲者也 夫易開物成務」
註四. 乾卦文言 「與四時合其序」 繫辭上傳 第六章 「變通配四時」등(等)
註五. 繫辭下傳 第十章 「有天道焉 有地道焉 有人道焉 兼三才而兩之 故六」
註六. 乾卦에 「元亨利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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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으로 본 귀신문제(鬼神問題)
‣귀신(鬼神)의 유무(有無)
귀신(鬼神)의 유무(有無) 문제(問題)는 실(實)로 천고(千古)의 의안(疑案)이오, 더욱이 귀신(鬼神)이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준다는 말은 종교(宗敎)에도 있고 일반(一般) 민간(民間)에도 널리 퍼져 있는데, 역학(易學)은 이에 대(對)하여 어떠한 해답(解答)을 내리고 있는가.
역(易)에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일(日)이 중(中)한즉 측(昃)하고 월(月)이 영(盈)한즉 식(食)하나니,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시(時)로 더불어 소식(消息)하곤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一】하니, 이는 천지간(天地間)에 사람의 이외(以外)에 또한 귀신(鬼神)이 있어, 천지일월(天地日月)과 같이 영허소장(盈虛消長)하고 인생(人生)이나 사회(社會)와 같이 흥망성쇠(興亡盛衰)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또「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不違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그 대인(大人)은 천지(天地)로 더불어 그 덕(德)을 합(合)하고 일월(日月)로 더불어 그 명(明)을 합(合)하고 사시(四時)로 더불어 그 서(序)를 합(合)하고 귀신(鬼神)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合)하고 천(天)에 선(先)하되 천(天)이 위(違)치 아니하고 천(天)에 후(後)하매 천시(天時)를 봉(奉)하나니, 천(天)도 또한 위(違)치 아니하곤,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二】하니, 이는 대인(大人)의 행동(行動)은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과 일치(一致)하고 또 귀신(鬼神)의 작용(作用)과도 일치(一致)하여, 대인(大人)이 선(善)하다고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선(善)하다 하고, 대인(大人)이 불선(不善)하다고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불선(不善)하다하며, 대인(大人)의 행동(行動)은 천(天)도 어기지 아니하는데, 어찌 사람이나 귀신(鬼神)이 그를 어길 수가 있으랴 함을 말함이니, 이것도 천지간(天地間)에 사람 이외(以外)에 따로 귀신(鬼神)이 있어, 사람의 길흉(吉凶)에 대(對)한 재단(裁斷)을 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고 겸(謙)을 익(益)하며,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하며, 귀신(鬼神)은 영(盈)을 해(害)하고 겸(謙)을 복(福)하며 인도(人道)는 영(盈)을 오(惡)하고 겸(謙)을 호(好)한다」【註三】하니, 이는 천지인(天地人)이 모두 교영(驕盈)한 자(者)를 손(損)하고, 겸양(謙讓)한 자(者)를 도와주는데, 귀신(鬼神)도 또한 교영(驕盈)한 자(者)에게 해(害)를 주고 겸양(謙讓)한 자(者)에게는 복(福)을 준다 함을 말함이다.
이상(以上)으로 써 보면 역학(易學)은 완전(完全)히 유신론(有神論)인 동시(同時)에 귀신(鬼神)은 천지인(天地人)과 같이 소장성쇠(消長盛衰)하면서 사람의 선악(善惡)에 대(對)하여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주는 작용(作用)이 있다는 것이다. 특(特)히 이상(以上)의 제론(諸論)은 모두 천(天)․지(地)․신(神)․인(人)을 병칭(倂稱)하면서 또한 반드시 사람과 귀신(鬼神)을 대거(對擧)하고 있는 것은, 사람과 귀신(鬼神)과의 사이에 깊은 관련(關聯)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生死와 鬼神
孔子의 死生․鬼神論에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知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계로(季路)가 귀신(鬼神)을 섬김을 물은대 공자(孔子)가라사대 능(能)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거니 어찌 능(能)히 귀신(鬼神)을 섬기리오, 감(敢)히 사(死)를 묻나이다, 가라사대 생(生)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사(死)를 알리오」【註四】하니. 이는 사(死)의 도(道)는 곧 생(生)의 도(道)이오, 귀신(鬼神)의 도(道)는 곧 사람의 도(道)이니, 사생인귀(死生人鬼)는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한 것이라, 사람의 생전(生前)에 정신(精神)이 여하(如何)히 발생(發生)되고 또 지각(知覺)이 여하(如何)한 형태(形態)로서 여하(如何)히 취적(聚積)되고 있는가를 지득(知得)한 연후(然後)에, 가(可)히 써 사(死)와 귀신(鬼神)의 이(理)를 알 수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면 사람의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라 함은 여하(如何)한 것인가.
만물(萬物)은 모두 정(精)과 기(氣)로써 조직(組織)되고, 인신(人身)에는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육체(肉體)는 정(精)의 응성(凝成)함이오, 정신(精神)은 기(氣)의 발용(發用)함이다. 역(易)에 「剛柔者晝夜之象也 = 강유(剛柔)는 주야(晝夜)의 상(象)이라」【註五】하니, 강(剛)은 주(晝)의 상(象)을 말함인데, 주(晝)는 명(明)하고 열(熱)함으로 강(剛)은 명(明)과 열(熱)을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있다. 화석(火石부싯돌)의 예(例)로써 보건대 석중(石中)에서 화(火)가 발생(發生)하는 것은 석중(石中)에 화(火)가 있는 것이 아니오, 석(石)의 질(質)을 결합(結合)시키고 있는 기(氣)는 가장 강(剛)하고, 강(剛)과 강(剛)이 상촉상마(相觸相摩)하는 때에 명(明)하고 열(熱)한 화(火)가 일어나는 것이니, 이 화(火)는 강(剛)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뇌(腦)는 그 질(質)이 가장 정수(精粹)함으로 그에 의착(依着)한 기(氣)는 또한 강건(剛健)하고, 그 강건(剛健)한 기(氣)가 물(物)의 기(氣)와 상감상응(相感相應)하는 때에 사물(事物)을 광조(光照)하는 명(明)과 사물(事物)을 상영(相迎)하는 열(熱)이 생(生)하여, 감정(感情)․사고(思考) 등(等)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출현(出現)하나니, 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은 석중(石中)의 화(火)와 같이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은 그 본질(本質)(剛)이 화(火)와 같고 또 그 발생(發生)함이 화(火)와 같은지라, 그러므로 물(物)의 강(剛)과 강(剛)이 상촉(相觸)치 아니하면 화(火)가 생(生)치 아니함과 같이, 사람이 아무 생각함도 없고 감촉(感觸)함도 없으면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나타나지 아니하며, 화(火)는 물(物)에 의착(依着)치 아니하면 형상(形象)을 이루지 못함과 같이, 사람은 뇌(腦)가 건전(健全)치 못하면 건전(健全)한 기(氣)가 의착(依着)치 못함으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또한 건전(健全)치 못하며,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한 화염(火焰)은 공중(空中)에 유동(流動)하여 곧 소산(消散)할 듯 하되, 마침내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일정(一定)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명(明)과 열(熱)을 발(發)하는 것은, 물질(物質)은 체(體)가 되고 화염(火焰)은 용(用)이 되어, 물질(物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화염(火焰)이 근착(根着)하고 있는 까닭이니, 사람의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도 뇌질(腦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유산(遊散)치 아니하며, 소위(所謂) 경험(經驗)․학문(學問)․지식(知識)같은 것도, 그 기(氣)의 속에 포장(包藏)되어 기억(記憶)되는 것이니, 사람의 기억력(記憶力)이 강(强)하다 함은 이 기(氣)를 강(强)하게 수렴(收斂)한 까닭이다. 물질(物質)이 정수(精粹)할수록 화염(火焰)이 강(强)하여 그 광(光)과 열(熱)의 힘이 원급(遠及)하는 것이니, 사람도 뇌질(腦質)이 정수(精粹)할수록 그 의착(依着)한 기(氣)가 청정(淸淨)하고 강건(剛健)하여, 순결(純潔)한 감정(感情)과 고원(高遠)한 사고력(思考力)과 사람을 제압(制壓)하는 위엄(威嚴)을 가지는 것이며, 화(火)가 상극(相克)하는 수(水)를 만날 때에 화력(火力)이 약(弱)한 자(者)는 식멸(息滅)되는 것이나, 화력(火力)이 강(强)할 때는 도리어 반발력(反撥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니, 사람도 기(氣)가 약(弱)한 자(者)는 외부(外部)의 압력(壓力)을 받을 때에 쉽게 굴복(屈伏)하나, 기(氣)가 강건(剛健)한 자(者)는 도리어 반발작용(反撥作用)을 일으켜서 그 저항력(抵抗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전(生前)에 이미 기(氣)의 작용(作用)이 정신(精神)을 생(生)하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도 또한 기(氣)의 작용(作用)이 없지 아니한 것이다. 역(易)에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 知鬼神之情狀 = 시(始)를 원(原)하고 종(終)을 반(反)한지라 고(故)로 사생(死生)의 설(說)을 알고,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혼(魂)이 유(遊)하여 변(變)이 되는지라 이런 고(故)로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을 안다」【註六】하니, 원(原)이라 함은 전(前)에 추(推)함이오 반(反)이라 함은 후(後)에 요(要)함이라, 시생(始生)하기 전(前)의 일을 추구(推求)하면 가(可)히써 사후(死後)의 일을 알 수 있고, 사후(死後)의 형상(形象)을 반요(反要)하면 가(可)히써 미생전(未生前)의 일을 알 수 있으며, 또 정(精)과 기(氣)가 취(聚)하여 물(物)이 되는데, 사후(死後)에 기(氣)가 유산(遊散)하여 어떠한 운동(運動)을 생(生)함을 혼(魂)이라 하고 혼(魂)의 변화(變化)하는 상태(狀態)가 곧 귀신(鬼神)이며 사후(死後)의 혼(魂)은 곧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이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또한 생전(生前)의 심(心)의 작용(作用)과 같은데, 사람의 자연발로(自然發露)하는 생존본능(生存本能)인 정(情)에 대(對)하여 의지(意志)가 그를 결단(決斷)하고 실천(實踐)하는 것으로서 정(情)은 체(體)가되고 의지(意志)는 용(用)이 됨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귀(鬼)는 체(體)이오 신(神)은 용(用)이니, 이 까닭에 귀(鬼)에는 정(情)이 있고 신(神)에는 상(狀)이 있으니, 정(情)은 감응(感應)에 의(依)하여 자연발로(自然發露)함이오 상(狀)은 발용(發用)하여 변화(變化)를 행(行)함이다. 그러므로 귀(鬼)와 신(神)은 합언(合言)하면 심(心)과 같고 분언(分言)하면 귀(鬼)는 정(情)과 같고 신(神)은 의지(意志)와 같은 것이다.
이상(以上)의 이(理)를 요약(要約)하여 말하면, 사람이 시생(始生)할때에 먼저 음양양성(陰陽兩性)의 기(氣)가 감응(感應)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췌취(萃聚)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인데, 사람의 어느 중요(重要)한 기관(器官)에 기(氣)의 운행(運行)이 끊어지면, 정(精)은 독음(獨陰)이되고 기(氣)는 독양(獨陽)이되어 서로 분산(分散)함으로 사(死)가 되며, 생전(生前)의 기(氣)는 화(火)와 같이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 유산(遊散)하는 기(氣)도 어느 기간(期間)안에는 그 작용(作用)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것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기(氣)의 비약적(飛躍的) 운동(運動)의 산물(産物)임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유혼(遊魂)의 변화(變化)하는 산물(産物)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반드시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음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도 반드시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는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死)하는 즉시(卽時)로 기(氣)가 모두 소멸(消滅)치 아니하고 혼(魂)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수 있는가, 서화담(徐花潭)은 「造化鬼神은 神易陰陽의 極致라」하여 鬼神死生說一篇을 지은바 그 요지(要旨)는 「死生人鬼只是 氣之聚散而己 氣之淡一淸虛者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大小之聚散於太虛 以大小之有殊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 况人之精神知覺 聚之大且久者哉 形魄見其有散 似歸盡沒於無 此處率皆不得致思 氣之聚之有漸以至博厚 爲天地爲吾人 人之散也 形魄散耳 聚之淡一淸虛者 終亦不散 散於太虛淡一之中同一氣也 其知覺之聚散 只有久速耳 雖散之最速有日月朞者 乃物之微者 爾其氣終亦不散 何者氣之淡一淸虛者 旣無其始又無其終 此理氣之所以極妙底 雖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 = 死와生, 人과鬼는 다만 이 氣의 聚散뿐이다. 氣의 淡一淸虛한 者가 聚함이 大한 者는 天地가 되고 聚함이 小한 者는 萬物이 되며, 聚散하는 勢는 隱微하고 나타나고 오래고 빠름이 있으니. 大小의 界함이 太虛에 聚散함에, 大하고 小함으로 써 다름이 있음이라, 비록 一草一木의 적은 者라도 그 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곤, 하물며 사람의 精神知覺이 聚함이 大하고 또 久한 者이랴. 形魄은 그 散함이 있음을 보매, 無에 盡沒함에 歸하는듯하나, 此處에 모두 시러곰(能히) 致思치 못함이니라, 氣의 聚함이 漸이 있어 써 博厚함에 이르러, 天地가 되고 吾人이 되며 사람의 散함은 形魄이 散함이오, 聚함이 淡一淸虛한 者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라.
太虛淡一의 中에 散함에 한가지 一氣이라, (花潭이 易學의 鬼神說微旨에 對하여 그 底蘊을 敷衍하려 하다가 뜻만 있고 成就치 못함을 恨한다 함이 이곳을 말함인 듯하다 ) 그 知覺의 聚散함은 다만 오래고 빠름이 있나니라, 비록 散함이 가장 速한 것도 一日․ 一月․ 一年의 것이 있으니, 곧 物의 적은 者이로되 그 氣가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 무슨 까닭인고, 氣의 淡一淸虛한 者는 이미 그 始가 없고 또 그 終이 없음이니, 이가 理氣의 써 極妙한바이다. 비록 一片香燭의 氣도 그 目前에 散함이 있음을 보나, 餘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나니, 어찌 시러곰(能히) 無에 盡한다고 이르랴」【註七】하니, 이 뜻을 요약(要約)하면, 만물(萬物)이 취(聚)한 자(者)는 반드시 산(散)함이 있는데, 취(聚)함이 대(大)한 자(者)는 산(散)함이 오래고 취(聚)함이 소(小)한 자(者)는 산(散)함이 속(速)한지라, 사람의 사후(死後)에 기(氣)도 태허중(太虛中)에 산(散)하나, 그 취(聚)함이 대(大)하고 구(久)한 지각(知覺)은 어느 기간(期間)을 소산(消散)치 아니하니, 이가 곧 귀신(鬼神)이라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곧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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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 人 ․ 動 ․ 植 의 四등(等)類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八物은 生存作用을 行하는 組織體의 根本이오, 八物은 모두 陰陽으로 配合되고 있으므로, 이 組織體를 老少․長․中,의 四등(等)類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 四등(等)類를 易理에 依하여 生物類에 擬하여 보면, 山澤은 植物類가 되고 水火는 動物類가 되고 雷風은 人類가 되고 天地는 鬼神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 四등(等)類의 性情을 보건대,
一. 易에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 神이라 함은 萬物을 妙하게 하여 言을 하는 者라」【註八】하니, 爲言이라 함은 사람의 意思가 言辭를 通하여 發表됨과 같이, 神의 作用이 萬物의 生生化化에 나타남을 象함이며, 神의 妙와 雷風 水火 山澤의 動․撓․潤․燥․終始․說의 作用을 對擧함을 보면, 神이라 함은 天地의 作用임이 明白하니, 이를 精․氣의 理로써 보면, 山澤은 形이오 水火는 精이오 雷風은 氣이오 天地는 神이다.
이 형정기신(形精氣神)을 다시 생물(生物)의 사등류(四等類)에 배(配)하면, 식물류(植物類)는 형(形)이오 동물류(動物類)는 정(精)이오 인류(人類)는 기(氣)이오 귀신(鬼神)은 신(神)이다. 이것을 다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면(面)으로써 보면 형(形)은 질(質)이오, 정(精)은 감각(感覺)․감정(感情) 등(等)이오. 기(氣)는 이성(理性)이오, 신(神)은 영통(靈通)이라, 식물(植物)은 형질(形質)을 주(主)로 함으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질색(窒塞)하여 통(通)치 못하며, 형질(形質)은 혹(或) 발산(發散)하여 정(精)이 되는 것이므로 식물중(植物中)에는 감각(感覺)을 가지고 있는 자(者)가 있다. 동물(動物)은 감각(感覺)․감정(感情)을 주(主)로 함으로 그 생활(生活)은 주(主)로 본능(本能)에 의(依)하여 행(行)한다. 그러나 정(精)은 취합(聚合)하면 형(形)을 이루고 발산(發散)하면 기(氣)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동물중(動物中)에는 혹(或) 식물(植物)과 같이 질색(窒塞)한 자(者)도 있고, 혹(或) 사람과 같이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는 자(者)도 있다. 사람은 이성(理性)을 주(主)로 함으로 그 생활(生活)이 주(主)로 사상(思想)에 의(依)하여 행(行)한다. 그러나 기(氣)는 취합(聚合)하면 정(精)을 이루고 발산(發散)하면 신(神)으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사람중(中)에는 혹(或) 동물(動物)과 같이 주(主)로 감정(感情)에 의(依)한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는 자(者)도 있고, 혹(或) 귀신(鬼神)과 같이 영통(靈通)한 자(者)도 있는 것이다.
二. 사등류(四等類)를 공간생활(空間生活)로써 보면 역(易)에「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하(下)를 친(親)한다」【註九】하니, 지(地)는 질(質)의 응고(凝固)함이오,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라, 식물(植物)은 순연(純然)히 지(地)에 본(本)함으로 지(地)의 질(質)에 고착(固着)하여 자유(自由)로 이동(移動)치 못하고, 동물(動物)은 자유(自由)로 이동(移動)하여 육상(陸上)을 주행(走行)하는 자(者), 공중(空中)을 비행(飛行)하는자(者), 수중(水中)을 잠행(潛行)하는자(者) 등(等)이 있으나 지(地)를 떠나지 못함으로, 반(半)은 천(天)에 본(本)하고 반(半)은 지(地)에 본(本)한다. 그러나 체(體)가 평면(平面)으로 되어 있어 지(地)를 상(象)함으로 오히려 본호지(本乎地)의 유(類)에 속(屬)한다. 사람은 자유(自由)로 이동(移動)하고 지(地)를 떠나지 못함은 동물(動物)과 일반(一般)이나, 체(體)가 직립(直立)하여 입체(立體)로 되어 공중(空中)을 통관(通貫)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본호천(本乎天)의 유(類)에 속(屬)한다. 동물(動物)과 사람이 반천반지(半天半地)하여 이미 서로 대응(對應)하고 있는지라. 조직(組織)의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순연(純然)히 본호지(本乎地)한 식물(植物)과 대응(對應)하여, 순연(純然)히 본호천(本乎天)한 일물(一物)이 없지 못하나니, 이가 곧 귀신(鬼神)이오, 역(易)에「神無方 = 신(神)은 방(方)이 없다」【註十】함은, 귀신(鬼神)은 천(天)의 유행(流行)하는 기(氣)에 의착(依着)하여, 일정(一定)한 방소(方所)가 없이 주행(周行)함을 말함이다. 귀신(鬼神)은 방(方)이 없음으로, 그의 유행(流行)에는 산천(山川)의 격조(隔阻)도 없고, 거리(距離)의 제한(制限)도 없고. 완전(完全)히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고 있으니, 역(易)에「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 = 이 신(神)한 고(故)로 질(疾)치 아니하여도 속(速)하고 행(行)치 아니하여도 지(至)한다」【註十一】함은, 귀신(鬼神)은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여 백천만리외(百千萬里外)의 일을 안전(眼前)에 보고 동석(同席)에서 듣고 있음과 같이 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귀신(鬼神)은 어떠한 형태(形態)를 가지고 있는가, 식물(植物)의 체(體)는 도립(倒立)하여 직선(直線)으로 되어 있고, 동물(動物)의 체(體)는 평면(平面)이 되고, 사람의 체(體)는 상(上)을 관통(貫通)하여 삼각형(三角形)의 입체(立體)로 되어 있으니, 동물(動物)과 사람이 이미 평면(平面)과 입체(立體)로써 서로 대응(對應)하고 있는지라, 조직(組織)의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또한 직선(直線)과 대응(對應)하는 원형(圓形)이 없지 못한다. 만물(萬物)이 원(圓)한즉 유동(流動)하는지라, 그러므로 이 원형(圓形)은 곧 귀신(鬼神)이니, 역(易)에 「蓍之德 圓而神 = 시(蓍)의 덕(德)은 원(圓)하고 신(神)하다」【註十二】함은, 귀신(鬼神)이 원(圓)함을 말함이다.
三. 사등류(四等類)를 시간생활(時間生活)로써 보면, 시간(時間)에는 현재(現在)․과거(過去)․미래(未來)가 있는지라, 식물(植物)은 무지(無知)하여 시간(時間)을 알지 못하고 동물(動物)은 주(主)로 현재(現在)를 알고 약간(若干)의 과거(過去)를 기억(記憶)하며, 사람은 현재(現在)와 과거(過去)를 알고 약간(若干)의 미래(未來)를 추상(推想)하며, 귀신(鬼神)은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여 미래(未來)를 통견(洞見)하나니, 역(易)에 「神以知來 = 신(神)하여 써 내(來)를 지(知)한다」【註十三】하고, 또 「知幾其神乎 幾者動之微 吉之先見者也 = 기(幾)를 지(知)함이 그 신(神)한저 기(幾)라 함은 동(動)의 은미(隱微)함이오 길(吉)의 먼저 보이는 자(者)이라 」【註十四】함은, 귀신(鬼神)은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여 미래(未來)에 발생(發生)할 일을 명견(明見)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四. 사등류(四等類)를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면(面)으로써 보면 개체(個體)는 체(體)이오 통체(統體)는 용(用)이라, 식물(植物)은 스스로 이동(移動)치 못함으로,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어 고립(孤立)한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하고 있으며, 동물(動物)은 본호지(本乎地)의 유(類)에 속(屬)하고 있으므로, 주(主)로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행(行)하나, 정(精)이 발산(發散)하여 기(氣)로 화(化)하는 일이 있으므로, 혹(或) 군취(群聚)로써 통체생활(統體生活)을 행(行)하는 자(者)가 있으며, 사람은 주(主)로 통체생활(統體生活)을 행(行)하나, 기(氣)가 취합(聚合)하면 정(精)을 이루는 일이 있으므로, 사람중(中)에는 혹(或) 사욕(私慾)만을 위(爲)하는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행(行)하는 자(者)가 있으며, 귀신(鬼神)은 일정(一定)한 방소(方所)가 없으므로, 지공(至公)하여 사(私)가 없고 지명(至明)하여 사(邪)가 없고,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 만물(萬物)을 재성(裁成)하나니, 역(易)에 「利用出入 民咸用之 謂之神 = 용(用)을 이(利)하여 출입(出入)하여 민(民)이 다 용(用)함을 신(神)이라 이른다」【註十五】함은, 만민(萬民)의 일용(日用)을 이(利)롭게 하여 그 생존(生存)을 모두 농후(濃厚)케 하는 것이 곧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임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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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鬼神)의 이(理)와 정치(政治)
이와 같이 귀신(鬼神)이라 함은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사후(死後)에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귀신(鬼神)이 되며, 그 작용(作用)은 영통(靈通)하고 변화막측(變化莫測)하여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고 심원(深遠)과 미래(未來)의 일을 통지(洞知)하며,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주고 특(特)히 기(氣)의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겸허(謙虛)하는 자(者)를 복우(福佑)한다. 그러나 귀신(鬼神)은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 소장(消長)․성쇠(盛衰)가 있어, 어느 기간(期間)을 지나면 스스로 소산(消散)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植物)과 동물(動物), 동물(動物)과 사람과의 사이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서로 분리(分離)할 수 없는 관련(關聯)이 있음과 같이 사람과 귀신(鬼神)과의 사이에도 서로 감응(感應)하는 이(理)가 있으니 이를 천인감응(天人感應) 또는 신인감응(神人感應)이라 한다. 역(易)에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 역(易)은 사(思)도 없고 위(爲)도 없고 적연(寂然)히 동(動)치 아니하다가 감(感)하매 드디어 천하(天下)의 고(故)를 통(通)하나니, 천하(天下)의 지신(至神)함이 아니면 누가 능(能)히 이에 여(與)하리오」【註十六】하고, 또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 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오,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이니, 이가 써 변화(變化)를 이루고 귀신(鬼神)을 행(行)하는 바이라」【註十七】하니, 이것은 모두 귀신(鬼神)과 사람이 서로 감응(感應)함을 말함이오, 또 「變化云爲 吉事有祥 =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함에 길사(吉事)는 상(祥)이 있다」【註十八】하니, 이는 사물(事物)의 변화(變化)와 언어(言語)․동작(動作)에 길(吉)한 일에는 경복(慶福)의 징조(徵兆)가 나타나고, 흉(凶)한 일에는 재이(災異)의 징조(徵兆)가 나타남을 말함인데, 이것도 귀신(鬼神)과 사람의 감응(感應)하는 이(理)에 의(依)하여 장차(將且) 길흉(吉凶)이 있을 때에는 귀신(鬼神)이 먼저 그 전조(前兆)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귀신(鬼神)의 영통(靈通)․변화(變化)․감응(感應) 등(等) 작용(作用)으로써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 합(合)하고 이상적(理想的)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라 하여, 귀신(鬼神)의 이(理)를 실제(實際)의 정치면(政治面)에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귀신(鬼神)의 이(理)라 함은 신도(神道)․신화(神化)․신물(神物) 등(等)으로 정치(政治)를 행(行)하여,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마치 새가 공중(空中)을 비행(飛行)하고 짐승이 임중(林中)을 주약(走躍)하고 고기가 수중(水中)을 잠영(潛泳)하되 스스로 그 비행(飛行)․주약(走躍)․ 잠영(潛泳)하는 까닭을 알지 못함과 같이, 자연(自然)스러운 정치(政治)속에서 그 생존(生存)을 즐겨 하되, 그것이 누구의 덕택(德澤)인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도(神道)라 함은 역(易)에 「聖人以神道 設敎而天下服矣 = 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써 교(敎)를 설(設)하매 천하(天下)가 복(服)한다」【註十九】함과 같이, 이간정치(易簡政治)를 말함이오, 신화(神化)라 함은 역(易)에「神而化之 使民宜之 = 신(神)하고 화(化)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 한다」【註二十】함과 같이, 사물(事物)이 궁(窮)에 이르는 때에 자연(自然)스럽게 변통(變通)하여, 백성(百姓)이 모두 스스로 그 소의(所宜)를 얻음을 말함이오, 신물(神物)이라 함은 역(易)에「是興神物 以前民用 = 이에 신물(神物)을 흥(興)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前)한다」【註二十一】함과 같이, 민중(民衆)이 기한(飢寒)한 후(後)에 비로소 경직(耕織)을 준비(準備)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將且) 기한(飢寒)이 있을 것을 예료(豫料)하여 미리 그에 대비(對備)하고, 제방(堤防)이 터진 후(後)에 비로소 치수(治水)를 논의(論議)하는 것이 아니라, 터지지 아니 하도록 미리 수축(修築)하는것 등(等)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귀신(鬼神)의 이(理)를 천명(闡明)한 것은 다만 귀신(鬼神)을 말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오, 전(專)혀 그 이(理)를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응용(應用)하기 위(爲)함이다.
註一. 豐卦彖傳
註二. 乾卦文言
註三. 謙卦彖傳
註四. 論語 先進篇
註五. 繫辭上傳 第二章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
註七. 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篇
註八. 說卦傳 第六章
註九. 乾卦文言
註十. 繫辭上傳 第四章
註十一.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十三. 同上
註十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十五. 同上
註十六.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七. 繫辭上傳 第九章
註十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十九. 觀卦彖傳
註二十. 繫辭下傳 第二章
註二十一. 繫辭上傳 第十一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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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으로 본 수(數)와 상(象)과의 관계(關係)
‣수(數)와 상(象)
사람의 지식(知識)에는 두 가지의 최대최고(最大最高)한 것이 있으니 그 하나는 공간적(空間的)으로 유심(幽深)한 사물(事物)을 통지(洞知)하는 것이오 또 하나는 시간적(時間的)으로 미래사(未來事)를 선견(先見)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하기 위(爲)하여 이 두 가지 지식(知識)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학문(學問)이니, 역(易)에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 그 역(易)은 성인(聖人)의 써 심(深)을 극(極)하고 기(幾)를 연(硏)하는 바이라, 이 심(深)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지(志)를 통(通)하고, 이 기(幾)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무(務)를 성(成)한다 」【註一】한바, 심(深)은 유심(幽深)함이오 기(幾)는 미래사(未來事)의 기미(機微)이라, 이는 유심(幽深)을 통지(洞知)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의지(意志)를 통조(通照)하고, 기미(機微)를 선견(先見)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업무(業務)를 성수(成遂)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는 반드시 수(數)와 상(象)이 있으니, 상(象)은 수(數)가 아니면 입(立)치 못하고, 수(數)는 상(象)이 아니면 나타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수(數)를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수(數)는 체(體)가되고 상(象)은 용(用)이 되며, 상(象)을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상(象)은 체(體)가되고 수(數)는 용(用)이 되어, 수(數)와 상(象)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데, 역학(易學)이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고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는 방법(方法)은 주(主)로 수(數)와 상(象)의 이(理)를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역(易)에「知來者逆 是故易逆數也 = 내(來)를 지(知)하는 자(者)는 역(逆)하는지라 이런 고(故)로 역(易)은 역수(逆數)라」【註二】하고, 또 「極其數 遂定天下之象 = 그 수(數)를 극(極)하여 드디어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定)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이 「理之錯綜處 在數上分曉 = 이(理)의 착종(錯綜)한 곳은 수(數)의 상(上)에서 분효(分曉)한다」【註四】함은, 수(數)로써 이(理)를 명효(明曉)함을 말함이니, 지금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수학(數學)과 물상(物象)으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사물(事物)을 천명(闡明)하는 것도 또한 이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自然界)의 수(數)와 상(象)은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 등(等)으로써 정확(正確)하게 표출(表出)할 수가 있으나, 복잡(複雜)하고 미묘(微妙)하고 기복곡절(起伏曲折)이 많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대(對)하여는,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만으로서 공식(公式)을 만들기도 어렵고 이론(理論)을 전개(展開)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는 까닭이다. 즉(卽)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력(强力)히 작용(作用)하고 있어 사물(事物)의 변화(變化)가 자연계(自然界)보다 격심(激甚)하고 또 전변번복(轉變飜覆)이 무상(無常)한 까닭에 금일(今日)의 공식(公式)이 반드시 명일(明日)의 공식(公式)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이곳의 물리학적(物理學的) 계산(計算)이 반드시 저곳에도 적용(適用)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연물(自然物)의 일분자(一分子)이오 그 사람으로서 구성(構成)된 사회(社會)도 또한 자연물(自然物)의 일부(一部)이니 자연물(自然物)에 적용(適用)되는 수(數)와 상(象)이 인생사회(人生社會)에 적용(適用)되지 못할 이(理)가 없음으로 그를 척도양형(尺度量衡)하는 수(數)는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는 개산(槪算)이 아니면 안되고, 그 상(象)은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황(槪況)이 아니면 안된다. 지금에 흔히 쓰고 있는 사회통계(社會統計) 같은 것은 그 조사범위(調査範圍)나 조사사항(調査事項) 등(等)으로 볼 때에 그 대부분(大部分)은 결(決)코 정확(正確)한 것이 아니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에 불과(不過)한 것이지만 이것으로써 사회상태(社會狀態)를 대강(大綱) 파악(把握)하고 통관(通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이라, 공간적(空間的)으로는 개체(個體)를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통체(統體)를 알고, 분석(分析)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종합(綜合)을 알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현실(現實)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이상(理想)을 알고 금일(今日)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미래(未來)를 아는 학문(學問)이므로, 역학(易學)이 쓰고 있는 수(數)와 상(象)은 범위(範圍)와 준사(準似), 즉(卽)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비록 정확(正確)치 못한 듯 하나,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사회사물(社會事物)에 있어서는, 수학적(數學的)공식(公式)이나 물리학적(物理學的)계산(計算)보다, 이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고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도리어 정확(正確)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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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역(易)에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 하(河)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洛)에서 서(書)가 나오니 성인(聖人)이 칙(則)하다」【註五】함은, 성인(聖人)이 역학(易學)을 지을 때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본받음을 말함이오, 또「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 천(天)이 일(一)이오 지(地)가 이(二)이오 천(天)이 삼(三)이오 지(地)가 사(四)이오 천(天)이 오(五)이오 지(地)가 육(六)이오 천(天)이 칠(七)이오 지(地)가 팔(八)이오 천(天)이 구(九)이오 지(地)가 십(十)이니, 천수(天數)가 오(五)이오 지수(地數)가 오(五)이라, 오위(五位)가 상득(相得)하여 각각(各各) 합(合)함이 있으니,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니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라」【註六】하여,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를 천지수(天地數)의 원수(原數)라 하고,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의 기수(奇數)를 천수(天數)라 하니 천수(天數)는 곧 양수(陽數)이오,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의 우수(偶數)를 지수(地數)라 하니 지수(地數)는 곧 음수(陰數)이다. 하도(河圖)는 일(一)로부터 십(十)까지의 수(數)를 모두 쓰고, 낙서(洛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의 수(數)만을 쓰는 것이니, 이가 역학(易學)의 수리(數理)의 근원(根源)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이(理)를 수학(數學)으로써 보건대 수(數)의 원체(原體)는 십(十)을 일단계(一段階)로하여 십(十)․이십(二十)․삼십(三十) 등(等)으로 표시(表示)하고 있으나, 실제(實際)로 사용(使用)하는 수자(數字)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만 있고, 십(十)은 다시 일(一)로써 표시(表示)하고 있으니,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는 수(數)의 체(體)이오,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는 수(數)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하도(河圖)는 수(數)의 체(體)가되어 음수(陰數)와 양수(陽數)가 모두 교합(交合)하는 조직체(組織體)를 상(象)함이오, 낙서(洛書)는 수(數)의 용(用)이되어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운행력(運行力)을 상(象)함이다. 이 이(理)를 사물(事物)에 의(擬)하건대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에는 칠색(七色)이 있으나 적외선(赤外線)과 자외선(紫外線)을 합(合)하면 모두 구선(九線)이되니,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은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낙서(洛書)의 수(數)와 같은 것이오,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이 있으나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에 비치는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의 외(外)에 월(月)을 통(通)하여 구선(九線)을 통일(統一) 반영(反映)하는 제십선(第十線)이 있어 합(合)하여 십선(十線)이 되니 일월(日月)의 십선(十線)은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하는 하도(河圖)의 수(數)와 같은 것이다. 인체(人體)로써 보면 양성(陽性)은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칠규(七竅)와 전후(前後) 양음(陽陰)의 이규(二竅)를 합(合)하여 구규(九竅)가 있으니, 이는 낙서(洛書)의 상(象)이오, 음성(陰性)은 구규(九竅)의 외(外)에 음양(陰陽)의 교합작용(交合作用)을 행(行)하는 제십규(第十竅)가 있으니, 이는 하도(河圖)의 상(象)이다. 월(月)은 광선(光線)의 제십선(第十線)이 되어 지상(地上)의 조석풍우(潮汐風雨)에 대(對)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는데, 사람의 음성(陰性)이 또한 월(月)의 행도(行度)를 따라서 제십규(第十竅)로써 월경작용(月經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며, 십수(十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를 통일(統一)한 수(數)임과 같이, 월광선(月光線)은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을 통일(統一)하여 반영(反映)하는 것이오, 사람의 제십(第十)도 다른 구규(九竅)와 같은 일편(一偏)의 역(役)을 행(行)하는 것이 아니라, 실(實)로 구규(九竅)를 통일(統一)한 완전인간(完全人間)을 생산(生産)하는 임무(任務)를 다하고 있으며, 사람의 임신(姙娠)은 대체(大體)로 음력(陰曆)으로 십개월(十個月)을 요(要)하니 이는 하도(河圖)의 십수(十數)이오, 모복중(母腹中)에서 구차(九次)의 일월합삭(日月合朔)을 지나서 출생(出生)하니 이는 낙서(洛書)의 구수(九數)이다. 하도(河圖)는 체수(體數)이오 낙서(洛書)는 용수(用數)이라, 태아(胎兒)는 십개월(十個月)로써 체(體)를 삼아 태중(胎中)에서 양육(養育)되고, 일월(日月)의 구합삭(九合朔)으로써 용(用)을 삼아 외부(外部)에 출분(出奮)하는 것이니, 이가 음력(陰曆)이 태모(胎母)의 월수계산상(月數計算上), 극(極)히 중요(重要)한 소이(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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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륙(九六)과 칠팔(七八)
역학(易學)에는 사물(事物)의 유행(流行)․변화(變化)를 상(象)할때에 양(陽)에는 구수(九數)를 쓰고 음(陰)에는 육수(六數)를 쓰고 있으니, 역(易)에 효(爻)라함은 변동(變動)하는 뜻을 취(取)한 것인데 양효(陽爻)를 구(九)라하고 음효(陰爻)를 육(六)이라 함은 이 까닭이다. 원수중(原數中)의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는 양수(陽數)인데, 양(陽)은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고 발현작용(發顯作用)은 진행(進行)하는 선단(先端)에 그 주요(主要)한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양수(陽數)의 최선단(最先端)인 구수(九數)를 쓰고,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은 음수(陰數)인데, 음(陰)은 보흡작용(保翕作用)을 행(行)하고 보흡작용(保翕作用)은 중앙부(中央部)에 그 주요(主要)한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음수(陰數)의 최중앙(最中央)인 육수(六數)를 쓰는 것이다. 생물(生物)의 예(例)로써 보건대 식물(植物)의 발서작용(發舒作用)을 행(行)하는 성장점(成長點)은 지엽(枝葉)․표피(表皮) 등(等) 선단(先端)에 있고, 보흡작용(保翕作用)을 행(行)하는 수렴처(收斂處)는 간(幹) 경(莖) 등(等)의 심부(心部)에 있는 것이다.
구륙(九六)의 수(數)는 또 생성수(生成數)로써 설명(說明)되고 있으니, 역리(易理)에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까지를 생수(生數)라하고, 육칠팔구십(六七八九十)을 성수(成數)라하니, 예(例)컨대 생수(生數)라함은 초목(草木)의 종자(種子)가 발아(發芽)하기까지와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기까지의 단계(段階)를 말함이오, 이 단계(段階)는 발육(發育)만 있고 수장로사(收藏老死) 등(等) 변화(變化)가 없음으로 생수(生數)에는 변화(變化)가 없고, 성수(成數)는 초목(草木)의 간경지엽(幹莖枝葉) 등(等)이 발현(發顯)한 후(後)나, 사람이 출생(出生)한 후(後)와 같으므로, 거기에는 영고장로(榮枯壯老) 등(等)의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다. 양(陽)은 생장(生長)․성대(盛大) 등(等) 작용(作用)이 있고, 음(陰)은 수렴(收斂)․축소(縮少) 등(等) 작용(作用)이 있는지라, 성수(成數) 육칠팔구십(六七八九十)의 중(中)에서 칠구(七九)는 기(奇)하여 양(陽)에 속(屬)함으로 생장작용(生長作用)이 있고 육팔십(六八十)은 우(偶)하여 음(陰)에 속(屬)함으로 수축작용(收縮作用)이 있는 것이다. 칠(七)은 양(陽)의 생장(生長)하는 시초(始初)이므로 소양(少陽)이되고, 구(九)는 양(陽)의 생장(生長)의 종결(終結)이므로 노양(老陽)이되니, 노양(老陽)은 그 생장(生長)이 궁(窮)하고 물(物)이 궁(窮)하면 변(變)하는지라, 양(陽)이 구(九)에 이르면 노(老)하여 반드시 수축작용(收縮作用)으로 전화(轉化)하고, 구(九)가 수축(收縮)하면 십(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강(下降)하여 팔(八)이 된다. 그러므로 팔(八)은 음(陰)의 수렴작용(收斂作用)의 시초(始初)로서 소음(少陰)이 되고 소음(少陰)이 더욱 수축(收縮)하면 육(六)이 됨으로 육(六)을 노음(老陰)이라 한다. 음(陰)이 육(六)에 이르러 노(老)하면 반드시 변(變)하는데, 음(陰)이 변(變)하는 때는 그 내부(內部)에 양(陽)을 태생(胎生)하나니, 그러므로 노음(老陰)이 생산(生産)한 태아(胎兒)는 소양(少陽)인 칠(七)이된다.
노소음양(老少陰陽)의 수(數)를 수학(數學)으로 써 보건대, 양(陽)은 원(圓)하고 음(陰)은 방(方)한지라, 원수중(原數中)에서 원(圓)을 이루는 자(者)는 오직 육(六)으로써 일(一)을 포(包)하는 것이 있으니, 그 중(中)을 허(虛)하게하면 육(六)이되고 그 중(中)을 실(實)하게하면 칠(七)이되며, 방(方)을 이루는 자(者)는 오직 팔(八)로써 일(一)을 포(包)하는 것이 있으니 그 중(中)을 실(實)하게하면 구(九)가되고 그 중(中)을 허(虛)하게하면 팔(八)이된다. 양(陽)의 성(性)은 중실(中實)하고 음(陰)의 성(性)은 중허(中虛)함으로, 양(陽)은 오직 칠(七)이 원(圓)하고 실(實)하여 성양(盛陽)이되니 이가 곧 소양(少陽)이오, 음(陰)은 오직 팔(八)이 방(方)하고 허(虛)하여 장음(壯陰)이되니 이가 곧 소음(少陰)이다. 구(九)가 비록 실(實)하나 그 적(積)이 방(方)함으로 음(陰)으로 변(變)할 기(機)를 가지고 있으니, 이 까닭에 구(九)는 노양(老陽)이되는 것이오, 육(六)이 비록 허(虛)하나 그적(積)이 원(圓)함으로 양(陽)으로 변(變)할 기(機)를 가지고 있으니, 이 까닭에 육(六)은 노음(老陰)이 되는 것이다.
구육칠팔(九六七八)의 수(數)와 노소음양(老少陰陽)의 이(理)가 사물(事物)에 나타나는 몇 가지 예(例)를 보면, 양수(陽數)는 구(九)에 극(極)하고 음수(陰數)는 육(六)에 극(極)하는지라, 천지간(天地間)의 일월수화(日月水火)는 음양(陰陽)의 원체(原體)인데, 화(火)의 양(陽)이 극(極)한 것은 태양(太陽)이오 수(水)의 음(陰)이 극(極)한 것은 설화(雪花)이니, 그러므로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이 발현(發顯)을 극(極)한 것은 구선(九線)이되고, 설화(雪花)가 응결(凝結)을 극(極)한 것은 육화(六花)가 되는 것이다. 또 남녀(男女)의 생장기(生長期)로써 보면 여자(女子)는 소음(少陰)의 기(氣)를 상(象)함으로 소양수(少陽數)인 칠(七)을 만나는 때에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하고, 남자(男子)는 소양(少陽)의 기(氣)를 상(象)함으로 소음수(少陰數)인 팔(八)을 만나는 때에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한다. 그러므로 대체(大體)로 여자(女子)는 초칠세(初七歲)에 신기(腎氣)가 성(盛)하고 이칠(二七)의 십사세(十四歲)에 월경(月經)이 통(通)하고 칠칠(七七)의 사십구세(四十九歲)에 생식작용(生殖作用)이 그치며 남자(男子)는 초팔세(初八歲)에 신기(腎氣)가 실(實)하고 이팔(二八)의 십육세(十六歲)에 정기(精氣)가 일(溢)하고 팔팔(八八)의 육십사세(六十四歲)에 치발(齒髮)이 쇠모(衰耗)하는 것이다. 또 노양(老陽)이 전화(轉化)하여 소음(少陰)을 생(生)하니 이는 음(陰)이 양(陽)에서 생(生)함이오, 노음(老陰)이 포태(胞胎)하여 소양(少陽)을 생(生)하니 이는 양(陽)이 음(陰)에서 생(生)함이라, 그러므로 사람의 유전(遺傳)도 대체(大體)로 남자(男子)는 모(母)를 유전(遺傳)하고 여자(女子)는 부(父)를 유전(遺傳)하는 경향(傾向)이 많다고 한다, 또 생수(生數)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는 복중(腹中)에 있는 태아(胎兒)를 상(象)한 것이라 생수(生數)의 총수(總數)는 합(合)하여 십오(十五)이오 하도(河圖)의 중앙궁(中央宮)이 또한 십오(十五)이니, 이 중앙궁(中央宮)을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태아시대(胎兒時代)와 같고, 태아자체(胎兒自體)로써 보면 제부(臍部)와 같다. 그러므로 태아(胎兒)는 오직 제부(臍部)로써 호흡(呼吸)․섭양(攝養)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며,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는 때는, 생수(生數) 십오(十五)가 외부(外部)에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발현(發顯)하는 생수(生數)가 곧 변화(變化)하는 성수(成數)로 되나니, 소위(所謂) 노양노음(老陽老陰)의 구륙(九六)도 합(合)하면 십오(十五)가 되고 소양소음(少陽少陰)의 칠팔(七八)도 합(合)하면 십오(十五)가 되는 것은 태아(胎兒)와 출산아(出産兒)가 동일(同一)한 체(體)이므로 태아(胎兒)의 수(數)와 출산아(出産兒)의 수(數)는 또한 그 본수(本數)가 동일(同一)한 까닭이다. 또 소양(少陽)은 물(物)의 장성기(長盛期)이니 하(下)로부터 상승(上升)하여 생장(生長)하는 상(象)이오, 소음(少陰)은 물(物)의 성숙기(成熟期)이니 상(上)으로부터 하강(下降)하여 퇴폐(頹廢)하는 상(象)이라,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발전(發展)같은 것도 그의 흥왕(興旺)은 하부(下部)로부터 진출(進出)하는 신생세력(新生勢力)의 창조작용(創造作用)에 의(依)하여 이루어지고 그의 쇠약(衰弱)은 상층(上層)에 반거(盤據)한 기성세력(旣成勢力)의 부패작용(腐敗作用)으로부터 시작(始作)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의 사상책수(四象策數)에 노양(老陽)은 삼십육(三十六)이오 노음(老陰)은 이십사(二十四)이오 소양(少陽)은 이십팔(二十八)이오 소음(少陰)은 삼십이(三十二)이니, 이가 또한 구륙칠팔(九六七八)의 발전(發展)한 것인데, 노양(老陽)과 노음(老陰)을 합(合)하면 육십(六十)이되고 소양(少陽)과 소음(少陰)을 합(合)하면 또한 육십(六十)이 된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수(數)에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에는 육십(六十)의 수(數)가 있는 것이다. 이 육십(六十)은 원수(原數)의 중수(中數)로서도 설명(說明)되나니, 천수(天數)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에 오(五)가 중수(中數)이오 지수(地數)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에 육(六)이 중수(中數)이라, 오륙(五六)의 수(數)는 인체(人體)의 오장(五臟)과 육부(六腑)가 그 일례(一例)이다. 장부(臟腑)에는 음양(陰陽)의 양면(兩面)이 있으니, 오장(五臟)은 체(體)는 음(陰)이오 용(用)은 양(陽)이므로 그 수(數)가 오(五)가되고, 육부(六腑)는 체(體)는 양(陽)이오 용(用)은 음(陰)이므로 그 수(數)가 육(六)이 된 것이다. 장부(臟腑)에 모두 음양량면(陰陽兩面)이 있음과 같이, 천수(天數) 오(五)에도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그 수(數)는 십(十)이되고, 지수(地數) 육(六)에도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그 수(數)는 십이(十二)가되니 육갑설(六甲說)의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는 이에 근원(根源)하며,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주회(湊會)하여 육십갑자(六十甲子)가되어, 지금의 술수학(術數學)에 널리 응용(應用)되고 있으며, 역학(易學)에는 육십(六十)으로써 물(物)의 발전과정(發展過程)의 일절(一節)을 이룬다 하여, 역(易)의 서괘(序卦)에는 제육십괘(第六十卦)에 절괘(節卦)를 배(配)한 것이다.
역(易)에는 또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과 시수(蓍數) 사십구(四十九)와 괘수(卦數) 육십사(六十四)가 있는데 이는 소양칠(少陽七) 소음팔(少陰八)과 관련(關聯)되고 있으니, 역(易)에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 대연(大衍)의 수(數)가 오십(五十)이오 그 용(用)은 사십구(四十九)라」【註七】한바 오십(五十)과 사십구(四十九)는 칠수(七數)와 관련(關聯)하고 있다. 지금의 수학(數學)에 방원(方圓)을 비례(比例)할때에 오직 직경(直徑)이 칠(七)인 자(者)가 방주(方周)가 이십팔(二十八)이오 원주(圓周)가 이십이(二十二)이니, 이것이 양적(兩積)이 서로 비례(比例)하는 율(率)이 되는데, 이십팔(二十八)과 이십이(二十二)를 합(合)한 것이 곧 오십(五十)이다. 원(圓)은 양(陽)이오 방(方)은 음(陰)이라, 이 오십(五十)은 음양(陰陽)이 동일(同一)한 직경(直徑)으로된 양주(兩周)의 교합(交合)한 것으로서, 대연(大衍)의 수(數)가 되는 것이다. 또 구고법(句股法)(피다고라스 原理) 은 구(句)가 삼(三)이오 고(股)가 사(四)이오 현(弦)이 오(五)이니 구삼고사(句三股四)는 또한 칠(七)에서 생(生)한 것이며, 구(句)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구(九)이오, 고(股)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십육(十六)이오 현(弦)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이십오(二十五)로서 또한 합(合)하여 오십(五十)이라는 대연수(大衍數)가 되는 것이다. 오십(五十)은 대연수(大衍數)의 체(體)인데 이것을 개방(開方)하면 칠(七)이되어 일수(一數)가 부진(不盡)하고 사십구(四十九)에 그치니 부진(不盡)하는 일수(一數)는 대연체(大衍體)의 중심(中心)이 되어 변동(變動)치 아니하고, 사십구(四十九)는 대연(大衍)의 용(用)이되는 것이다. 역(易)에 「蓍之德圓以神 卦之德方以知 = 시(蓍)의 덕(德)은 원(圓)하여 써 신(神)하고, 괘(卦)의 덕(德)은 방(方)하여 써 지(知)하다」【註八】한바, 시수(蓍數)는 사십구(四十九)를 쓰니 사십구(四十九)는 칠칠(七七)이오 칠(七)은 소양(少陽)의 수(數)로서 원(圓)을 이루고 있으며, 괘수(卦數)는 육십사(六十四)를 쓰니 육십사(六十四)는 팔팔(八八)이오 팔(八)은 소음(少陰)의 수(數)로서 방(方)을 이루고 있음을 말함이다.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이라는 수(數)는 음성(陰性)의 생식작용(生殖作用)이 그치는 사십구세(四十九歲)의 다음해이라, 인생(人生)의 쇠로(衰老)는 실(實)로 이때로부터 시작(始作)하여 일생중(一生中)의 일대전환기(一大轉換期)를 짓고 있으니, 고어(古語)에 「사람이 오십(五十)에 시쇠(始衰)한다」하고, 또 「오십(五十)인 자(者)가 백(帛)이 아니면 덥지 아니하다」한 것 등(等)은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이 인생생활(人生生活)에 큰 관련(關聯)을 가지고 있음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구륙칠팔(九六七八)의 수(數)는 만물(萬物)이나 인생(人生)의 생존(生存)에 관련(關聯)되고 있으므로 천지(天地)의 시운(時運)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발전(發展)에도 그 근저(根柢)에는 이 수(數)가 유행(流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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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륙칠팔(九六七八)은 생명(生命)의 호흡(呼吸)
이상(以上)에 말한 바의 구륙칠팔(九六七八)의 수(數)는 만상(萬象)의 체(體)가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용(用)이된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모두 사시(四時)의 상(象)이 있으니,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일년(一年)의 사시(四時)임과 같이 주야조석(晝夜朝夕)은 일일(一日)의 사시(四時)이오, 생장수장(生長收藏)은 생물일생(生物一生)의 사시(四時)이오, 구륙칠팔(九六七八)은 수(數)의 사시(四時)이니, 노양구(老陽九)는 하(夏)이오 노음육(老陰六)은 동(冬)이오 소양칠(少陽七)은 춘(春)이오 소음팔(少陰八)은 추(秋)이다. 그리하여 동하(冬夏)의 한서(寒暑)가 기후(氣候)의 양극(兩極)이되고 온량(溫凉)이 그 중간(中間)에 행(行)함과 같이 천지(天地)가 위(位)를 설(設)하매 일월(日月)이 기중(其中)에 행(行)하고, 건곤(乾坤)이 열(列)을 성(成)하매 역(易)이 기중(其中)에 입(立)하고, 구륙(九六)이 음양(陰陽)의 양극(兩極)에 입(立)하매 칠팔(七八)이 그 중간(中間)에 행(行)하는 것이다. 구(九)는 건(乾)의 수(數)이오 육(六)은 곤(坤)의 수(數)이라 건(乾)의 덕행(德行)은 평이(平易)하고 곤(坤)의 덕행(德行)은 간약(簡約)함으로, 구륙(九六)은 또한 천지(天地)의 이간작용(易簡作用)이되며, 칠팔(七八)은 고동(鼓動)․시행(施行)하는 수(數)로서 산택(山澤)․뇌풍(雷風)․수화(水火)가 되나니, 그러므로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이간정치(易簡政治)가 그 위(位)를 정(定)하고 예악(禮樂)이 그 중(中)에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모두 생명(生命)을 가지고 있고, 생명(生命)을 가지고 있는 자(者)는 반드시 호흡운동(呼吸運動)을 행(行)하는지라.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冬至之後爲呼 夏至之後爲吸 此天地一歲之呼吸也 = 동지(冬至)의 후(後)는 호(呼)가되고 하지(夏至)의 후(後)는 흡(吸)이되니 이는 천지(天地)의 일세(一歲)의 호흡(呼吸)이라」【註九】한바, 호(呼)는 만물(萬物)을 발서(發舒)하여 써 출현(出顯)함이오 흡(吸)은 만물(萬物)을 수렴(收斂)하여 써 입장(入藏)함이라, 그러므로 현장(顯藏)은 일세(一歲)의 호흡(呼吸)이오 유명(幽明)은 일일(一日)의 호흡(呼吸)이오 생물(生物)의 생성(生成)은 일생(一生)의 호흡(呼吸)이오 구륙(九六)은 수(數)의 호흡(呼吸)이오 이간정치(易簡政治)는 민중(民衆)의 호흡(呼吸)이다. 생물체(生物體)의 기맥순환(氣脉循環)이 순조(順調)롭지 못한 때에 호흡운동(呼吸運動)이 건체(蹇滯)하여 천촉(喘促)․질식(窒息) 등(等) 현상(現象)이 생(生)함과 같이,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면 민중(民衆)의 생활(生活)이 험조(險阻)하여 건전(健全)한 호흡작용(呼吸作用)을 행(行)치 못한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구륙수(九六數)의 자연(自然)스러운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자연(自然)스러운 호흡(呼吸)으로써 그 생명(生命)을 호전(護全)하고 있으되, 오직 우리 인생(人生)은 소위(所謂)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그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 수도 있고 또 험조(險阻)할수도 있으니, 이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자유행위(自由行爲)는 결(決)코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반드시 대대양면(對待兩面)이 있어 선악(善惡)이 상수(相隨)하고 미추(美醜)가 병행(並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시운(時運)의 추이(推移)와 세태(世態)의 변천(變遷)에 대(對)하여 총명예지(聰明叡知)로써 항상(恒常) 수(數)를 구극(究極)하고 상(象)을 관찰(觀察)하여 써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고, 미래(未來)를 선견(先見)하여, 국가(國家)와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건전(健全)한 호흡운동(呼吸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건전(健全)한 호흡(呼吸)이 곧 생명(生命)이오, 또한 생생불궁(生生不窮)하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十章
註二. 說卦傳 第三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章
註四. 徐花潭先生集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別表에 河圖洛書의 圖面을 揷入함
註六. 繫辭上傳 第九章
註七. 同上
註八.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九. 皇極經世觀物外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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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으로 본 시운(時運)의 변천(變遷)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시운(時運)의 상징(象徵)
하도(河圖)는 북(北)의 일육(一六)은 수(水)이니 동(冬)의 상(象)이오, 동(東)의 삼팔(三八)은 목(木)이니 춘(春)의 상(象)이오, 남(南)의 이칠(二七)은 화(火)이니 하(夏)의 상(象)이오, 서(西)의 사구(四九)는 금(金)이니 추(秋)의 상(象)이오, 중앙(中央)의 오십(五十)은 토(土)이니 일세(一歲)의 상(象)이니, 사시(四時)의 수(數)가 모두 본위(本位)에 안정(安定)하고, 중앙(中央)의 오(五)와 십(十)을 중심(中心)으로하여 사시(四時)의 기(氣)가 융화(融化)하여 통일체(統一體)를 이루고, 또 그 수(數)가 일(一)로부터 십(十)까지가 구전(具全)하여 수(數)의 체(體)가되어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는 상(象)이며, 낙서(洛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만 있으므로 수(數)의 용(用)이되어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하는 상(象)이니, 이 까닭에 하도(河圖)의 중앙(中央)에 있는 오(五)와 십(十)이 낙서(洛書)에는 팔방(八方)에 산포(散布)하여 종(縱)으로나 횡(橫)으로나 또는 사대방(斜對方)으로나 모두 십오(十五)를 이루고 있으며, 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사구(四九)와 이칠(二七)의 위(位)가 상역(相易)하니, 이는 금(金)과 화(火), 하(夏)와 추(秋)의 기(氣)가 상전(相轉)하여 상극작용(相克作用)을 행(行)함이라, 무릇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고 극(克)의 속에 생(生)이 있어 생생극극(生生克克)으로 써 생생불궁(生生不窮)하나니, 낙서(洛書)는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하여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음을 상(象)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복희도(伏羲圖)의 준칙(準則)이되고, 낙서(洛書)는 문왕도(文王圖)의 준칙(準則)이되니 【註一】복희도(伏羲圖)는 하도(河圖)의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함을 상(象)하고 문왕도(文王圖)는 낙서(洛書)의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함을 상(象)한 것이다. 이를 식물(植物)의 생리(生理)에 의(依)하건대 하도(河圖)는 음양(陰陽)을 보합(保合)하고 있는 과실(果實)의 상(象)이오, 낙서(洛書)는 간경지엽(幹莖枝葉) 등(等)이 발서(發舒)하는 상(象)이다. 그러나 과실(果實)에도 장차(將且) 발아(發芽)하려하는 춘(春)의 과실(果實)과 장차(將且) 성숙(成熟)하려하는 추(秋)의 과실(果實)이 있는지라, 복희도(伏羲圖)는 괘획(卦劃)이 모두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를 향(向)하여 발현(發顯)하는 상(象)을 표시(表示)하고, 또 그 수(數)가 일(一)과 팔(八)이 상대(相對)하여 구(九)가되고, 이(二)와칠(七), 삼(三)과 육(六), 사(四)와 오(五)가 모두 상대(相對)하여 구(九)가되어, 음양보합(陰陽保合)의 속에 양기발동(陽氣發動)의 기(機)를 포함(包含)하고 있으므로, 복희도(伏羲圖)는 신아(新芽)가 장차(將且) 발동(發動)하려하는 춘(春)의 과실(果實)의 상(象)이다. 문왕도(文王圖)는 그 괘획(卦劃)이 또한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를 향(向)하여 장성(長成)하는 상(象)을 표시(表示)하고 있으나, 낙서(洛書)의 상대방(相對方)에 일(一)과 구(九)가 십(十)이되고 이(二)와팔(八), 삼(三)과칠(七), 사(四)와육(六)이, 모두 십(十)이되어, 용(用)의 속에 체(體)를 함유(含有)하여 장차(將且) 과실(果實)을 결성(結成)하려하는 기(機)를 포장(包藏)하고 있는 것이다.
복희도(伏羲圖)는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조직(組織)을 상(象)한 것인데, 이 원리(原理)를 주야(晝夜)의 상(象)으로써 표시(表示)하면 상오(上午) 일시반(一時半)부터 사시반(四時半)까지를 신(晨)이라하고, 사시반(四時半)부터 칠시반(七時半)까지를 조(朝)라하고, 칠시반(七時半)부터 십시반(十時半)까지를 조양(朝陽)이라하고, 십시반(十時半)부터 하오(下午) 일시반(一時半)까지를 오(午)라하고, 하오(下午) 일시반(一時半)부터 사시반(四時半)까지를, 석양(夕陽)이라하고, 사시반(四時半)부터 칠시반(七時半)까지를 석(夕)이라하고, 칠시반(七時半)부터 십시반(十時半)까지를 혼(昏)이라하고, 십시반(十時半)부터 익일(翌日) 상오(上午) 일시반(一時半)까지를 야반(夜半)이라 하는바, 이를 음양(陰陽)으로 나누면 상오(上午)는 양(陽)이오 하오(下午)는 음(陰)이며, 다시 상오중(上午中)에 신(晨)과 조(朝)는 음(陰)이오, 조양(朝陽)과 오(午)는 양(陽)이며, 하오중(下午中)에 석양(夕陽)과 석(夕)은 양(陽)이오, 혼(昏)과 야반(夜半)은 음(陰)이며 다시 이것을 음양(陰陽)으로 나누면 신(晨)은 음(陰)이오 조(朝)는 양(陽)이며, 조양(朝陽)은 음(陰)이오 오(午)는 양(陽)이며, 석양(夕陽)은 양(陽)이오 석(夕)은 음(陰)이며, 혼(昏)은 양(陽)이오 야반(夜半)은 음(陰)이다. 이를 도(圖)로써 표시(表示)하면 다음의 페이지와 같다. (陽은 • 陰은••)
이리하여 천지(天地)․수화(水火)․뇌풍(雷風)․산택(山澤)이 각기(各其) 상대(相對)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면서 통일체내(統一體內)에 보합(保合)되어 있는 것이다.
문왕도(文王圖)의 순서(順序)는 설괘전(說卦傳)에 말한바와 같고, 거기에는 천지(天地)․수화(水火)․뇌풍(雷風)․산택(山澤)과 같은 대대(對待)는 없으나,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대대(對待)가 없으면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는 것이므로, 문왕도(文王圖)에도 또한 음양소장(陰陽消長)의 형태(形態)를 가진 대대(對待)가 매매(每每) 상대(相對)하고 있다. 건진감간(乾震坎艮)은 양괘(陽卦)이오, 곤손이태(坤巽離兌)는 음괘(陰卦)이라, 역리(易理)에 양괘(陽卦)의 성(性)은 상승(上升)함으로 그 발현(發顯)하는 작용(作用)이 상(上)에 있으니, 그 상(上)의 일효(一爻)를 떼어내어 발현(發顯)함을 억제(抑制)하고, 그 반대(反對)되는 일효(一爻)를 하(下)에 가(加)하여 하강(下降)을 조장(助長)하면 음성(陰性)으로 전화(轉化)하며, 음괘(陰卦)의 성(性)은 하강(下降)함으로 그 응수(凝收)하는 작용(作用)이 하(下)에 있으니, 그 하(下)의 일효(一爻)를 떼어내어 응수(凝收)함을 억제(抑制)하고, 그 반대(反對)되는 일효(一爻)를 상(上)에 가(加)하여 상승(上升)을 조장(助長)하면 양성(陽性)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다. 이 이(理)에 依하여
건괘(乾卦)에 상(上)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손(巽)이되고, 손괘(巽卦)에 하(下)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건(乾)이되니, 이 건손(乾巽)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진괘(震卦)에 상(上)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태(兌)가되고, 태괘(兌卦)에 하(下)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진(震)이되니, 이 진태(震兌)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감괘(坎卦)에 상(上)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이(離)가되고, 이괘(離卦)에 하(下)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감(坎)이 되니, 이 감리(坎離)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간괘(艮卦)에 상(上)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곤(坤)이되고, 곤괘(坤卦)에 하(下)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간(艮)이되니, 이 간곤(艮坤)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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