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극제가 곧 투쟁이다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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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의 극제(克制)가 곧 투쟁(鬪爭)이다

 

생물계(生物界)의 투쟁(鬪爭)에는 생존경쟁(生存競爭)으로 인(因)한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자연도태(自然淘汰) 등(等) 현상(現象)이 있다. 그러나 동물계(動物界)와 인류(人類)는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동물(動物)은 주(主)로 개체대개체(個體對個體)․군대군(群對群)의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의 투쟁(鬪爭)이므로,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이 우강(優强)한 자(者)가 승(勝)하고 열약(劣弱)한 자(者)가 패(敗)하여, 자연(自然)히 도태(淘汰)되는 것이나, 인류(人類)는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여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착잡(錯雜)한 관련(關聯)이 있으므로, 일면(一面)으로 개인대개인(個人對個人)의 체력(體力)․지력(智力)의 투쟁(鬪爭)이 있으면서, 또 일면(一面)으로 사회적(社會的)으로 이루어진 권력(權力)․세력(勢力) 등(等)을 빙자(憑藉)하는 투쟁(鬪爭)이 있는 까닭에, 반드시 인격(人格)이 우(優)한 자(者)가 승(勝)하고, 열(劣)한 자(者)가 패(敗)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 어떤 지역(地域)에서는 악(惡)한 자(者)가 승(勝)하고 선(善)한 자(者)가 패(敗)하며, 탐욕(貪慾)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청렴(淸廉)한 자(者)가 도태(淘汰)되며, 특(特)히 황금만능(黃金萬能)의 세상(世上)에는 사람이 황금(黃金)에 예속(隸屬)되어 황금(黃金)이 사람의 가치(價値)를 결정(決定)함으로 황금(黃金)만 있으면 비록 우매(愚昧)하더라도 승리(勝利)의 지위(地位)를 차지할 수 있고, 빈가(貧家)의 자제(子弟)는 비록 재능(才能)이 있으되, 취학(就學)․출세(出世) 등(等)에 가장 열패(劣敗)한 지위(地位)에 처(處)할 수 밖에 없으니, 만일 인생사회(人生社會)를 아무 재제(裁制)가 없는 자유경쟁(自由競爭)에 방임(放任)한다고 하면, 이는 동물계(動物界)보다도 더 열악(劣惡)한 현상(現象)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卽) 동물(動物)의 자유경쟁(自由競爭)은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이 우승(優勝)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열패(劣敗)한 자(者)가 도태(淘汰)되는 것이므로, 그 종족(種族)은 동물(動物)로서의 우량(優良)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계승(繼承)되는 것이지만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자유경쟁(自由競爭)은 흔히 악(惡)한 자(者)와 탐욕(貪慾)한 자(者)와 우매(愚昧)한 자(者)의 종족(種族)만이 번성(繁盛)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동물계(動物界)와 상반(相反)되는 열승우패(劣勝優敗), 세력도태(勢力淘汰)로서 마침내 종족(種族)의 열악(劣惡)을 초래(招來)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동물(理性的動物)이라, 체력(體力)의 강건(强健)과 함께 이성(理性)이 밝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체력(體力)만이 강건(强健)하고 이성(理性)이 밝지 못하면, 그 체력(體力)은 난폭(亂暴)한 만용(蠻勇)으로 악용(惡用)되어 도리어 사회(社會)를 해독(害毒)하는 일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있어서, 투쟁(鬪爭)이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폐해(弊害)를 제거(除去)하고 악(惡)을 극제(克制)하여, 이성(理性)을 밝히고 동물(動物)로 타락(墮落)되는 것을 방지(防止)하는 작용(作用)이다. 그런데 생존본능(生存本能)에 의(依)한 행위(行爲)가 통체(統體)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때는 선(善)이되고,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에 기울어지는 때는 악(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소견(所見)이 편(偏)하고 국(局)하여 소체(小體)인 자아(自我)만을 보고 대체(大體)인 사회통체(社會統體)를 보지 못하는 자(者)가 흔히 악(惡)을 범(犯)하나니, 역(易)에는 이러한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하며, 사회(社會)의 투쟁(鬪爭)은 이러한 소인(小人)을 대상(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역(易)에 「小人 不恥不仁 不畏不義 不見利不勸 不威不懲 = 소인(小人)은 불인(不仁)함을 치(恥)치 아니하고, 불의(不義)함을 외(畏)치 아니하고, 이(利)를 견(見)치 아니하면 힘쓰지 아니하고 위(威)치 아니하면 징(懲)치 아니한다」【註五】하여, 소인(小人)들은 악(惡)한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욕(利慾)만을 따르고 형벌(刑罰)의 위엄(威嚴)만을 두려워한다 함을 말하고, 또「善不積 不足以成名 惡不積 不足以滅身 小人 以小善 爲無益而不爲也 以小惡 爲無傷而不去也 故 惡積而不可掩 罪大而不可解 = 선(善)이 적(積)치 아니하면 족(足)히 써 명(名)을 성(成)치 못하고 악(惡)이 적(積)치 아니하면 족(足)히 써 신(身)을 멸(滅)치 못하나니, 소인(小人)은 소선(小善)으로써 익(益)함이 없다 하여 하지 아니하고, 소악(小惡)으로써 상(傷)함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아니하는지라, 그런 고(故)로 악(惡)이 적(積)하여 가(可)히 해(解)치 못하고 죄(罪)가 대(大)하여 가(可)히 엄(掩)치 못한다」【註六】하여, 선(善)을 행(行)하되 많이 쌓인 후(後)에야 이름이 이루고 악(惡)을 범(犯)하되 곧 회개(悔改)하여 쌓이지 아니하면 멸신(滅身)하기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인데, 소인(小人)은 소선(小善)은 익(益)될 것이 없다 하여 행(行)치 아니하고 소악(小惡)은 해(害)될 것이 없다 하여 행(行)하고 또 행(行)하여, 드디어 큰 악(惡)이 된다 함을 말하니, 이가 소인(小人)이 악(惡)을 적루(積累)하는 경로(徑路)이다. 그러나 세간(世間)에는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한 소인(小人)이 적지 아니하되 그러한 소인(小人)이 모두 악(惡)을 범(犯)하는 것이 아니오, 소인(小人)의 가운데는 「사(士)」의 격(格)을 가지는 자(者)도 있으니, 공자(孔子)의 말에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爲次矣 = 언(言)이 반드시 신(信)하고 행(行)이 반드시 과(果)하면 갱갱(硜硜)한 소인(小人)이로되 또한 가(可)히 차(次)가 될지라【註七】하니, 이는 사(士)에는 일(一)․이(二)․삼(三) 등(等)이 있는데 절조(節操)를 고수(固守)하고 식량(識量)이 천협(淺狹)하되 한번 말한 일은 반드시 어기지 아니하고, 한번 실행(實行)하는 일은 반드시 결과(結果)를 맺는 사람은 비록 소인(小人)이기는 하나 가(可)히 삼등사(三等士)는 될 수 있다 함이다.

 

사람은 그 출생(出生)하는 날에 악인(惡人)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출생(出生)과 함께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완수(完遂)할 수 있는 소질(素質)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비록 우매무지(愚昧無知)한 충류(虫類)들도 모두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에 필요(必要)한 소질(素質)을 천품(天稟)으로 받고 있어, 지주(蜘蛛)의 결망(結網)․봉의(蜂蟻)의 구소(構巢)․잠아(蠶兒)의 작견(作繭)같은 기술(技術)은 정교(精巧)를 극(極)하고 있으되 그것을 학습(學習)하여 얻은 것이 아니며 더욱이 봉의(蜂蟻)의 단체생활(團體生活) 같은 것은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사회(社會)를 이루고 있으니, 이는 모두 출생(出生)과 함께 가지고 있는 본능(本能)이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통체(統體)와 조화(調和)하는 선(善)한 행위(行爲)가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선천적(先天的)으로 선(善)으로 향(向)할 수도 있고, 악(惡)으로 흐를 수도 있으면서, 후천적(後天的)으로 가정(家庭)․교우(交友)․사회(社會) 등(等) 환경(環境) 여하(如何)와 교육(敎育)의 유무(有無)등(等)으로 인(因)하여, 선(善)이 배양(培養)된 자(者)는 선(善)한 행위(行爲)가 많고, 악(惡)이 도발(挑發)된 자(者)는 악(惡)한 행위(行爲)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로부터 악(惡)을 제거(除去)하는 길은 정치(政治)로써 환경(環境)을 정화(淨化)하고, 교육(敎育)으로써 정신(精神)을 수련(修鍊)함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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