渤海의 建國 (서당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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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의 建國

高句麗가 亡하고 釰弁令等의 光復運動이 失敗에 돌아감에 그 百姓들이 或은 唐나라에 强制로 옮겨지고 或은 新羅로 亡入하기도 하였으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北方으로 流入하였다. 이때 滿洲 北部에는 靺鞨族이 살고 七部로 나뉘어 있었으나 그 中에 가장 드러난 것은 松花江 기슭에 粟末靺鞨과 黑龍江가에 사는 黑水靺鞨의 두 部族이 있고 高句麗 當時에는 이들 靺鞨은 高句麗의 屬國이 되어 있었으나 高句麗의 平壤城이 陷落된 뒤에 北方의 모든 城이 唐나라에 占領된 것이 아니어서 靺鞨사람들이 그러한 城에 雄據하고 高句麗 遺民들이 이에 合勢하였다. 그러한지 三十年 동안에 高句麗 遺將 大祚榮은 軍士를 거느리고 여러 番 唐兵과 싸워서 크게 이기니 唐兵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고 高句麗가 亡한지 三十一年만에 새 나라를 세우고 國號를 震國이라 하니, 그 後에 渤海로 고치니 이가 곧 渤海 太祖이다. (檀紀 三千三十二年)

渤海는 西로 唐나라와 西域의 文化를 받아들이고 東으로 日本과 貿易하여 海賊을 衝動시켜서 唐나라의 山東半島를 친일도 있었다. 처음에 中京 顯德府에 都邑하더니 後世에 上京 龍泉府로 옮기니 이는 吉林城 寧安縣에 있는 東京城이라 하며 지금도 그때의 그 城자리가 남아 있어서 그 周圍가 거의 四十里나 된다.

이때의 疆土는 北은 黑龍江에 이르고 西로 遼海에 미치고 南은 大洞江과 元山 等地로써 新羅와 이웃하고 東은 大海에 닿으니 中國사람들이 海東盛國이라고 稱하였으며 渤海의 建國과 新羅의 統一期가 거의 年代를 같이 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은 新羅를 南國 또는 南朝라 하고 渤海를 北國 또는 北朝라 하여 이 時代를 우리나라의 南北朝時代라고 한다.

渤海는 滿洲의 넓은 벌판을 차지하고 高句麗의 傳統을 물려받으며 盛唐의 文化를 받아들여서 産業과 文化의 發達이 볼만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渤海에는 扶餘族과 靺鞨族이 합쳐서 나라를 세웠으되 어찌한 때문인지 新羅와는 交涉이 거의 없었고 또 靺鞨族은 그 뒤에 오래 남아서 女眞族이 되었으되 扶餘族은 全然 滿洲에 남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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