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원론'에 해당되는 글 108건
- 2013.09.18 삼대용의 착종 (역학원론)
- 2013.09.18 대시와정 본능은 생존작용의 발단 (역학원론)
- 2013.09.18 본능과 선악문제 (역학원론)
- 2013.09.18 선악과 미추 (역학원론)
- 2013.09.18 악의 발생하는 까닭 (역학원론)
- 2013.09.18 감응 감응은 괴위중의 상교 (역학원론)
- 2013.09.18 일음일양의 상배 (역학원론)
- 2013.09.18 이간의 이 (역학원론)
- 2013.09.18 췌취는 분산중의 통합 (역학원론)
- 2013.09.18 점지진의 이 (역학원론)
- 2013.09.18 식물과 학문의 췌취 (역학원론)
- 2013.09.18 권세와 재화의 췌취 (역학원론)
- 2013.09.18 항구는 변화중의 불변 (역학원론) 항구
- 2013.09.18 진화론과의 관계 (역학원론)
- 2013.09.18 항구는 생존의 기초 (역학원론)
‣삼대용(三對用)의 착종(錯綜)
이와같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삼재운행(三才運行)에 의(依)하여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작용(作用)을 생(生)하는데, 양기(兩氣)의 상감(相感)․양정(兩精)의 상취(相聚)․정기(精氣)의 성형(成形) 등(等) 삼대용(三對用)은 비록 그 형태(形態)는 서로 다르나, 삼대용(三對用)의 본원(本源)이 되고 있는 정(精)과 기(氣)가 서로 혼륜(渾淪)하고 있으므로 삼대용(三對用)도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것이 아니오 서로 착종(錯綜)하고 있으니,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삼대용(三對用)의 혼륜(渾淪)한 상(象)을 사회생활(社會生活)의 예(例)로 써 보건대, 개인(個人)과 사회(社會)가 혼륜(渾淪)하고 있음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가 되고, 세력(勢力)과 세력(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함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가 되고,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호근(互根)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계(關係)가 되는 것이다.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이(變異)와 왕래불측(往來不測)하는 흥폐(興廢)․존망(存亡)이 생(生)하는 것은 실(實)로 이 삼대용(三對用)이 통일체내(統一體內)에 착종(錯綜)되어 있는 까닭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繫辭上傳 第六章
註三. 說卦傳 第一章
註四. 老子道德經
註五. 說卦傳 第十章의 뜻을 해설(解說)한 것이니, 乾坤震巽坎離艮兌의 팔괘(八卦)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건(乾)을 부(父)라 하고, 곤(坤)을 모(母)라 하고, 진(震)을 장남(長男)이라 하고, 손(巽)을 장녀(長女)라 하고, 감(坎)을 중남(中男)이라 하고, 이(離)를 중녀(中女)라 하고, 간(艮)을 소남(少男)이라 하고, 태(兌)를 소녀(少女)라 하니, 장(長)은 선(先)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중(中)은 중(中)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소(少)는 말(末)에 생(生)함을 상(象)함이라, 장남(長男)․장녀(長女)는 뇌(雷)와 풍(風)이니 곧 기(氣)이오 중남(中男)․중녀(中女)는 수(水)와 화(火)이니 곧 정(精)이오 소남(少男)․소녀(少女)는 산(山)과 택(澤)이니 곧 형(形)이다. 이 장중소(長中少)의 선(先) 중(中) 말(末) 순서(順序)는 또한 기(氣)․정(精)․형(形)의 출생순서(出生順序)와 명합(冥合)하는 것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의 幽明․死生 鬼神과 說卦傳 第二章의 陰陽․柔剛․仁義
註七. 繫辭上傳 第二章
註八. 說卦傳 第三章
註九.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 繫辭下傳 第八章
註十一. 說卦傳 第三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三. 說卦傳 第三章
註十四. 繫辭上傳 第一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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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대시(大始)와 정(情)
第一節 삼정(三情)(삼본능(三本能))
‣본능(本能)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발단(發端)
만물(萬物)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는 항상(恒常) 생존(生存)의 삼정(三情)으로 부터 발단(發端)하나니, 정(情)은 즉(卽) 본능(本能)이다. 삼정(三情)은 정(精)과 기(氣)의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삼대용(三對用)으로써 발(發)하여 아무 면강(勉强)과 조작(造作)이 없이 스스로 발로(發露)하는데, 기(氣)에는 발동(發動)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정(精)에는 응주(凝做)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정(精)과 기(氣)는 합(合)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작용(作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발동(發動)하는 기(氣)는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으로써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있어 그 상괴상위(相乖相違)한 체(體)의 속에서 상인상합(相引相合)하는 용(用)을 구(求)하여 항상(恒常) 외물(外物)과 상감상응(相感相應)하려 함으로 감응(感應)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감(感)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一】 함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오, 응주(凝做)하는 정(精)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가 상여(相與)하여 분산(分散)되어 있는 개체(個體)를 취(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는 작용(作用)이 있어 항상(恒常) 자체(自體)의 성장(成長) 확대(擴大)를 도모(圖謀)하여 개체(個體)를 취(聚)하려 함으로 췌취(萃聚)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聚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취(聚)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二】 함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오, 정(精)과 기(氣)로써 구성(構成)된 형체(形體)는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서로 의부(依附)하는 작용(作用)이 있어,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變化)하는 속에서 항상(恒常) 그 형체(形體)를 영구(永久)히 존속(存續)하려 함으로 항구(恒久)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恒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항(恒)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 【註三】함은, 항구작용(恒久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다. 이 삼정(三情)은 물(物)의 자체생존(自體生存)을 위(爲)하여 반드시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물(物)의 모든 동작(動作), 행위(行爲)는 이 삼정(三情)의 어느 하나로부터 시발(始發)하는 것이다. 지금에 생물(生物)의 본능(本能)을 여러 가지로 규정(規定)하는 일이 있으나, 물(物)의 조직원리(組織原理)로써 보면 실(實)은 이 삼정(三情)에 불외(不外)한 것이다.
삼정(三情)은 만물(萬物)이 생존(生存)하기 위(爲)하여 생(生)한 것이므로 삼자중(三者中) 하나도 흠결(欠缺)할 수가 없고 또 거기에는 경중(輕重), 후박(厚薄)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정(情)의 소자출(所自出)하는 정기(精氣)가 일물중(一物中)에 혼륜(渾淪)되어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시종(始終)의 단(端)이 없고, 교호(交互)로 관련(關聯)하여 서로 전제(前提)가 되고 서로 성과(成果)가 되어 있으므로, 생물(生物)의 생존본능(生存本能)도 서로 관련(關聯)하여 있으니, 감응(感應)이 있으므로 써 음양성(陰陽性)이 상교(相交)하여 생생(生生)의 사공(事功)이 이루어져서 췌취(萃聚)와 항구(恒久)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췌취(萃聚)가 있으므로 써 본체(本體)가 성장(成長)하여 감응(感應)과 항구(恒久)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항구(恒久)가 있으므로 써 형체(形體)가 존존(存存)하여 감응(感應)과 췌취(萃聚)의 작용(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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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本能)과 선악문제(善惡問題)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함은 정(情)의 발로(發露)함이오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에는 성(性)․정(情)․의(意)․지(志)․심(心)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으니, 성(性)이라 함은 천품(天稟)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를 말함이오, 정(情)이라 함은 성(性)이 물(物)에 감촉(感觸)하여 아무런 면강(勉强)과 조작(造作)이 없이 스스로 발로(發露)하는 것이니 희(憙)․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수(羞)․욕(欲) 등(等)과 같은 것이오, 의(意)라 함은 이미 발로(發露)한 정(情)에 대(對)하여 계교상량(計較商量)하여 결단(決斷)을 내리는 것이오, 지(志)라 함은 이미 결단(決斷)한 의(意)를 실행(實行)에 옮기기 위(爲)하여 어느 방향(方向)으로 향발(向發)하는 것이오, 심(心)이라 함은 생각하는 작용(作用)의 본체(本體)를 말함이다. 고래(古來)로 소위(所謂)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 있는데,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다고 하면 정(情)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것이오, 따라서 본능(本能)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것이다. 만일 본능(本能)을 선(善)하다고 하면 본능(本能)에 의(依)한 행동(行動)은 모두 선(善)이 될 것이니, 이는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고 있는 우리 인류(人類)의 행동(行動)은 모두 선(善)이 될 것이오, 또 만일 본능(本能)을 악(惡)하다고 하면 이는 본능(本能)의 발로(發露)는 모두 악(惡)이 되어 이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악(惡)으로 충만(充滿)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생활(人類生活)은 모두 선(善)한 것도 아니오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악(惡)으로 충만(充滿)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본능(本能)에는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성(性)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大體) 선악(善惡)이라 함은 무엇인가,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오직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있을 뿐이니, 만일 천지(天地)로부터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제외(除外)하고 보면 거기에는 운행(運行)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고 만물(萬物)도 없고 오직 암흑(暗黑)한 공허(空虛)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체(體)이오,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용(用)이라, 역(易)에 「元者善之長也 = 원(元)은 선(善)의 장(長)함이라」【註四】한바, 원(元)은 물(物)의 시생(始生)하는 상(象)이오, 또 「繼之者善 = 계(繼)하는 자(者)가 선(善)하다」【註五】한바, 계(繼)는 물(物)을 시생(始生)하는 양(陽)의 작용(作用)을 상(象)함이니, 이는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용(用)이 되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을 선(善)하다고 한 것이다. 사람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에는 성(性)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와 같이 체(體)가되고 행위(行爲)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과 같이 용(用)이 되는지라,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에 선(善)이 있는 것이 아니오,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이 곧 선(善)이 됨과 같이 사람의 성(性)은 다만 천품(天稟)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가 될 뿐이오 거기에 선악(善惡)이 있을 수가 없으며, 그 성(性)이 물(物)에 감촉(感觸)하여 정(情)으로 발로(發露)하고 다시 의지(意志)의 과정(過程)을 밟아서 행위(行爲)로 나타나는 때에 비로소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제활(濟活)함을 선(善)이라 하고 자기(自己)의 생명(生命)을 내걸고 사회(社會)의 복리(福利)를 위(爲)하는 행위(行爲)를 최대(最大)의 선(善)이라 하는 것도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가 곧 선(善)이 됨을 말함이오, 이와 반대(反對)로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을 위(爲)하여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해독(害毒)하고 타인(他人)의 생명(生命)․재산(財産)을 상해(傷害)함과 같은 것은, 그 타인(他人)을 상해(傷害)하는 행위(行爲)가 곧 악(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행위(行爲)가 타(他)를 이(利)하고 해(害)하는 데서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고 또한 그것이 선악(善惡)을 판단(判斷)하는 표준(標準)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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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善惡)과 미추(美醜)
이와 같이 선악(善惡)이라 함은 행위(行爲)에서 생(生)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행위(行爲)에는 또한 선악(善惡)과 미추(美醜)의 구별(區別)이 있다. 사람의 행위(行爲)가 전(專)혀 개체(個體)에 국한(局限)하여 사회(社會)나 타인(他人)에게 아무런 영향(影響)을 미치지 아니하는 자(者)는 선행(善行)도 되지 아니하고 악행(惡行)도 되지 아니한다. 사람의 행위(行爲)는 직접(直接) 혹(或)은 간접(間接)으로 사회(社會)에 영향(影響)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나, 그 중(中)에는 또한 개체(個體)에 국한(局限)한 것이 없지 아니하니, 이러한 행위(行爲)에는 선악(善惡)이 없고 오직 미추(美醜)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행위(行爲)가 비록 가찬(可讚)할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社會)를 이(利)함이 없으면 미행(美行)은 되나 선행(善行)은 되지 못하나니, 공자(孔子)가 제순(帝舜)의 음악(音樂)을 듣고 「盡美矣 又盡善矣 = 미(美)하고 또 다 선(善)하다」【註六】하고, 주무왕(周武王)의 음악(音樂)을 듣고 「盡美矣 未盡善也 = 다 미(美)하되 다 선(善)치 못하다【註七】하니, 이는 제순(帝舜)의 음악(音樂)은 자체(自體)의 미(美)와 사회(社會)를 화성(化成)하는 선(善)을 겸유(兼有)하고 있으되 주무왕(周武王)의 음악(音樂)은 자체(自體)는 미(美)하나 은국(殷國)을 멸(滅)한 살벌(殺伐)의 기(氣)가 있으므로 진선(盡善)치 못하다 함이며, 역(易)에 양(陽)의 작용(作用)에는 흔히 선(善)을 말하고 음(陰)의 작용(作用)에는 흔히 미(美)를 말한 것은, 양(陽)은 발현(發顯)하여 행위(行爲)가 생(生)하고, 음(陰)은 함축(含蓄)하여 행위(行爲)가 외현(外現)치 아니하는 까닭이니, 이가 곧 미(美)와 선(善)을 구별(區別)하는 표준(標準)이다. 또 비록 가책(可責)할 행위(行爲)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社會)를 해(害)함이 없으면 추행(醜行)은 되나 악행(惡行)은 되지 아니하나니, 역(易)에 「老婦士夫 亦可醜也 = 노부(老婦)와 사부(士夫)가 또한 가(可)히 추(醜)하다」【註八】하여, 노부(老婦)와 소남(少男)이 결혼(結婚)함이 추(醜)하다 함을 말하고, 또 「闚觀 亦可醜也 = 규관(闚觀)하니 또한 可히 추(醜)하다」【註九】하여, 광대(廣大)한 경역(境域)을 보지 못하고 겨우 간극(間隙)으로부터 일부분(一部分)을 규견(窺見)함이 추(醜)하다 함을 말하니, 이러한 일은 추행(醜行)은 되나 죄(罪)를 범(犯)한 악행(惡行)은 되지 아니하나니, 이가 곧 악(惡)과 추(醜)를 구별(區別)하는 표준(標準)이다. 그러므로 국가(國家)의 상벌제도(賞罰制度)같은것도 선행(善行)은 포상(褒賞)하되 선(善)을 반수(伴隨)치 아니한 미행(美行)은 포상(褒賞)치 아니하며, 악행(惡行)은 처벌(處罰)하되 악(惡)에 흐르지 아니한 추행(醜行)은 처벌(處罰)치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선악(善惡)에 상대성(相對性)이 있어 동일(同一)한 행위(行爲)가 시대(時代)의 변천(變遷)으로 인(因)하여 고(古)에 선(善)한 자(者)가 금(今)에 불선(不善)하고 금(今)에 선(善)한 자(者)가 고(古)에 불선(不善)한 일도 있고, 혹(或)은 처지(處地)의 상이(相異)로 인(因)하여 차(此)에 선(善)한 자(者)가 피(彼)에 불선(不善)하고, 피(彼)에 선(善)한 자(者)가 차(此)에 불선(不善)한 일도 있으며, 종교(宗敎)의 상이(相異), 정책(政策)의 상위(相違) 등(等)이 또한 모두 아선피악(我善彼惡)을 주장(主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악(善惡)의 규준(規準)은 시대(時代)와 처지(處地)를 따라서 변화(變化)하여, 자고급금(自古及今)에 이미 그러하고 자금이후(自今以後)에 또한 그러할지라, 그러나 선악(善惡)의 규준(規準)이 변화(變化)하는 속에는 또한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항구(恒久)가 있으니, 그것은 곧 사람의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행위(行爲)는 항구불변(恒久不變)하는 선(善)이 되고, 그에 반(反)하는 행위(行爲)는 악(惡)이 되는 것이다.
소위(所謂) 도덕(道德)이라 하는 것도 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를 말함이니, 도(道)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용(用) 즉(卽) 운행(運行)이오, 덕(德)이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체(體) 즉(卽) 조직(組織)이다. 천지(天地)에 있어서는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운행(運行)을 도(道)라 하고, 물(物)을 생생(生生)하도록 구성(構成)되어 있는 조직(組織)을 덕(德)이라 하며, 사람에 있어서는 사람을 제활(濟活)하는 마음의 운행(運行)을 도(道)라 하고, 그 마음의 조직(組織)을 덕(德)이라 하니, 도(道)는 덕(德)의 용(用)이오 덕(德)은 도(道)의 체(體)이다. 그런데 선악(善惡)과 도덕(道德)이 여하(如何)히 다른가 하면, 선악(善惡)이라 함은 사람의 행위(行爲)가 실제(實際)로 사물(事物)에 나타나서 타인(他人)이나 사회(社會)에 이해(利害)를 미치게 한 때에 그 행위(行爲)의 결과(結果)를 말함이오, 도덕(道德)이라 함은 선악(善惡)을 발생(發生)하는 마음의 운행(運行)․조직(組織)의 형태(形態)를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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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의 발생(發生)하는 까닭
그러므로 선악(善惡)이라 함은 타(他)를 이(利)하고 해(害)하는 행위(行爲)를 말함이니,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로서 외부(外部)에 발로(發露)치 아니한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고, 또 희(憙)․노(怒)․애(愛)․욕(欲) 같은 정(情)의 발로(發露)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으니, 유쾌(愉快)한 일을 기뻐하고 억울(抑鬱)한 일을 노(怒)하고 이성(異性)을 연모(戀慕)하고 음식(飮食)을 욕(欲)하는 것이 아무런 선(善)도 되지 아니하고 악(惡)도 되지 아니하며, 이러한 정(情)이 발로(發露)하는 때에 의지(意志)의 계교상량(計較商量)하는 과정(過程)을 밟아서 행위(行爲)로 이행(移行)한 후(後)에 비로소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슨 까닭에 타(他)를 해(害)하는 악(惡)을 행(行)하는가, 사람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자체(自體)를 무한(無限)히 계승(繼承)하고 무한(無限)히 성장확대(成長擴大)하고 무한(無限)히 연장(延長)하려 하여 구획(區劃)된 계한(界限)이 없고, 이 계한(界限)이 없는 까닭에 능(能)히 생활(生活)의 더 일층(一層) 향상(向上)과 새로운 발달(發達)을 도모(圖謀)하여 자기(自己)를 이(利)하고 아울러 사회(社會)를 이(利)하나니, 만일 어느 계한(界限)에 정지(停止)하여 더 향상발달(向上發達)할 욕망(欲望)을 가지지 못하면 개인(個人)이나 사회(社會)는 스스로 정체(停滯)하는 것이니, 이로 써 보면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선(善)의 발원(發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향상발달(向上發達)을 위(爲)하여 계한(界限)이 없는 욕망(欲望)은 흔히 타인(他人)의 생존령역(生存領域)을 침범(侵犯)하는 일이 있으니, 이 타역침범(他域侵犯)이 곧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시단(始端)이다. 사람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함은 이를 억제(抑制)하지 못하나니 이를 억제(抑制)하면 그 생존(生存)을 완수(完遂)치 못하는 것이며, 더우기 생존본능(生存本能) 자체(自體)에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다. 다만 본능(本能)으로부터 발생(發生)하는 행위(行爲)가 타(他)를 이(利)하는 때는 선(善)이되고 타역(他域)을 침범(侵犯)하는 때는 악(惡)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말에「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 자공(子貢)이 문(問)하여 가로되 일언(一言)이 가(可)히 써 종신(終身)토록 행(行)할 자(者)가 있으리까, 자(子) 가라사대 그 서(恕)인저, 자기(自己)의 하고자 아니하는 바를 사람에게 베풀지 말지니라」【註十】하니, 타인(他人)이 자기(自己)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침범(侵犯)하는 때에 그를 배제(排除)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자기(自己)의 마음을 추(推)하여 자기(自己)도 결(決)코 타역(他域)을 침범(侵犯)치 아니하는 것이 곧 서(恕)이라, 이는 서(恕)를 종신(終身)토록 행(行)하면 일생중(一生中)에 악(惡)을 범(犯)하는 일이 없으리라 함을 말함이다. 지금 속어(俗語)에 「내가 나의 자유(自由)를 존중(尊重)하려 하면 먼저 타인(他人)의 자유(自由)를 존중(尊重)하라」함은, 서(恕)로써 타인(他人)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존중(尊重)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금(古今)의 역사(歷史)를 보건대, 국민(國民) 각자(各者)가 타인(他人)의 생존권(生存權)을 존중(尊重)하는 사회(社會)는 도덕(道德)의 세상(世上)이 되고, 권력(權力)을 배경(背景)으로하여 자기개인(自己個人)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을 방종자자(放縱自恣)히 행사(行使)하여 자기(自己)의 생존영역(生存領域)내(內)에는 타인(他人)의 입족(入足)을 엄금(嚴禁)하면서, 자기(自己)의 마제(馬蹄)는 잔민(殘民)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임의(任意)로 유린(蹂躪)하는 사회(社會)는 죄악(罪惡)의 세상(世上)이 되는 것이다.
註一. 咸卦彖傳
註二. 萃卦彖傳
註三. 恒卦彖傳
註四. 乾卦文言
註五. 繫辭上傳 第五章
註六. 論語 八佾篇
註七. 論語 八佾篇
註八. 大過卦 九五爻 小象傳
註九. 觀卦 六二爻 小象傳
註十. 論語 衛靈公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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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節 감응(感應)
‣감응(感應)은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그 형체(形體)는 상괴상위(相乖相違)하면서 그 기(氣)는 상감상응(相感相應)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니, 천지(天地)의 이기(二氣)가 감응(感應)하여 만물(萬物)을 화순(化醇)하고 빈모자웅(牝牡雌雄)이 상교(相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창조(創造)하고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이 상응(相應)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것 등(等)이 모두 감응(感應)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감응(感應)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운행(運行)은 생생불궁(生生不窮)하기 위(爲)하여 부모(父母)를 계대(繼代)할 신물(新物)을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신물(新物)을 생(生)하기 위(爲)하여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對待)라 함은 그 체(體)는 서로 괴위(乖違)하면서 그 정(情)은 서로 교합(交合)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한 때에 그 용(用)이 상교(相交)하고 체(體)의 괴위(乖違)가 없으면 용(用)의 상교(相交)도 없나니, 이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가 곧 감응(感應)이다.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은 그 신체(身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으로 그 지(志)가 상통(相通)하고, 자기(磁氣)와 전기(電氣) 등(等)이 동일(同一)한 음극(陰極)과 동일(同一)한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상동(相同)함으로 그 용(用)이 상척상배(相斥相背)하고 있으나, 음극(陰極)과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함으로 그 용(用)이 감응(感應)하여 상인(相引)하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며, 감응(感應)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정(情)이 되고 있으므로 비록 우매무지(愚昧無知)한 충어조수(虫魚鳥獸)도 능(能)히 교정(交情)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아무 의식(意識)이 없는 초목(草木)도 능(能)히 교배(交配)의 기능(機能)을 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생(生)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는때에 가장 화기(和氣)를 생(生)하는 것이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한 연후(然後)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생(生)하나니, 역(易)에「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寒暑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伸也 屈伸相感而利生焉 = 일(日)이 왕(往)한즉 월(月)이 내(來)하고 월(月)이 왕(往)한즉 일(日)이 내(來)하여 일월(日月)이 상추(相推)하여 명(明)이 생(生)하고, 한(寒)이 왕(往)한즉 서(暑)가 내(來)하고 서(暑)가 왕(往)한즉 한(寒)이 내(來)하여 한서(寒暑)가 상추(相推)하여 세(歲)가 성(成)하나니, 왕(往)하는 자(者)는 굴(屈)함이오 내(來)하는 자(者)는 신(伸)함이니 굴신(屈伸)이 상감(相感)하여 이(利)가 생(生)한다」【註一】 하니, 이(利)라 함은 의(義)의 화(和)함이니 곧 사물(事物)이 적의(適宜)히 재성(裁成)되어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얻음이라, 이는 일월(日月)과 한서(寒暑)의 왕래굴신(往來屈伸)이 상감(相感)하는 까닭에 광명(光明)이 생(生)하고 일세(一歲)가 이루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모두 조화(調和)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감(感)하매 천하(天下)가 화평(和平)하다」【註二】하여,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시킴으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감응(感應)하여 화평(和平)함을 얻음을 말함이다. 그리하여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함에는「君子居其室 出其言 善則千里之外應之 况其邇者乎 居其室出其言 不善則千里之外違之 况其邇者乎 言出乎身加乎民 行發乎邇見乎遠 言行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 군자(君子)가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선(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응(應)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불선(不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위(違)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언(言)은 신(身)에서 출(出)하여 민(民)에 가(加)하고 행(行)은 이(邇)에서 발(發)하여 원(遠)에 나타나나니, 언행(言行)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오 추기(樞機)의 발(發)함은 영욕(榮辱)의 주(主)이라, 언행(言行)은 군자(君子)가 써 천지(天地)를 동(動)하는 바이니 가(可)히 신(愼)치 아니하랴」【註三】하니, 이는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사람의 언동(言動)과 행위(行爲)는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하는 추(樞)가 되고 기(機)가 되어, 추(樞)가 동(動)하매 호(戶)가 개(開)하고 기(機)가 동(動)하매 시(矢)의 발(發)함과 같이, 그의 언행(言行)은 비록 자기(自己)의 일신(一身)에서 출발(出發)하되 그 언성(言聲)과 행적(行迹)은 멀리 민중(民衆)에 향응(響應)하는지라, 그 언행(言行)의 선불선(善不善)은 곧 민심(民心)에 감응(感應)되어 소(小)하기는 일신(一身)의 영욕(榮辱)을 초래(招來)하고, 대(大)하기는 능(能)히 천지(天地)를 감동(感動)함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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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음일양(一陰一陽)의 상배(相配)
그런데 감응작용(感應作用)은 오직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대대(對待)하여 하나는 발시(發施)하고 하나는 승수(承受)함으로써 행(行)하고, 만일 그 중간(中間)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여 삼각관계(三角關係)를 이루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파괴(破壞)되어 감응(感應)이 행(行)치 못하고 시의(猜疑)가 생(生)하며 따라서 화기(和氣)를 손상(損傷)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조해(阻害)되나니, 역(易)에 음양(陰陽)의 상여관계(相與關係)를 말하되 「三人行則損一人 一人行則得其友 言致一也 = 삼인(三人)이 행(行)한즉 일인(一人)을 손(損)하고, 일인(一人)이 행(行)한즉 그 우(友)를 득(得)하나니 이는 치일(致一)함을 말함이라」【註四】하고, 또 「三則疑也 = 삼(三)한즉 의(疑)한다」【註五】하니, 이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양인(兩人)이 상여(相與)하는 때에 그 심지(心志)가 일치(一致)하고 그 행동(行動)함이 전일(專一)한 것이오, 만일 삼각(三角)이 되면 한편으로는 그 상여(相與)할바를 미혹(迷惑)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시의(猜疑)를 생(生)하여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의 예(例)로써 보면 남성(男性)은 용(用)이오 여성(女性)은 체(體)이라, 부부(夫婦)의 감응(感應)은 오직 체용(體用)이 대대(對待)하는 일부일부(一夫一婦)제(制)가 있을 뿐이오, 그 사이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면 간위(姦僞)가 되어 가정(家庭)의 화기(和氣)를 파괴(破壞)하는 것이며,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행정부(行政府)는 용(用)이오, 민중(民衆)은 체(體)이라, 정치(政治)는 오직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이 대대(對待)하여 상의(上意)가 하달(下達)하고 하의(下意)가 상창(上暢)하여 서로 감응(感應)하여 고락(苦樂)과 안위(安危)를 한가지로 할 것이오, 만일 그 중간(中間)에 권력(權力)이나 부력(富力)을 가진 소위(所謂)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존재(存在)하여,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으로 더불어 삼각형태(三角形態)를 이루면, 그것이 상(上)으로 상부(上部)에 아첨(阿諂)하여 정령(政令)의 발시(發施)를 견제(牽制)하고 하(下)로 하민(下民)을 억압(抑壓)하여 민심(民心)의 창달(暢達)을 장색(障塞)하여, 써 상하(上下)의 감응작용(感應作用)을 조해(阻害)하고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나니, 이는 곧 사회(社會)의 간위(姦僞)이다. 고래(古來)의 정치탁란사(政治濁亂史)를 더듬어 보면 그 원인(原因)이 군주(君主)의 포학(暴虐)․혼암(昏暗)에 있느니보다 오히려 이러한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중간(中間)에 개재(介在)하여 상(上)으로 군주(君主)의 총명(聰明)을 옹폐(壅蔽)하여 간부(姦婦)노릇을 하고 하(下)로 민중(民衆)의 의사(意思)를 억제(抑制)하여 간부(姦夫)노릇을 한데에 그 원인(原因)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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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易簡)의 이(理)
그러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에는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으니, 역(易)에 「乾知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하며, 건(乾)은 이(易)로써 지(知)하고 곤(坤)은 간(簡)으로써 능(能)하며, 이(易)한즉 지(知)하기 쉽고 간(簡)한즉 종(縱)하기 쉬우며, 지(知)하기 쉬운즉 친(親)함이 있고 종(從)하기 쉬운즉 공(功)이 있으며 친(親)함이 있은 즉 가(可)히 구(久)하고 공(功)이 있은 즉 가(可)히 대(大)하며, 가(可)히 구(久)한즉 현인(賢人)의 덕(德)이오, 가(可)히 대(大)한즉 현인(賢人)의 업(業)이라」【註六】하니, 지(知)라 함은 의(義)의 정(精)함이니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적의(適宜)히 재성(裁成)하는 뜻이라, 이는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물(物)을 대시(大始)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물(物)을 작위(作爲)하여 형질(形質)을 조성(造成)하는데, 양성(陽性)은 평이(平易)한 작용(作用)으로 써 주편(周遍)하고 음성(陰性)은 간약(簡約)한 작용(作用)으로 써 능사(能事)하는지라, 평이(平易)하면 주편(周遍)하기 쉽고 간약(簡約)하면 응종(應從)하기 쉬우며, 주편(周遍)하기 쉬우면 더불어 동심(同心)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친화(親和)가 있고, 응종(應從)하기 쉬우면 더불어 협력(協力)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실공(實功)이 있으며, 친화(親和)가 있으면 서로 잔해(殘害)함이 없음으로 가(可)히 장구(長久)하고, 실공(實功)이 있으면 사업(事業)이 점점(漸漸) 적성(積成)함으로 가(可)히 확대(擴大)하는 것이니, 이러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일신(日新)의 성덕(盛德)이 행(行)하고 부유(富有)의 대업(大業)이 이루어짐을 말함이니, 곧 음양작용(陰陽作用)의 이간(易簡)의 이(理)를 인사(人事)에 의(擬)함이다. 발시(發施)하는 정령(政令)이 평이(平易)하고 가번(苛繁)치 아니하면 민중(民衆)에 주편(周遍)하기 쉬워서 상하(上下)가 친화(親和)하여 사회(社會)가 일신(日新)하고, 승수(承受)하는 민심(民心)이 간약(簡約)하고 번요(煩擾)치 아니하면 정령(政令)을 응종(應從)하기 쉬워서 실천(實踐)의 공(功)이 이루어, 사회(社會)가 부유(富有)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다시 이간(易簡)의 뜻을 말하되 「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廣大配天地 易簡之善配至德 = 그 건(乾)은 그 정(靜)하매 전(專)하고 그 동(動)하매 직(直)한지라 이로써 대(大)가 생(生)하고, 그 곤(坤)은 그 정(靜)하매 흡(翕)하고 그 동(動)하매 벽(闢)한지라 이로써 광(廣)이 생(生)하나니, 광대(廣大)는 천지(天地)에 배(配)하고 이간(易簡)의 선(善)은 지덕(至德)에 배(配)한다」【註七】하니, 건곤(乾坤)이라 함은 천지(天地)․남녀(男女) 등(等) 모든 음양성(陰陽性)의 체성(體性)을 상(象)함이라,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전일(專一)하여 하등(何等)의 사사(私邪)가 없고 그 동(動)하매 강직(剛直)하여 하등(何等)의 왜곡(歪曲)이 없으므로 발시작용(發施作用)이 극(極)히 평이(平易)하여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는 대(大)를 생(生)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보흡(保翕)하여 스스로 염장(斂藏)하고 그 동(動)하매 벽통(闢通)하여 스스로 수용(受容)함으로 승수작용(承受作用)이 극(極)히 간약(簡約)하여 만물(萬物)을 포함(包涵)하는 광(廣)을 생(生)하는데, 이간작용(易簡作用)의 광대(廣大)함은 천지(天地)와 같고 그 선(善)함은 천지(天地)의 지덕(至德)과 같다 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작용(作用)은 오직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을 뿐이라 사회(社會)에 있어서도 정령(政令)이 전직(專直)하여 일호사곡(一毫私曲)의 형(形)이 없으면 스스로 평이(平易)하고, 민심(民心)이 흡벽(翕闢)하여 일점강작(一點强作)의 적(迹)이 없으면 스스로 간약(簡約)하나니 이를 이간정치(易簡政治)라 하고, 이간정치(易簡政治)는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최대(最大)의 선(善)이되고, 최성(最盛)의 도덕(道德)이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면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스스로 험조(險阻)가 생(生)하나니, 험조(險阻)라 함은 역(易)에「夫乾 天下之至健也 德行恒易而知險 夫坤 天下之至順也 德行恒簡而知阻 = 그 건(乾)은 천하(天下)의 지건(至健)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이(易)하여 험(險)함을 지(知)하고, 그 곤(坤)은 천하(天下)의 지순(至順)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간(簡)하여 조(阻)함을 지(知)한다」【註八】하니. 양성(陽性)은 건(健)함으로 직(直)하여 간험(艱險)함이 없이 평이(平易)하니 양성(陽性)의 동(動)함이 직(直)치 못하면 험(險)이 되고, 음성(陰性)은 순(順)함으로 벽(闢)하여 조색(阻塞)함이 없이 간약(簡約)하나 음성(陰性)의 동(動)함이 벽(闢)치 아니하면 조(阻)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수록 법령(法令)의 조문(條文)이 평이(平易)하고 간약(簡約)하여 민중(民衆)에게 주편(周遍)되기 쉽고, 또 민중(民衆)도 법령(法令)을 이해(理解)하여 실천(實踐)하기 쉬운 것이며, 정치(政治)가 험조(險阻)할수록 법령(法令)이 번가(繁苛)하여 천장만조(千章萬條)의 법문(法文)과 호분루석(毫分縷析)한 규정(規定)이 민중(民衆)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고래(古來)로 법령(法令)이 평이(平易)․간약(簡約)함으로 인(因)하여 정치(政治)가 선행(善行)치 못한 예(例)가 없으니, 이는 민중(民衆)은 항상(恒常) 법령(法令)을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법령(法令)이 아무리 이간(易簡)하더라도 그를 농간(弄奸)하는 자(者)는 민중(民衆)이 아니라, 도리어 법령(法令)을 만들어 내고 법병(法柄)을 잡고 있는 자(者)가 먼저 농간(弄奸)하는 것이니 집법자(執法者)가 직(直)하고 정치(政治)가 또 직(直)하면 아무런 농간(弄奸)도 없이 스스로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여 지는 까닭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 직(直)을 거(擧)하고 왕(枉)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고 왕(枉)을 거(擧)하고 직(直)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지 아니한다」하니, 이는 정직(正直)함을 좋아하고 왕곡(枉曲)함을 싫어함은 천하(天下)의 지정(至情)이라, 이 인정(人情)에 순응(順應)하여 정직(正直)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정직(正直)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통개(通開)하여 복종(服從)하고, 그와 반대(反對)로 인정(人情)에 역행(逆行)하여 왕곡(枉曲)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왕곡(枉曲)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폐격(閉隔)하여 복종(服從)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직(直)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민심(民心)에 직통(直通)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咸卦彖傳
註三. 繫辭上傳 第八章
註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五. 損卦六三爻 小象傳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繫辭上傳 第六章
註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九. 論語 爲政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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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節 췌취(萃聚)
‣췌취(萃聚)는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
췌취(萃聚)는 만물(萬物)이 각기(各其) 분산(分散)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또 성장확대(成長擴大)함이니, 만물(萬物)의 사이에 동류(同類)가 서로 결합(結合)하여 박후(博厚)하려 하고 모든 생물(生物)이 영양분(營養分)을 섭취(攝取)하여 자체(自體)를 성장(成長)시키고, 사람이 그 활동범위(活動範圍)를 넓히고 지식(知識)․기능(技能) 등(等)을 축적(蓄積)하여 자신(自身)을 부단(不斷)히 확대(擴大)하는 것 등(等)이 모두 췌취(萃聚)의 정(情)에 의(依)함이며,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췌취(萃聚)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개체(個體)로써 보면 어느 것이 분산(分散)되어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분산(分散)의 중(中)에는 스스로 각기(各其) 유(類)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만드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대(大)하기는 일월대지(日月大地)로부터, 소(小)하기는 일충(一虫) 일초(一草)에 이르기까지 모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성장(成長)한 것이니 역(易)에「方以類聚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한다」【註一】하고, 또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種其類也 = 동성(同聲)이 상응(相應)하고 동기(同氣)가 상구(相求)하고 수(水)는 습(濕)에 유(流)하고, 화(火)는 조(燥)에 취(就)하고 운(雲)은 용(龍)을 종(從)하고, 풍(風)은 호(虎)를 종(從)하고, 성인(聖人)이 작(作)하매 만물(萬物)이 도(覩)하고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하(下)를 친(親)하나니 곧 각각(各各) 그 유(類)를 종(從)함이라」【註二】 함은, 만물(萬物)이 모두 기류(其類)를 좇아서 상취(相聚)함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은 「氣之淡一淸虛者 彌滿無外之遠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 기(氣)의 담일청허(淡一淸虛)한 자(者)가 외(外)가 없는 원(遠)에 미만(彌滿)하여 취(聚)의 대(大)한 자(者)는 천지(天地)가 되고 취(聚)의 소(小)한 자(者)는 만물(萬物)이 되며, 취(聚)하고 산(散)하는 세(勢)는 은미(隱微)하고 현저(顯著)하고 구(久)하고 속(速)함이 있을 뿐이라」【註三】하여,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 기(氣)를 췌취(萃聚)하여 이루고 췌취(萃聚)한 자(者)는 반드시 분산(分散)하는데, 그 취산(聚散)하는 형세(形勢)는 물(物)의 대소(大小)에 따라서 은현구속(隱顯久速)의 차(差)가 있다 하니, 이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췌취(萃聚)가 있으면 분산(分散)이 있고 분산(分散)이 있으면 췌취(萃聚)가 있는 이(理)를 말함이다. 이 천지(天地)는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태일체(太一體)의 이외(以外)에 별구(別區)로 조직(組織)된 천지(天地)가 있을 수 없고,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따로 독립(獨立)한 일물(一物)도 있을 수 없는지라, 태일체(太一體)의 전체(全體)로써 보면 그 속에 포함(包涵)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더 증가(增加)하지도 아니하고 더 멸손(滅損)하지도 아니하고, 차(此)에 생(生)함이 있으면 피(彼)에 멸(滅)함이 있고 차(此)에 소(消)함이 있으면 피(彼)에 장(長)함이 있으니 이가 소위(所謂) 우주(宇宙)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한편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가 있으므로 써 다른 한편에 췌취(萃聚)되는 통체(統體)가 있는 것이니 이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이 곧 췌취(萃聚)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후계자(後繼者)를 생성(生成)하면서 자체(自體)가 스스로 노쇠(老衰)로 향(向)하고 모든 동물(動物)이 식물(植物)을 식료(食料)로 하면서 또 자체(自體)가 죽어서 토중(土中)에 귀장(歸藏)하고 공중(空中)에 유산(遊散)하여 다시 식물(植物)의 양분(養分)이 되는 것 등(等)이 모두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함이다.
그런데 감응(感應)과 췌취(萃聚)는 모두 아(我)와 타(他)의 서로 응여(應與)하는 작용(作用)이로되, 그 상이(相異)한 바는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과의 사이에 행(行)하여 괴위(乖違)한 체(體)로 써 서로 응여(應與)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오, 췌취(萃聚)는 분산(分散)된 여러 개체(個體)가 서로 응여(應與)하여 통체(統體)를 성육확대(成育擴大)함이니, 가정(家庭)의 예(例)로 써 보면 부부(夫婦)가 상배(相配)하여 자손(子孫)을 생(生)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부(夫婦)․부자(父子)․형제(兄弟) 등(等)이 취합(聚合)하여 가족(家族)이라는 집단(集團)을 구성(構成)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며, 사회(社會)로써 보면 행정부원(行政府員)과 민중(民衆)의 마음이 서로 감응(感應)하여 상하(上下)의 지(志)가 상통(相通)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사상(思想)이 동일(同一)한 동지(同志)가 상합(相合)하여 단체(團體)를 조직(組織)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다. 지금 우리가 남북(南北)으로 양단(兩斷)된 국토(國土)와 각분(各分)된 동포(同胞)를 통일(統一)하려 하는 것은 우리 민족(民族)의 생존상(生存上) 스스로 발로(發露)치 아니할 수 없는 췌취(萃聚)의 정(情)이며 아국(我國)의 삼국초기(三國初期)로부터 야전공성(野戰攻城)의 싸움이 자못 허일(虛日)이 없은 것은, 평화(平和)를 애호(愛好)하는 우리 선조(先祖)들에게 상무(尙武)․호전(好戰)의 기풍(氣風)이 있어서가 아니오. 실(實)로 췌취작용(萃聚作用)에 의(依)한 민족통일(民族統一)운동(運動)의 한 산물(産物)이다. 【註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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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지진(漸之進)의 이(理)
물(物)이 췌취(萃聚)하는 자(者)는 생장(生長)이 되고 분산(分散)하는 자(者)는 소멸(消滅)이 되나니, 모든 생물(生物)이 정(精)과 기(氣)가 취합(聚合)하면 생(生)이 되고 그것이 서로 유리(遊離)하면 사(死)가 되며 사회(社會)도 민중(民衆)의 개체(個體)가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구성(構成)한 것이므로 민심(民心)이 췌취(萃聚)하는 사회(社會)는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여 흥왕(興旺)하고 민심(民心)이 이산(離散)하는 사회(社會)는 생기(生氣)가 소침(銷沈)하여 쇠약(衰弱)하며, 단체(團體)같은 것도 구성원(構成員)의 인심(人心)이 취합(聚合)하면 조직(組織)이 강고(强固)하고 인심(人心)이 분산(分散)하면 스스로 해체(解體)가 되는 것이니, 지금에 흔히 쓰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어(俗語)도 또한 이 췌취(萃聚)의 이(理)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성장(成長)함에는「점지진(漸之進)」【註五】의 이(理)가 있으니 점지진(漸之進)이라 함은 물(物)의 성장(成長)이 점(漸)을 따라서 승진(升進)한다 함이라, 역(易)에 「聚而上者 謂之升 = 취(聚)하여 상(上)하는 자(者)를 승(升)이라 이른다」하고, 또『地中生木升 君子以 積小而高大 = 지중(地中)에 목(木)이 생(生)함이 승(升)이니 군자(君子)가 써 하여 소(小)를 적(積)하여 써 고대(高大)한다」【註六】하니, 이는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생장(生長) 상승(上升)함은 지중(地中)에서 수목(樹木)이 생(生)하여 점승(漸升)하는 상(象)과 같은데, 승(升)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상진(上進)하는 것이니, 사람이 사업(事業)을 행(行)함에는 이 상(象)을 본받아서 소(小)를 취적(聚積)하여 점차(漸次) 고대(高大)로 승진(升進)하여야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장(生長)은 자체(自體)의 능동력(能動力)으로 써 일정(一定)한 순서(順序)와 시간(時間)을 경과(經過)하여 점진(漸進)치 아니하면 안되고, 비록 동식물(動植物) 같은 것을 속성양육법(速成養育法)으로 써 그 생장기간(生長期間)을 다소(多少) 단축(短縮)할 수는 있으되, 역시(亦是) 점진(漸進)하여 어느 기간(期間)을 경과(經過)치 아니하면 안되고, 사람의 사업(事業)이나 사회(社會)의 건설(建設)같은 것도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췌취(萃聚)치 아니하면 안된다. 그러나 물(物)의 소산(消散)함은 능동력(能動力)을 상실(喪失)하고 수동(受動)의 지위(地位)에 입(立)하는 것이므로, 비록 성장(成長)하는 능동과정(能動過程)에 있다 하더라도 혹시(或是) 강대(强大)한 외력(外力)의 침해(侵害)를 받는 때는 곧 수동(受動)으로 변(變)하여 저항력(抵抗力)을 상실(喪失)하고 장세월간(長歲月間)의 생장(生長)한 사공(事功)이 일조(一朝)에 소진(消盡)하는 일이 있는 것이니, 이가 소(小)하기는 일신일가(一身一家)로 부터 대(大)하기는 일국가(一國家)에 이르기까지 건설(建設)되기는 어렵고 파괴(破壞)되기는 쉬운 소이(所以)이다.
더욱이 본능(本能)에는 제한(際限)이 없는지라, 사람이 체력(體力)을 더 증강(增强)하고 지식(知識)을 더 습득(習得)하고 재화(財貨)을 더 축적(蓄積)하고 지위(地位)를 더 향상(向上)하려 하는 등(等)의 췌취작용(萃聚作用)에는 항상(恒常) 분산작용(分散作用)이 수반(隨伴)하고 있으므로 일면(一面)으로는 그 분산(分散)되는 부면(部面)을 보급(補給)하고 일면(一面)으로는 점진적(漸進的)으로 새로운 성장확대(成長擴大)를 도모(圖謀)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 까닭에 삼본능(三本能) 중(中)에 췌취작용(萃聚作用)이 가장 간험(艱險)과 위난(危難)이 많고 또 가장 다대(多大)한 노력(努力)을 요(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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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의 췌취(萃聚)
췌취작용중(萃聚作用中)에 가장 긴중(緊重)한 것은 식물(食物)의 췌취(萃聚)이니 식물(食物)은 일일(一日)에 재식(再食)치 아니하면 기아(飢餓)하고, 기아(飢餓)가 정도(程度)를 넘으면 생명(生命)을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일상활동(日常活動)하는 시간(時間)과 노력(努力)의 대부분(大部分)이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에 소비(消費)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食物)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사람이 췌취(萃聚)하고 식물(食物)이 없으면 사람이 이산(離散)하나니, 역(易)에「何以聚人曰 財 = 무엇으로 써 사람을 취(聚)할고, 가로되 재(財)라」【註七】 함은 재(財)가 있는 곳에 사람이 취(聚)함을 말함이오, 이 까닭에 고래(古來)로 국가정책중(國家政策中)에 재정경리(財政經理)가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易)에는 고대성인(古代聖人)이 괘상(卦象)을 취(取)하여 재(財)를 경리(經理)함을 말하되 「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斲木爲耟 揉木爲耒 耒耨之利 以敎天下 日中爲市 致天下之民 聚天下之貨 交易而退 各得其所 刳木爲舟 剡木爲楫 舟楫之利 以濟不通 致遠以利天下 服牛乘馬 引重致遠 以利天下 斷木爲杵 掘地爲臼 臼杵之利 萬民以濟 = 결승(結繩)을 지어 그물을 만들어 써 사냥하고 써 고기를 잡으며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굽혀 따비를 만들어 뇌누(耒耨)의 이(利)로써 천하(天下)를 가르치며, 일중(日中)에 시장(市場)을 만들어 천하(天下)의 민(民)을 이르게 하고 천하(天下)의 재화(財貨)를 모여서 교역(交易)하여 물러가서 각각(各各) 그 소(所)를 얻게 하며,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노를 만들어 주즙(舟楫)의 이(利)로 써 불통(不通)함을 건너고 원방(遠方)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움을 이끌고 먼 곳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나무를 끊어서 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호악을 만들어 구저(臼杵)의 이(利)로 만민(萬民)이 써 제(濟)한다」【註八】하니, 그물은 수렵(狩獵)과 어업(漁業)이오. 뇌누(耒耨)는 농업(農業)이오, 시장(市場)은 교역(交易)이오, 주즙(舟楫)과 우마(牛馬)는 수송(輸送)과 무역(貿易)이오, 저구(杵臼)는 정미(精米)이라, 이는 고대(古代) 성인(聖人)이 민생(民生)에 필수(必需)한 물자(物資)와 기용(器用)을 풍후(豊厚)하게 하기 위(爲)하여 기물(器物)을 발명(發明)하고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역(易)에는 그물․농구(農具)․주즙(舟楫)․저구(杵臼) 등(等)의 기물(器物)을 제작(製作)하고, 교역(交易)․교통(交通) 등(等)의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에 있어서 대개(大槪) 괘상(卦象)을 취(取)함이라 하고, 또 「以制器者 尙其象 = 써 기(器)를 제(制)하는 자(者)는 그 상(象)을 상(尙)한다」【註九】한바, 예(例)컨대 그물은 이괘(離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농구(農具)는 익괘(益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주즙(舟楫)은 환괘(渙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우마(牛馬)는 수괘(隨卦)의 象을 取하고, 杵臼는 小過卦의 象을 取하고, 市場은 噬嗑卦의 상(象)을 취(取)함이라 하나, 그 상(象)을 여하(如何)히 취(取)한지(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아니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물(器物)과 제도(制度)가 지금으로 보면 극(極)히 용이(容易)한 일이나, 고대(古代)에 있어서는 모두 당세(當世)의 큰 발명품(發明品)이오, 또 괘상중(卦象中)에 아직 발견(發見)되지 아니한 우주(宇宙)의 비밀(秘密)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 중요(重要)한 췌취작용(萃聚作用)은 학문(學問)의 췌취(萃聚)이니, 이는, 사람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로써 구성(構成)되고 있으므로 식물(食物)로써 육체(肉體)를 양(養)하고 학문(學問)으로써 정신(精神)을 양(養)하는 까닭이다. 자체(自體)가 생존(生存)하기 위(爲)하여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에 필요(必要)한 학문(學問)을 배움은 물론(勿論)이오, 나아가서 일세(一世)를 운영(運營)하는 경륜(經綸)도 이 학문(學問)에서 나오고 공간(空間)의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여 자연계(自然界)를 개척(開拓)하고, 시간(時間)의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행(前行)함과 같은 큰 지혜(知慧)도, 모두 학문(學問)에서 나오는 것이니,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이 일상(日常)의 대욕(大欲)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대욕(大欲)임과 같이, 학문(學問)의 학습(學習)도 일상(日常)의 공부(工夫)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공부(工夫)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 분(憤)을 발(發)하매 식(食)을 망(忘)하고 낙(樂)하매 우(憂)를 망(忘)하여 노(老)의 장지(將至)함을 알지 못한다」【註十】함은, 학문(學問)하기 위(爲)하여 음식(飮食)을 잊는 때가 있고 연수(年數)의 부족(不足)함을 깨닫지 못함을 말함이니, 이는 학문췌취(學問萃聚)의 정(情)에는 공간(空間)의 제한(制限)도 없고 시간(時間)의 계선(界線)도 없고 인생(人生)의 일생(一生) 정열(情熱)로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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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權勢)와 재화(財貨)의 췌취(萃聚)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를 췌취(萃聚)하는 것도, 자체(自體)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는 것이므로 또한 췌취본능(萃聚本能)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은 아(我)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을 양(養)하여 아(我)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고 또 아(我)와는 분산(分散)되지 아니함으로 그 성장확대(成長擴大)에 한계(限界)가 없으니, 이는 아(我)의 진실(眞實)한 소유물(所有物) 즉(卽) 진유(眞有)이지만,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어느 때던지 아(我)와 분산(分散)할 수 있는 것으로서,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에 의(依)한 성장확대(成長擴大)는 마치 고제(高梯)에 올라서 키가 높아지고 장검(長劍)을 휘둘러서 힘이 커짐과 같으니, 일조(一朝)에 그 고제(高梯)와 장검(長劍)을 없이하면, 일세소(一細小)한 필부(匹夫)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이러한 것은 진유(眞有)가 아니오 모두 일시(一時) 차래(借來)한 가성장(假成長)․가확대(假擴大)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재화(財貨)의 췌취(萃聚)에는 계한(界限)된 분(分)이 있으니 만일 분(分)을 넘으면 박약(薄弱)한 기초(基礎)위에 거대(巨大)한 상층구조(上層構造)를 건축(建築)함과 같은 대과(大過)의 상(象)이 되어, 그 반대방향(反對方向)인 전복(顚覆)으로 향(向)하여 도리어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해(害)하나니, 고래(古來)로 취권(聚權)․축재(蓄財)에 과분(過分)한 욕심(慾心)을 부리다가 패가(敗家)․망신(亡身)한 자(者), 그 예(例)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권세(權勢), 재화(財貨) 등(等)의 췌취(萃聚)가 분(分)을 초과(超過)함을 영(盈)이라 하고 분(分)에 도달(到達)치 아니함을 겸(謙)이라 하나니, 역(易)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고 겸(謙)을 익(益)하며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하며 귀신(鬼神)은 영(盈)을 해(害)하고 겸(謙)을 복(福)하며 인도(人道)는 영(盈)을 싫어하고 겸(謙)을 좋아한다」【註十一】함은, 월(月)은 망(望)하면 휴(虧)하고 휴(虧)하면 다시 망(望)하며, 지세(地勢)는 준고(峻高)한 者가 경괴(傾壞)하고 저평(低平)한 자(者)가 증고(增高)하며, 귀신(鬼神)은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공겸(恭謙)한 자(者)를 복(福)하며, 인정(人情)은 거만(倨慢)한 자(者)를 미워하고 겸양(謙讓)한 자(者)를 좋아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천(天) 지(地) 인(人) 귀(鬼)가 모두 영(盈)함을 경복(傾覆)하고 겸(謙)에 취귀(聚歸)함이다.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대세(大勢)의 추향(趨向)하는 방향(方向)으로 진행(進行)하는 것이라, 물(物)이 이미 영일(盈溢)하여 더 가입(可入)할 여유(餘裕)가 없는 때는 오직 경복감휴(傾覆減虧)의 길이 있을 뿐이며, 겸(謙)은 비하(卑下)함이니 비하(卑下)한 자(者)는 증익(增益)은 있으되 경복(傾覆)은 없나니, 이가 휴영익겸(虧盈益謙)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므로 역(易)에「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語以其功下人者也 = 노(勞)하되 자랑치 아니하고 공(功)이 있으되 덕(德)치 아니함은 후(厚)함의 지극(至極)함이니 그 공(功)으로 써 사람에게 하(下)함을 말함이라」【註十二】하여, 노겸(勞謙)하는 사람은 비록 큰 공로(功勞)가 있으되 덕색(德色)을 내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그 공로(功勞)로 써 사람의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한다 함을 찬양(讚揚)하니, 겸겸양양(謙謙讓讓)하여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하는 까닭에 분(分)을 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심(人心)과 중망(衆望)이 췌취(萃聚)하여 공로(功勞)가 더욱 빛나고 지위(地位)가 더욱 향상(向上)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계반급(一階半級)의 관직(官職)에 의기(意氣)가 양양(揚揚)하고 기미(驥尾)에 붙어서 돌연(突然)출세(出世)하여 자만(自滿)자명(自鳴)함과 같은 것은, 그 양(量)이 적어서 일이배수(一二盃水)에 이미 분(分)을 넘어 영일(盈溢)하여 더 췌취(萃聚)할 수 없는 소기국(小器局)이다. 이와 같이 체력(體力)이나 학문(學問)같은 것은 아(我)의 신체(身體)를 구성(構成)한 것으로서 진실(眞實)로 아(我)의 소유물(所有物)이 되고 있으나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일시(一時) 차래(借來)하여 아(我)의 임시(臨時) 관리물(管理物)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유명(有名)한 「이곡(利穀)」차마설(借馬說)에는 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 婦之於夫 婢僕之於主 其所借 亦深且多 率以爲己有 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則 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耶 = 사람의 소유(所有)한 것이 어느 것이 차(借)하지 아니한 자(者)인고, 군(君)은 역(力)을 민(民)에게서 차(借)하여 써 존(尊)하고 부(富)하고, 신(臣)은 세(勢)를 군(君)에게서 차(借)하여 써 총귀(寵貴)하고 자(子)의 부(父)에게서, 부(婦)의 부(夫)에게서, 비복(婢僕)의 주(主)에게서, 그 차(借)한 바가 또한 심(深)하고 또 다(多)하거늘, 다 써 자기(自己)의 가짐이라 하여 마침내 성(省)치 못하니 어찌 혹(惑)함이 아니리오, 진실(眞實)로 혹(或) 잠깐사이에 그 차(借)한 바를 돌려주면 만방(萬邦)의 군(君)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가(家)도 고신(孤臣)이 되거늘, 하물며 적은 자(者)이랴」【註十三】하니, 이는 일국(一國)의 군주(君主)가 극존극부(極尊極富)하는 것도 일시(一時) 국민(國民)의 역(力)을 차용(借用)하는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며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위세호강(威勢豪强)하는 것도 일시(一時) 군주(君主)의 세력(勢力)을 차용(借用)한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다. 아들이 아비의 세력(勢力)을 의시(依恃)하고 처(妻)가 남편(男便)의 세력(勢力)을 빙자(憑藉)하고, 부하(部下)가 주인(主人)의 세력(勢力)을 배경(背景)으로 하는 것 등(等)은 모두 일시(一時) 차용(借用)하는 것이다. 만일 혹시(或是) 일조(一朝)에 정세(情勢)가 변화(變化)하여, 인군(人君)도 국민(國民)의 지지(支持)를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독부(獨夫)가 되고, 권신(權臣)도 군주(君主)의 신임(信任)을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소민(小民)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그 이하(以下)의 미물(微物)․세물(細物)․두승인(斗升人)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함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를 잡으면 겸양(謙讓)하고, 부(富)하면 예(禮)를 좋아 할 것이오, 분(分)을 넘어 교영(驕盈)하면 마침내 패(敗)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乾卦文言
註三.「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
註四. 삼국(三國)이 건국(建國)되기 이전(以前)에는 수다(數多)한 부락(部落)이 각지(各地)에 산재(散在)하여 일산(一山)의 장색(障塞)과 일수(一水)의 격조(隔阻)도 스스로 한 부락국가(部落國家)를 이루어, 남방(南方)의 삼한(三韓) 지역(地域)에 만도 칠십팔국(七十八國)이라는 많은 나라가 분립(分立)하고 북방(北方)의 부여(扶餘), 옥저(沃沮) 등(等) 지방(地方)에도 불소(不少)한 부락국가(部落國家)가 있어, 서로 부락간(部落間)의 쟁투(爭鬪)가 그치지 아니하되, 이들 부락(部落)의 연합국형식(聯合國形式)으로 구성(構成)된 총왕(總王) 또는 대군장(大君長)은 이를 통어(統御)할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이때에 부여(扶餘)의 졸본부락(卒本部落)에서 「고주몽(高朱夢)」이 일어나서 고구려국(高句麗國)을 세우고 마한(馬韓)의 백제부락(百濟部落)에서 「부여온조(扶餘溫祚)」가 일어나서 백제국(百濟國)을 세우고 진한(辰韓)의 사로부락(斯盧部落)에서「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일어나서 신라국(新羅國)을 세우니, 이들은 모두 일세(一世)의 영걸(英傑)이라, 그 건국리상(建國理想)이 또한 모두 전국토(全國土)와 전민족(全民族)을 통일(統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써서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의 국가(國家)를 수립(樹立)함에 있은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三國)은 건국초기(建國初期)로부터 부근(附近)의 부락(部落)을 점차(漸次)로 병합(倂合)하여 군현(郡縣)을 만들고 그 경역(境域)을 확장(擴張)하던 중(中)에 고구려(高句麗)는 종래(從來) 중국(中國)에 빼앗긴 고토(故土)를 수복(收復)하려 하여 한국(漢國)과의 사이에 격전(激戰)이 전개(展開)되고,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하나는 남진(南進)하고 하나는 북진(北進)하다가 지금의 충청(忠淸)․전라(全羅)․경상(慶尙)의 삼도(三道) 접경지방(接境地方)에서 상우(相遇)하여 비로소 전단(戰端)을 개시(開始)하고, 고구려(高句麗)가 낙랑지방(樂浪地方)을 수복(收復)한 후(後)에 또한 남하(南下)하여 서로 전국통일(全國統一)을 목표(目標)로하고 삼각(三角)의 혼전상태(混戰狀態)를 이룬 것이다. 신라(新羅)는 마침내 당병(唐兵)을 청래(請來)하여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를 멸(滅)하니, 신라(新羅)의 왕조(王朝)를 본위(本位)로 하여보면 혹시(或是) 그러할 수도 있는 일이나, 당초(當初)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이념(理念)으로써 보면 겨우 대동강(大洞江) 이남(以南)의 지역(地域)을 차지하여 일소국(一小國)을 보유(保有)하고 북계(北界) 전역(全域)을 상실(喪失)한 것은, 안전(眼前)의 소리(小利)를 탐(貪)하여 위대(偉大)한 이상(理想)을 포기(抛棄)한 것이다. 그 후(後)에 비록 발해(渤海)가 일어나서 고구려(高句麗)구강(舊疆)을 차지하나, 이로부터 남북국(南北國)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유대(紐帶)가 끊어져서 다시 췌취(萃聚)할 기회(機會)를 가지지 못하고 영원(永遠)한 분산(分散)을 재래(齎來)한 것이다.
註五. 漸卦彖傳
註六. 序卦傳下篇에「聚而上者謂之升」이 있고 「地中生木」以下는 升卦 大象傳에 있다
註七. 繫辭下傳 第一章
註八. 繫辭下傳 第二章
註九.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 論語 述而篇
註十一. 謙卦彖傳
註十二. 繫辭上傳 第八章
註十三. 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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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節 항구(恒久)
‣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
항구(恒久)는 만물(萬物)이 그 발용(發用)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서 그 안정체(安貞體)의 영구존존(永久存存)을 도(圖)함이니,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에 관성(慣性)이 있고, 생물(生物)이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수명(壽命)의 영원(永遠)함을 도모(圖謀)하는 것 등(等)이, 모두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항구존속(恒久存續)의 길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하나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대지(大地)의 운행속도(運行速度) 같은 것도 미세(微細)하나마 매년(每年) 변화(變化)하고 있고, 산천초목(山川草木)같은 것이 변화(變化)함은 물론(勿論)이오, 조석(潮汐)의 고저(高低) 사람의 체질(體質)같은 것도 고금(古今)이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우리 국문(國文)같은 것도 창제(創製)하던 당시(當時)에는 이십팔자(二十八字)를 쓰더니 지금에는 이십사자(二十四字)로서 충분(充分)하고 여외(餘外)의 사자(四字)는 사용(使用)치 아니하여도 별(別)로 장해(障害)가 없는 것은, 우리의 순설후아(唇舌喉牙)의 형상(形象)과 동작(動作)이 오백년(五百年) 전(前)보다 변화(變化)한 소치(所致)이다. 이와 같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는 오직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대지(大地)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그 원체(原體)가 역시(亦是) 대지(大地)임에는 변(變)함이 없고,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도수(度數)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주야(晝夜)가 교대(交代)하고 사시(四時)가 순환(循環)하는 그 사실(事實)은 매일매년(每日每年)을 틀림이 없고,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수야모야(誰也某也)는 출생이후(出生以後)에 노령(老齡)에 이르기까지 일변월화(日變月化)하여 황구청춘(黃口靑春)이 쇠안백발(衰顔白髮)로 되어 다시 구시(舊時)의 형용(形容)이 없으되, 수야모야(誰也某也)라는 사람은 일생(一生)을 동일인(同一人)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이 곧 항구(恒久)이며 지금의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여러 가지의 물(物)을 종합(綜合)하여 어떠한 원리원칙(原理原則)을 정(定)하나니 이 원리원칙(原理原則)이 또한 항구(恒久)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있어 안정(安貞)은 항구(恒久)하려 하고 발용(發用)은 변화(變化)하려 함으로, 항구(恒久)는 존존(存存)이니 체(體)가 되고 변화(變化)는 생생(生生)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있으므로 써 용(用)이 의착(依着)할 곳을 얻어서 물(物)의 운동(運動)이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밟아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므로 써 체(體)가 고무력(鼓舞力)을 얻어서 물(物)이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항구(恒久)히 계승(繼承)하나니, 만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일월(日月)같은 것도 궤도(軌道)가 혼란(混亂)하여 한서(寒暑)와 주야(晝夜) 등(等)이 질서(秩序)를 잃고 신(信)이 없을 것이오, 또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없으면 사시(四時)가 질운(迭運)치 아니하고 주야(晝夜)가 교대(交代)치 아니하여 생육(生育)의 공(功)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구(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한다」【註一】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계속(繼續)하여 항구(恒久)한 체(體)가 됨을 말함이오, 또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 일월(日月)이 천(天)을 득(得)하여 능(能)히 구조(久照)하고 사시(四時)가 변화(變化)하여 능(能)히 구성(久成)한다」【註二】하니, 이는 일월(日月)이 천도(天道)를 순(順)하여 항상(恒常) 왕래영허(往來盈虛)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조림(照臨)하고 사시(四時)가 항상(恒常) 왕래변화(往來變化)하여 일한일서(一寒一暑)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생성(生成)하여 만물(萬物)을 일신(日新)하는 용(用)이 됨을 말함이다.
그런데 모든 사물(事物)이 항구(恒久)한즉 염증(厭症)이 생(生)하나니, 일신(一身)의 굴신좌립(屈伸坐立)같은 것도 동일(同一)한 상태(狀態)를 오래 계속(繼續)치 못함이 그 일례(一例)이오, 오직 만물(萬物)의 본능(本能)만은 항구(恒久)하여도 염(厭)치 아니하나니, 사람이 생명(生命)의 장수(長壽)를 염(厭)하는 자(者)가 없고 음식(飮食)이나 부부생활(夫婦生活)을 염(厭)하는 자(者)가 없는 것이 곧 그것이니, 역(易)에「恒雜而不厭 = 항(恒)은 잡(雜)하되 염(厭)치 아니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한 체(體)는 구(久)하되 염(厭)치 아니하나니, 음식(飮食)의 예(例)로써 보면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부식(副食)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러므로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히 먹어도 염(厭)치 아니하나, 부식(副食)은 동일물(同一物)을 장복(長服)하면 스스로 염(厭)하여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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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進化論)과의 관계(關係)
지금에 소위(所謂) 진화론(進化論)이 있어 최초(最初)에 어느 단세포(單細胞)가 진화(進化)하여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等)으로부터 원류(猿類) 인류(人類)에 이르기까지 진화(進化)한 것이라고 하는데, 역리(易理)로써 보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는 항구(恒久)한 체(體)오 생장(生長)․노사(老死)․유전(遺傳)․변이(變異) 등(等)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 용(用)이 비록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화(變化)를 생(生)하더라도, 그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있는 종자(種子)의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는 그 용(用)이 아무리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체(體)는 역시(亦是)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로서 조수(鳥獸)로 진화(進化)할 수 없고, 원종(猿種)의 변화(變化)가 아무리 경이적(驚異的)이라 하더라도 그 체(體)는 종시(終是) 원종(猿種)에 불과(不過)하여 그것이 인류(人類)의 종자(種子)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대지(大地)가 처음으로 물(物)을 생(生)하던 때를 「천조초매(天造草昧)」【註四】라 하는데, 천(天)의 기(氣)의 속에는 처음부터 만물(萬物)의 종자(種子)가 함유(含有)되어 있어, 이것이 대지(大地)에 의착(依着)하여 생장(生長)한 것이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양성(陽性)의 체중(體中)에 장재(藏在)함과 같음이오, 양성(陽性)인 천(天)의 기(氣)는 만물(萬物)을 자시(資始)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종자(種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인 지(地)의 정(精)은 만물(萬物)을 자생(資生)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양성(陽性)으로부터 종자(種子)를 승수(承受)하나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양성(陽性)은 정자(精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은 양정(陽精)을 승수태육(承受胎育)함과 같으니, 역(易)에 천(天)과 양(陽)의 작용(作用)을 건(乾)이라 하고 지(地)와 음(陰)의 작용(作用)을 곤(坤)이라 하여「大哉乾元 萬物資始 至哉坤元 萬物資生 = 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하고, 지(至)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생(生)한다」【註五】하고, 또 「乾知大始 坤作成物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한다」【註六】하니, 원(元)이라 함은 물(物)의 시초(始初)하는 단(端)이라, 이는 모두 양성(陽性)은 물(物)을 처음으로 시(始)하고, 음성(陰性)은 처음으로 작성(作成)하여 생(生)함을 말함이다. 천조초매기(天造草昧期)에는 뇌우(雷雨)의 동(動)이 만영(滿盈)하여 이 대지(大地)는 전(全)혀 뇌우중(雷雨中)에 포재(包在)되어 있으므로 능(能)히 그 승수(承受)한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하니, 이 뇌우만영(雷雨滿盈)한 대지(大地)의 환경(環境)이 곧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한 요건(要件)이며,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체액중(體液中)에서 생육(生育)함과 같으니, 역(易)에「屯者盈也 屯者物之始生也 = 둔(屯)이라 함은 영(盈)함이니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이라」【註七】한바,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한 괘명(卦名)으로서 천지간(天地間)에 만물(萬物)이 만영(滿盈)하는 뜻을 말함이오, 또「屯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 둔(屯)은 뇌우(雷雨)의 동(動)함이 만영(滿盈)함이니 천조초매(天造草昧)라」【註八】하니, 이는 대지(大地)가 물(物)을 시생(始生)하는 초기(初期)에 뇌우(雷雨)가 천지간(天地間)에 만영(滿盈)하고 천운(天運)이 초창(草創)하여 잡란명매(雜亂冥昧)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천지초매기(天地草昧期)에 어느 일물(一物)이나 또는 어느 일종류(一種類)가 먼저 발생(發生)하고 그것이 진화(進化)하여 분기성형(分岐成形)된 것이 아니오, 마치 천지간(天地間)에 수다(數多)한 원소(元素)가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존재(存在)함과 같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처음부터 각기독자(各其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천(天)의 기(氣)의 속에 함재(含在)하면서 천지이기(天地二氣)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그 본형(本形)대로 발육(發育)한 것이니, 원소(元素)가 항구(恒久)한 체(體)임과 같이 종자(種子)도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이다.
더욱이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이(理)로써 보건대, 원소(元素)를 존존(存存)하는 체(體)라고 하면 종자(種子)는 생생(生生)하는 용(用)이라. 원소(元素)가 어느 일물(一物)이 진화(進化)하여 다종다류(多種多類)로 분기(分岐)된 것이 아님으로, 종자(種子)도 또한 원소(元素)와 대대(對待)하여 처음부터 각종각류(各種各類)가 분립(分立)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양존(兩存)하여, 만물(萬物)은 이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하면서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면서 항구(恒久)하여, 영원(永遠)히 기성(旣成)한 형태(形態)와 세력(勢力)을 유지(維持)하려 하는 관성(慣性)이 있는 동시(同時)에 또한 시(時)와 환경(環境)의 변화(變化)에 적의(適宜)히 적응(適應)하여 일신(日新)하려 하는 적응성(適應性)이 있으니, 관성(慣性)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적응성(適應性)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이 곧 물(物)의 항구(恒久)하는 소이(所以)이다.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체용(體用)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고 있으므로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니 예(例)컨대 사람에는 황인종(黃人種)․백인종(白人種)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고 또 황인종중(黃人種中)에도 몽고족(蒙古族)․한족(漢族) 등(等)이 있고 백인종중(白人種中)에도 여러 민족(民族)이 있는데, 사람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여러 종족(種族)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진화(進化)하고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항구(恒久)한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여 인류(人類)의 범위(範圍)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종족(種族)을 초월(超越)하여 공통(共通)한 생활(生活)을 영위(營爲)하면서 함께 영원(永遠)히 생생존존(生生存存)할 수 있는 기초조건(基礎條件)이다.
지금에 민족(民族)이라는 것이 있는데 민족(民族)과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관계(關係)는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와 같은 것으로서, 민족(民族)은 체(體)이오,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용(用)이다. 그러나 역리(易理)로써 보면 족(族)이라 함은 다만 동류(同類)가 취합(聚合)함에 불과(不過)하여 통일(統一)이라는 뜻이 없으므로 민족(民族)도 또한 통체(統體)를 이룬 것이 아니오, 그것이 국가(國家)를 형성(形成)하는 때에 비로소 자력(自力)으로 생존(生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사이에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民族)은 국가(國家)를 가진 연후(然後)에 항구(恒久)한 체(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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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恒久)는 생존(生存)의 기초(基礎)
우리 인생(人生)은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착종(錯綜)한 속에 살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고왕금래(古往今來)로 많은 사람들은 천지(天地)의 항구(恒久)한 체(體)의 면(面)을보고 천지(天地)의 유구(悠久)함을 부러워하며, 인생(人生)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의 면(面)을 보고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한탄(恨歎)한 것이다.「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는 만고(萬古)의 절창(絶唱)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항구(恒久)와 변화(變化)의 뜻을 부영(賦詠)한 것이니 그 글에「羡長江之無窮 = 장강(長江)의 무궁(無窮)함을 이(羡)한다」함은, 고금(古今)이 여일(如一)하게 끝없이 흐르고 있는 장강(長江)의 항구(恒久)한 체(體)를 부러워 한 것이오, 「哀吾生之須臾 = 우리 인생(人生)의 수유(須臾)함을 애(哀)한다」함은, 이 세상(世上)에 역려과객(逆旅過客)과 같이 잠래선거(暫來旋去)하는 우리 인생일세(人生一世)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을 슬퍼한 것이며, 또 「自其變者而觀之則 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 物與我 皆無盡也 = 그 변(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천지(天地)도 능(能)히 일순(一瞬)치 못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진(盡)함이 없다」함은, 그 변화(變化)하는 면(面)으로 보면 우리 인생(人生)뿐만 아니라 천지(天地)와 장강(長江)도 또한 일순간(一瞬間)의 정지(停止)함도 없이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면(面)으로 보면 천지(天地) 장강(長江)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人生)도 또한 항구(恒久)한 것이라 하여, 변화(變化)의 속에 항구(恒久)가 있고 항구(恒久)의 속에 변화(變化)가 있음을 말함이다.
인생(人生)과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있어서 항구(恒久)의 체(體)라 함은 상수(常守)할 규모(規模)와 상처(常處)할 거지(居地)를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말에「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善夫 = 남인(南人)이 말을 두어 가로되 인(人)이 항(恒)이 없으면 가(可)히 써 무의(巫醫)를 작(作)치 못한다하니 선(善)한저」【註九】하니, 이는 남방인(南方人)의 속담(俗談)에 사람이 항구(恒久)한 조수(操守)가 없고 사변사개(乍變乍改)하면 인명(人命)을 치료(治療)하는 무의(巫醫)가 될 수 없다하니 그 말이 선(善)하다. 항(恒)이 없으면 무의(巫醫)도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일국(一國)의 인명(人命)을 담임(擔任)하는 위정자(爲政者)가 항(恒)이 없어서야 될 수 있으랴 함을 말함이오, 또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雖乎有恒矣 = 선인(善人)을 내가 얻어 볼 수 없으니 항(恒)이 있는 자(者)를 얻어 보아도 가(可)하리라, 없으되 있는 척하고 허(虛)하되 영(盈)한 척하고 적으되 많은 척하면, 항(恒)이 있기 어렵다」【註十】하니, 항(恒)은 만사(萬事)의 기반(基盤)이라 기반(基盤)이 공고(鞏固)한 연후(然後)에 인격(人格)도 수양(修養)되고 덕업(德業)도 진취(進就)되는 것이오, 항(恒)이 없는 사람은 경조(輕躁) 부박(浮薄)하여 외면(外面)만을 꾸미고 실천(實踐)이 없음을 말함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도 항(恒)이 있어야 하나니, 역(易)에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 부(父)가 부(父)하고 자(子)가 자(子)하고 형(兄)이 형(兄)하고 제(弟)가 제(弟)하고 부(夫)가 부(夫)하고 부(婦)가 부(婦)하면 가도(家道)가 정(正)하고 가도(家道)를 정(正)하매 천하(天下)가 정(定)한다」【註十一】하여, 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가 모두 자기(自己)의 지킬 바의 상도(常度)와 자기(自己)의 맡은 바의 상직(常職)을 어기지 아니하면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하고, 국민(國民) 개개(個個)의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면 천하(天下)가 안정(安定)한다 함을 말하고, 또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기 위(爲)하여는 「言有物而行有恒 = 언(言)이 물(物)이 있고 행(行)이 항(恒)이 있다」【註十二】하니, 물(物)이라 함은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그 언사(言辭)는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을 차리고 그 행동(行動)은 항구(恒久)한 상도(常度)와 일정(一定)한 법칙(法則)이 있은 연후(然後)에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한다 함이니. 이 글의 대지(大旨)는 천하(天下)의 안정(安定)함은 일가(一家)의 정제(正齊)로부터 시작(始作)하고, 일가(一家)의 정제(正齊)함은 일신(一身)의 언행(言行)으로부터 시작(始作)함을 말함이오, 大學書에「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 신(身)이 수(修)한 후(後)에 가(家)가 제(齊)하고 가(家)가 제(齊)한 후(後)에 국(國)이 치(治)한다」하는 말과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국속어(我國俗語)에 「國家用人 先視其家 = 국가(國家)가 사람을 씀에 먼저 그 가(家)를 시(視)하라」하니, 이는 국가(國家)가 인재(人材)를 선택(選擇)함에는 먼저 그 사람의 가정(家庭)이 정제(正齊)되고 정제(正齊)되지 못함을 보라고 함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처자(妻子)가 항상(恒常) 동정식(同鼎食) 공거처(共居處)하면서 그를 정제(正齊)할 수 없는 인재(人材)라면 그 사람이 일국(一國)의 대사(大事)를 맡아서 능(能)히 그 임무(任務)를 감당(勘當)할 수 없을 것이오, 평소(平素)에 언사(言辭)와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다고 하면 그 가정(家庭)은 스스로 정제(正齊)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 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은 사회조직(社會組織)의 단위(單位)가 되는지라, 가도(家道)에 항(恒)이 있음과 같이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도 또한 항(恒)이 있으니, 역(易)에「振恒在上大無功也 = 진항(振恒)으로 상(上)에 있으니 크게 공(功)이 없다」【註十三】하니, 이는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는 반드시 항구(恒久)한 상도(常道)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업(事業)의 실공(實功)이 이루어지고, 만일 경솔부동(輕率浮動)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상도(常度)가 없으면, 민중(民衆)이 그 적종(適從)할 바를 알지 못하여 의혹(疑惑)이 생(生)하고 의혹(疑惑)이 생(生)하면 정령(政令)을 신(信)치 아니하여 사공(事功)이 이루지 못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久於其道 而天下化成 = 성인(聖人)이 그 도(道)에 구(久)하매 천하(天下)가 화(化)하여 성(成)한다」【註十四】하니,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일정(一定)한 상규(常規)가 있으므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점화(漸化)하여 미속(美俗)을 이룸을 말함이니, 누풍(陋風)을 미풍(美風)으로 개이(改移)하고 악속(惡俗)을 미속(美俗)으로 환역(換易)함에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항구(恒久)한 도(道)로써 점화(漸化) 점성(漸成)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國家)의 정책(政策)같은 것도 비록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하고 시의(時宜)에 합(合)하도록 변통(變通)하여야 할 것이나, 그 소위(所謂) 변통(變通)은 항구(恒久)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한 지도원리(指導原理)라든가 백년대계(百年大計)같은 것을 체(體)로 하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정령(政令)이 사변사개(乍變乍改)하여 마침내 무질서(無秩序) 상태(狀態)에 빠지고 국가(國家)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이 지리멸열(支離滅裂)하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역사(歷史)에 징(徵)하건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인성(人性)은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이조(李朝)에 계승(繼承)된지라 【註十五】. 그러므로 삼국(三國)과 고려(高麗)는 인성(人性)과 정령(政令)이 모두 항구성(恒久性)이 있어 견실(堅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이르러 민간(民間)의 속담(俗談)에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고 이조(李朝)에 이르러 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니, 이는 민중(民衆)들이 정령(政令)이 항구(恒久)치 못하여 삼일(三日)만에 또 변개(變改)됨을 풍자(諷刺)한 말이다. 황방촌(黃尨村)은 세종(世宗)때의 명재상(名宰相)이라, 정부내(政府內)에 법령(法令) 변개론(變改論)이 일어나면 대개(大槪)「나는 변통(變通)의 재(才)가 핍(乏)하니 감(敢)히 변개(變改)하기를 의논(議論)할 수 없고 다만 성헌(成憲)을 준수(遵守)할 뿐이라」하여 응(應)치 아니하니, 이는 방촌(尨村)이 보수(保守)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오 당시(當時) 인심(人心)이 경조(輕躁)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분운(紛紜)히 변개(變改)하기를 좋아하는 폐풍(弊風)을 진압(鎭壓)하기 위(爲)함이라, 이러한 명재상(名宰相)이 있는 까닭에 세종왕(世宗王)의 사업(事業)이 더욱 빛난 것이다,
註一. 恒卦彖傳
註二. 同上
註三. 繫辭下傳 第七章
註四. 屯卦彖傳
註五. 大哉以下는 乾卦彖傳이오, 至哉以下는 坤卦彖傳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序卦傳上篇
註八. 屯卦彖傳
註九. 論語子路篇
註十. 論語述而篇
註十一. 家人卦彖傳
註十二. 家人卦大象傳
註十三. 恒卦上六爻小象傳
註十四. 恒卦彖傳
註十五. 아국(我國)의 인성(人性)에 대(對)하여 옛 사가(史家)들은 평(評)하되 삼국시대(三國時代)는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다고 하며, 이조시대(李朝時代)에 대(對)하여는 세종왕(世宗王)은 말하되 「경조(輕躁)」하다고 하니, 혼후(渾厚)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있고 용(用)이 주편(周遍)하여 안계(眼界)가 넓어서 자기(自己)의 사리(私利)보다도 국가통체(國家統體)의 이해(利害)를 더 크게 생각함이라, 그러므로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일반(一般)으로 겸양(謙讓)의 풍(風)이 대행(大行)하고, 관리(官吏)가 자기(自己)보다 유능(有能)한 자(者)에게 관직(官職)을 사양(辭讓)하는 일이 있고, 국가(國家)에 대난(大難)이 있으면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먼저 창검(槍劍)을 짚고 궁시(弓矢)를 메고 선진(先陣)에 나서고 사졸(士卒)이 그 뒤를 따르니, 이는 평소(平素)에 국가(國家)의 후은(厚恩)을 특수(特殊)히 향수(享受)하고 있는 자(者)가 국난(國難)에 솔선출동(率先出動)하는 것이 당연(當然)한 의무(義務)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니 이가 아국사(我國史) 상(上)에 가장 광휘(光輝)있는 시대(時代)를 현출(現出)한 원동력(原動力)이오, 저 유명(有名)한 신라(新羅)의 화랑(花郞)도 또한 이러한 미질(美質)속에서 화생(化生)한 것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귀족계급(貴族階級)이 안일(安逸)을 탐(貪)하여 부패(腐敗)하기 시작(始作)하고, 고려(高麗)에 이르러서는 혼후(渾厚)의 기상(氣象)이 적어지나, 오히려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유풍여속(遺風餘俗)이 있어 그 기질(氣質)이 직실(直實)하니, 체(體)가 직(直)하면 용(用)이 환(圜)하는 것은 환직호근(圜直互根)의 법칙(法則)이라, 체(體)가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용(用)이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 외구(外寇)가 있을 때에는 역시(亦是)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전진(戰陣)의 선봉(先鋒)에 입(立)하여 능(能)히 십여차(十餘次)의 강구(强寇)를 대적(對敵)하고 선조(先祖)의 유업(遺業)을 수호(守護)한 것이다. 고려말엽(高麗末葉)으로부터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에 향교학생(鄕校學生)들이 병역(兵役)을 기피(忌避)하기 위(爲)하여 공자묘(孔子廟)를 지킨다는 구실(口實)로써 병역면제(兵役免除)를 정부(政府)에 요청(要請)하니, 당시(當時)의 정승(政丞) 염제신(廉悌臣)이 이를 절책(切責)하되 국난(國難)이 있을 때에 귀족자제(貴族子弟)가 먼저 출전(出戰)하는 것은 조종조(祖宗朝) 이래(以來)의 양풍(良風)이며 또 여등(汝等)이 공자묘(孔子廟)를 지키지 아니하면 공자위패(孔子位牌)가 어디로 도망(逃亡)간다드냐 하여 모두 군대(軍隊)에 편입(編入)한 일도 있다. 이조(李朝)에 이르러서는 경조(輕躁)의 풍(風)이 그대로 계승(繼承)되니, 경조(輕躁)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치 못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용(用)이 의착(依着)할 근거(根據)가 박약(薄弱)하여 인성(人性)이 요동부유(搖動浮遊)하고 경박조급(輕薄躁急)함이라, 그러므로 소위(所謂) 문화(文化)는 허례허식(虛禮虛飾)과 무문농필(舞文弄筆)에 흐르고, 소위(所謂) 정치(政治)는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삼일공사(三日公事)의 폐(弊)에 빠지고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생(生)하니 유명(有名)한 「이동고(李東皐)」의 임종유차(臨終遺箚)에 「今世之人 或有不事行檢 不務讀書而高談大言 結爲朋友者 以爲高致 遂成虛僞之風 = 금세(今世)의 인(人)이 혹(或) 행검(行檢)을 일삼지 아니하고 독서(讀書)를 힘쓰지 아니하고 높은 말과 큰말을 하여 결(結)하여 붕우(朋友)를 만드는 것을 써 고치(高致)라 함이 있어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성(成)한다」하여, 붕당(朋黨)의 사(私)가 있음을 경계(警戒)하더니, 불과(不過) 수년(數年)에 망국(亡國)의 장본(張本)이 된 붕당(朋黨)의 파쟁(派爭)을 양성(釀成)하고 다시 삼국(三國) 고려(高麗)의 혼후직실(渾厚直實)의 유풍(遺風)을 찾아 볼 수 없이 된 것이다. 또 이 기질(氣質)의 변천(變遷)을 왕위계승(王位繼承) 문제(問題)로써 보건대, 군주(君主)는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할 능력(能力)이 있음을 제일조건(第一條件)으로 하나니, 그런 능력(能力)이 있은 연후(然後)에 군주(君主)를 중심(中心)으로 하여 국내(國內)의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면서 통체(統體)의 통일작용(統一作用)에 귀일(歸一)하는 것이오, 만일 유아(幼兒)가 즉위(卽位)하면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하는 중심작용(中心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서로 분립(分立)하여 투쟁(鬪爭)만 있고 조화(調和)가 없어서 국정(國政)이 혼란(混亂)하는 것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인성(人性)이 혼후(渾厚)하고 이 원리(原理)를 잘 체득(體得)하여 육칠백년간(六七百年間)에 유군(幼君)을 세운 일이 없고, 왕자(王子)가 연유(年幼)하면 제질중(弟姪中)에서 선택(選擇)하여 세우고, 신라(新羅)같은 나라는 삼성(三姓)이 상전(相傳)하여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또 현명(賢明)한 자(者)를 세우고, 오직 고구려(高句麗)의 태조왕(太祖王)과 신라(新羅)의 진흥왕(眞興王)이 유년(幼年)으로 즉위(卽位)한 일이 있으나, 이는 아시(兒時)로부터 기위(奇偉)하여 장자(長者)의 풍(風)이 있다 하니 한 예외(例外)이오. 백제(百濟)에 한 유군(幼君)이 있으나 그는 적신(賊臣)의 옹립(擁立)한 자(者)이니 또한 문제외(問題外)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군주(君主)들은 일시(一時)의 안일(安逸)을 투취(偸取)하여 국가통체(國家統體)를 위(爲)하는 생각보다 자기(自己)의 혈통(血統)이 만대영화(萬代榮華)하기를 원(願)하는 욕심(慾心)이 앞을서서, 연장차현(年長且賢)한 제질(弟姪) 등(等)에게 왕위(王位)를 주지 아니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풍(風)을 생(生)하여, 소성왕(昭聖王)이 유자(幼子) 애장왕(哀莊王)에게 전위(傳位)하더니 마침내 그 숙부(叔父) 헌덕왕(憲德王)에게 죽고, 이로부터 왕위쟁탈(王位爭奪)의 추악(醜惡)한 전쟁(戰爭)이 전개(展開)된 것이다. 고려초기(高麗初期)에는 부자계승(父子繼承)뿐만 아니라 형전제수(兄傳弟受)한 일도 많더니, 중엽이후(中葉以後)에 이 풍(風)이 변(變)하여 유왕(幼王)의 즉위(卽位)하는 일이 생긴바, 그 결과(結果)는 역시(亦是) 길상(吉祥)치 못하여 헌종(獻宗)은 그 숙부(叔父) 숙종(肅宗)에게 축출(逐出)되고, 충정왕(忠定王)은 그 숙부(叔父) 공민왕(恭愍王)에게 죽으니, 연장(年長)한 제(弟)를 멀리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것이 반드시 화기(禍機)를 포장(包藏)하고 있음은 사실(史實)이 소연(昭然)한지라, 이조(李朝)에 이르러 다시 이 전철(前轍)을 밟아서 단종(端宗)이 또한 그 숙부(叔父) 세조(世祖)에게 죽으니, 실(實)로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천진란만(天眞爛漫)한 유왕(幼王)들이 시대풍(時代風)의 화(禍)를 입어 횡액(橫厄)에 걸림을 통한(痛恨)케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社會)는 이조시대(李朝時代)의 경조(輕躁)의 풍(風)을 그대로 상속(相續)하고 있는지라, 이 풍(風)을 변통(變通)치 아니하고는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등(等) 천시만설(千施萬設)이 모두 대과(大過) 동요(棟撓)의 상(象)이 되어 부박(浮薄)․퇴폐(頹廢)하여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일공사(三日公事)를 재판(再版)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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