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節 변역(變易)
‣소장운동(消長運動)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그 운행과정(運行過程)에 반드시 일소일장(一消一長)이 있으니 이 소장운동(消長運動)이 곧 변역(變易)의 형태(形態)이라, 우리가 천상(天象)을 앙관(仰觀)하고 지형(地形)을 부찰(俯察)하고 다시 세상(世上)의 인사(人事)를 관찰(觀察)하매, 하나도 고정(固定)되어 있는 것이 없고 모두 소장운동(消長運動)을 행(行)하여 흥(興)한 자(者)가 망(亡)치 아니함이 없고 성(盛)한 자(者)가 쇠(衰)치 아니함이 없다. 역(易)에「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일(日)이 중(中)한즉 측(昃)하고 월(月)이 영(盈)한즉 식(食)하여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시(時)로 더불어 소(消)하고 식(食)하곤 하물며 인(人)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一】하여, 천지(天地)에도 중측영허(中昃盈虛)하는 소장운동(消長運動)이 있는데 어찌 인사(人事)와 귀신(鬼神)만이 흥망(興亡)과 성쇠(盛衰)가 없으랴 함을 말하고, 또 「無平不陂 無往不復 = 평(平)한 것이 피(陂)치 아니함이 없고 왕(往)한 것이 복(復)치 아니함이 없다」【註二】하여, 평(平)한 자(者)는 반드시 허물어지고 왕(往)한 자(者)는 반드시 내복(來復)한다.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천지만물(天地萬物) 내지(乃至) 인생사회(人生社會)는 부단(不斷)히 변역운동(變易運動)을 행(行)하여 상주(常住)함이 없는 것이다.
물(物)의 장(長)함은 용(用)이되어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고 그의 소(消)함은 체(體)가 되어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지라, 물(物)의 생장(生長)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에 이르면 더 성장(成長)할수 없는 계선(界線)에 도달(到達)하나니, 만물(萬物)의 생장(生長)에는 각기(各其) 종류(種類)에 따라서 대체(大體)로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초목조수(草木鳥獸) 등(等)이 비록 그 생육방법(生育方法)에 따라서 다소(多少)의 변화(變化)는 있을 수 있으나 역시(亦是) 무제한(無制限)한 생장(生長)은 있을 수 없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리하여 이 제한(制限)된 한도(限度)에 이르면 스스로 변(變)하여 새 단계(段階)로 발전(發展)하기 위(爲)하여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체(體)로 변(變)하여 성숙작용(成熟作用)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장(生長)이 어느 한도(限度)에 이르면 반드시 그 성정(性情)이 변(變)하는 것이며, 성숙(成熟)한 체(體)는 자체(自體)와 대대(對待)되는 새로운 용(用)을 생(生)하면서 소멸(消滅)의 길로 향(向)하나니 이가 물(物)의 소장운동(消長運動)이다.
사람의 일생(一生)에도 소장(消長)이 있으니, 생장기(生長期)의 유소시대(幼少時代)나 청년시대(靑年時代)는 부모(父母)의 비호하(庇護下)에 양육(養育)되어 용(用)의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며 전진(前進)이 있고 후퇴(後退)가 없으므로 청년(靑年)들은 항상(恒常) 이상(理想)을 추구(追求)하고 그 생각하고 말하는바가 대개(大槪) 미래사(未來事)이다. 고금(古今)의 역사(歷史)에 징(徵)하건대 사회(社會)의 혁명운동(革命運動)은 대개(大槪) 청년층(靑年層)이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으니 이는 청년기(靑年期)는 육체(肉體)뿐만 아니라 정신적(精神的)으로도 성장과정(成長過程)에 있으므로 현실사회(現實社會)의 복잡(複雜)하고 분화(分化)된 형태(形態)를 고념(顧念)치 아니하고 험난(險難)을 범(犯)하고 일로돌진(一路突進)하는 생기(生氣)가 있는 까닭이다. 청년기(靑年期)가 장차(將且) 끝나고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성숙(成熟)하려 하는 때는 곧 청년(靑年)의 궁(窮)이라, 궁(窮)이 변통(變通)되어 성인기(成人期)에 이르면 자녀(子女)를 생산(生産)하고 그의 양육(養育)을 체험(體驗)하여 비로소 자기(自己)를 양육(養育)하여 주신 부모(父母)의 노고(勞苦)를 알게 되고, 실사회(實社會)의 격심(激甚)한 경쟁장(競爭場)에 나가서 냉엄(冷嚴)한 비판(批判)을 받고 비로소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거리(距離)가 상원(相遠)함을 알게 되나니 이는 용(用)이 성숙(成熟)하여 체(體)로 변(變)하기 시작(始作)하고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를 조화(調和)하는 단계(段階)이다. 이 단계(段階)로부터 노쇠기(老衰期)로 들어가나니, 노쇠기(老衰期)는 체질(體質)이 쇠약(衰弱)함과 함께 정신(精神)도 점차(漸次)로 후퇴(後退)하여 생발약동(生發躍動)하는 기(氣)가 적고 주(主)로 과거(過去)의 전통(傳統)과 경험(經驗)을 중(重)히 여기므로 그 생각하고 말하는바가 대개(大槪) 과거사(過去事)이다. 혹시(或是) 청년(靑年)으로서 전진(前進)하는 기개(氣槩)를 가지지 못한 자(者)는 청년(靑年)의 노인(老人)이오 또 노인(老人)으로서 자자전진(孜孜前進)하는 자(者)는 노인(老人)의 청춘(靑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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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保守)와 혁신(革新)
사회(社會)의 변화(變化)로 써 보면 제도(制度)의 생장성숙(生長成熟)은 사회(社會)의 변역(變易)이라. 그 제도(制度)가 사회(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에 순응(順應)하고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하여 민심(民心)이 활기(活氣)를 띠고 사회(社會)의 흥륭(興隆)과 복리(福利)를 재래(齎來)한 시기(時期)는 사회(社會)의 성장단계(成長段階)이다. 그러나 사회(社會)는 한 생물(生物)이라, 생장작용(生長作用)이 부단(不斷)히 진행(進行)하면 역시(亦是) 폐구(弊舊)하는 부면(部面)이 생(生)하여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치 못한다. 이러한 때에는 마치 잠선(蠶蟬) 등(等)이 성장(成長)하기 위(爲)하여 탈피(脫皮)하고 대인(大人)은 소아시대(少兒時代)의 의복(衣服)을 입을 수 없음과 같이 사회(社會)의 제도(制度)도 그에 응(應)하여 변통(變通)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는 이제까지 사회(社會)의 흥륭(興隆)을 재래(齎來)하던 현제도(現制度)는 도리어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장애물(障碍物)이 되는 까닭이오, 이를 제도(制度)의 궁(窮)이라 한다. 그러나 정치(政治)의 기성세력(旣成勢力)은 이미 안정(安定)하고 있으므로 방(方)하고 정(靜)하여 대개(大槪) 현제도(現制度)에 구안(苟安)하고 더 향상(向上)할 이상(理想)을 가지지 못하나니, 이를 보수(保守)라 하고, 보수작용(保守作用)의 발생(發生)이 곧 사회(社會)가 성숙(成熟)하여 용(用)이 체(體)로 변(變)하는 단계(段階)이며 이 단계(段階)에는 반드시 경화(硬化)․정체(停滯)․퇴폐(頹廢) 등(等) 경향(傾向)이 나타나는 것이다.
방(方)하고 정(靜)한 모체(母體)는 반드시 원(圓)하고 동(動)하는 용(用)을 생(生)하는지라, 보수사회(保守社會)는 스스로 자체(自體)를 변역(變易)하려하는 혁신(革新)의 용(用)을 배태(胚胎)하면서 또한 자체(自體)를 항구(恒久)히 유지(維持)하려 하는 본능(本能)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신생(新生)한 용(用)을 제어(制御)하려 하나니, 자체(自體)가 분만(分娩)한 자녀(子女)를 자체(自體)가 극제(克制)하는 것은 보수사회(保守社會)의 일대모순(一大矛盾)이라, 보수사회(保守社會)는 이 모순(矛盾)을 자각(自覺)치 못하고 혁신작용(革新作用)을 극압(克壓)하면서 스스로 일보(一步) 일보(一步) 소멸(消滅)의 길로 향(向)하는 것이니, 이것이 사회(社會)의 소장운동(消長運動)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나 사회(社會)는 지잡지동(至雜至動)한지라 그 변역과정(變易過程)에는 천형만태(千形萬態)의 현상(現象)이 나타나서 이 원리(原理)대로 진행(進行)되는 일은 극(極)히 적고, 다만 어느 사회(社會)든지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이 대대(對待)하고 있는 것만은 사회(社會)의 생존법칙상(生存法則上) 피(避)할 수 없는 일이다. 즉(卽) 소장운동(消長運動)에는 독음(獨陰)과 독양(獨陽)이 없는지라, 생장과정(生長過程)에 있는 신사회(新社會)에도 반드시 구사회(舊社會)의 여세(餘勢)가 어느 기간(期間)을 잔존(殘存)하여 신사회(新社會)의 모체(母體)로서 서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고 구사회(舊社會)의 여세(餘勢)가 완전(完全)히 소멸(消滅)하는 시기(時期)에 이르면 신사회(新社會)는 독양(獨陽)이 되는지라, 이에 모체(母體)로부터 이탈(離脫)하는 동시(同時)에 자체(自體)가 차대(次代)의 부모(父母)가 될 모체(母體)로 화(化)하여 성숙단계(成熟段階)로 들어가서 보수사회(保守社會)로 전화(轉化)하며, 그 속에 다시 혁신(革新)의 용(用)을 생(生)하여 또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나니, 이 까닭에 사회(社會)에는 영원(永遠)히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이 대대(對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社會)가 보수(保守)하는 체(體)로 화(化)한다던가 또는 혁신(革新)의 용(用)이 생(生)한다던가 하는 것은, 그 화(化)하는 날이나 생(生)하는 날에 비로소 화생(化生)한 것이 아니오, 대대조직(對待組織)의 원리(原理)에 의(依)하여 사회내부(社會內部)에는 처음부터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이요소(二要素)가 포함(包含)되고 있다가 시(時)의 추이(推移)와 환경(環境)의 변천(變遷)에 따라서 그 화생(化生)하는 날에 비로소 발현(發顯)되는 것이니, 고대사회(古代社會)의 철인정치(哲人政治)는 이미 후일(後日)에 귀족사회(貴族社會)로 변질(變質)할 요소(要素)를 가지고 있고, 봉건사회(封建社會)의 경제조직(經濟組織)은 이미 후일(後日)에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를 산출(産出)할 요소(要素)를 가지고 있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社會)를 물론(勿論)하고 용(用)으로서 신생(新生)한 사회(社會)는 후일(後日)에 반드시 그와 대대(對待)되는 체(體)로 변질(變質)하는 것이오, 체(體)로 화(化)한 모체사회(母體社會)는 또한 반드시 그와 대대(對待)되는 용(用)을 포장(包藏)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元來) 보수(保守)라 함은 현실(現實)을 유지(維持)하려 함이오, 혁신(革新)이라 함은 이상(理想)을 실현(實現)하려 함이니, 사회(社會)의 현실(現實)을 무시(無視)하는 이상(理想)이 있을 수 없고, 또 이상(理想)이 없는 사회(社會)는 스스로 정체(停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은 반드시 대대관계(對待關係)를 가지고 사회내(社會內)에 호근(互根)하고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소위(所謂) 보수중(保守中)에는 흔히 현제도(現制度)에 의(依)하여 권세(權勢)와 이익(利益)을 향유(享有)하고 있는 부층(部層)이 그 기성(旣成)한 권세(權勢)와 기득(旣得)한 이익(利益)을 옹호(擁護)하기 위(爲)하여, 현제도중(現制度中)의 불합리(不合理)한 부분(部分)까지를 고수(固守)하는 일이 있으니, 이러한 행위(行爲)는 보수(保守)의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욕(私慾)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오, 또 소위(所謂) 혁신중(革新中)에는 흔히 현제도(現制度)에 대(對)한 불만(不滿)이 감정면(感情面)으로 달려가는 부층(部層)이 그 쾌감(快感)을 얻기 위(爲)하여 현제도중(現制度中)의 장점(長點)까지를 파괴(破壞)하는 일이 있으니, 이러한 행위(行爲)는 혁신(革新)의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감(私感)의 길로 나가는 것이다. 보수(保守)라거나 혁신(革新)이라 함은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생긴 사상(思想)이라, 이 범위(範圍)를 넘으면 이미 보수(保守)도 아니오 혁신(革新)도 아니니, 전기(前記)한 사욕(私慾)과 사감(私感)은 이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악행위(惡行僞)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실례(實例)를 우리 사회(社會)에서 찾아 보건대, 농촌(農村)은 소박(素朴)하고 도시(都市)는 예민(銳敏)한지라, 고래(古來)의 전통(傳統)과 미풍(美風)은 대개(大槪) 농촌(農村)에서 볼 수 있으니, 이를 보수(保守)라 할 수 있고, 신문화(新文化)의 창조(創造)와 외래사조(外來思潮)의 수입(輸入)은 대개(大槪) 도시(都市)에서 볼 수 있으니 이를 혁신(革新)이라 할 수 있는데, 농촌(農村)의 소박(素朴)이 과도(過度)하여 흔히 신문화(新文化)를 거부(拒否)하는 까닭에 완고(頑固)하다는 비난(非難)을 듣게 되고, 도시(都市)의 예민(銳敏)이 또한 과도(過度)하여 흔히 전통(傳統)을 무시(無視)하는 까닭에 부박(浮薄)하다는 비난(非難)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박(素朴)과 예민(銳敏)은 상반(相反)하면서 또한 상구(相求)하여 대체(大體)로 자연(自然)스러운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변역과정(變易過程)에는 항상(恒常)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이대조류(二大潮流)가 대대(對待)하고 있음은 필연(必然)한 추세(趨勢)이오, 이로 인(因)하여 사회(社會)에는 운동(運動)이 지식(止息)치 아니하고 인류력사(人類歷史)는 유구(悠久)히 흘러가는 것이다. 그 역사(歷史)의 흘러가는 과정(過程)에 신고(新故)가 대사(代謝)하는 제(際)에는, 흔히 소(小)하기는 마찰(摩擦)․충돌(衝突)과, 대(大)하기는 유혈(流血)의 화(禍)가 일어나서, 무한(無限)한 고통(苦痛)을 겪는 일이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태아(胎兒)가 출산(出産)될 때에 모체(母體)의 수렴작용(收斂作用)과 태아(胎兒)의 출현작용(出顯作用)의 상극(相克)으로 인(因)하여 고통(苦痛)스러운 진통(陣痛)이 일어나되, 이는 병적(病的)이 아니오 곧 인체(人體)의 생리적(生理的) 작용(作用)임과 같이, 신사회(新社會)의 발생(發生)에 제(際)한 고통(苦痛)도 또한 사회(社會)의 변역과정(變易過程)의 한 생리적(生理的) 현상(現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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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兩極)과 중간(中間)
물(物)의 변역(變易)은 대대(對待)되는 양극(兩極)으로 왕래(往來)하고 있으므로, 그 양극(兩極)의 사이에는 중간적(中間的) 중화상태(中和狀態)가 생(生)하여 그 변화형태(變化形態)는 더욱 착잡(錯雜)하여 지는 것이다. 동(冬)의 한(寒)과 하(夏)의 서(暑)를 대대량극(對待兩極)이라 하면, 춘(春)의 난(暖)과 추(秋)의 양(凉)은 그의 중간적(中間的) 중화(中和)이다. 한서(寒暑)가 대대(對待)하여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과정(過程)에 난(暖)과 양(凉)은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생(生)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한서난량(寒暑暖凉)이 혼륜(渾淪)하여 일세(一歲)를 이루는 것이다. 사회(社會)도 그 변역과정(變易過程)에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양극(兩極)이 생(生)하고 양극(兩極)의 사이에 중간적(中間的) 상태(狀態)가 생(生)하는데, 중간(中間)이라 함은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고 양체(兩體)의 경계(境界)에 과재(跨在)하고 양작용(兩作用)의 교차선(交叉線)에 왕래(往來)하여, 가(可)히 써 상(上)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하(下)할 수도 있고, 또 가(可)히 써 좌(左)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우(右)할 수도 있는 처지(處地)에 입(立)한지라, 항상(恒常) 그 착족지(着足地)가 요동(搖動)하여 사침사부(乍沈乍浮)하고 좌견우인(左牽右引)하며, 혹(或)은 구동투합(苟同偸合)하는 모호(糢糊)한 태도(態度)로써 구차(苟且)히 그 중앙점(中央點)을 절충(折衷)하는 일도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혹(或)」「여(如)」「진퇴(進退)」「차차(次且)」등(等)의 말로써 표현(表現)하고 있다. 양극(兩極)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하여 궁(窮)함이오, 중간(中間)은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하여 생장수장(生長收藏)의 공(功)을 완수(完遂)치 못함이라,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한 때에는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한 때에는 또한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극(極)으로 향(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극(兩極)과 중간(中間)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극(極)에서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다시 중간(中間)에서 극(極)으로 향(向)하여 진퇴왕래(進退往來)하나니, 마치 한(寒)이 극(極)하면 온(溫)으로 전화(轉化)하고 온(溫)은 서(暑)로 발전(發展)하며, 서(暑)가 극(極)하면 양(凉)으로 변화(變化)하고 양(凉)은 다시 한(寒)으로 발전(發展)함과 같음이다.
사회(社會)는 부단(不斷)히 신(新)과고(故)․보수(保守)와혁신(革新)․현실(現實)과이상(理想)․급진(急進)과점진(漸進)․타협(妥協)과비타협(非妥協) 등(等)의 양극(兩極)과 또 그 중간(中間)을 왕래(往來)하고 있는데, 그 왕래(往來)하는 과정(過程)에 전단계(前段階)로부터 다음 단계(段階)로 이행(移行)할 때에는 그를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여 사시(四時)의 대사(代謝)와 같이 변통(變通)하여야 하나니, 변통(變通)이라 함은 새로운 단계(段階)를 건설(建設)하는, 일종(一種)의 창조성(創造性)을 가지는 일이라, 그를 행(行)하기는 용이(容易)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도 생존법칙(生存法則)에 합(合)하는 변통(變通)을 행(行)함은 모두 창조(創造)라 할 수 있으나, 사회(社會)는 거대(巨大)한 기구(機構)이라, 그를 변통(變通)함은 거역(巨役)의 창조사업(創造事業)이오, 이 사업(事業)은 창조(創造)의 대재(大才)를 가진 자(者)만이 능(能)히 할 수 있는 것이니 아국(我國)이 오랫동안 국문(國文)을 가지지 못하다가 세종왕(世宗王)에 이르러 비로소 창제(創製)함과 같은 것이 그 현저(顯著)한 일례(一例)이다. 역(易)에 「皇帝堯舜氏作 通其變 使民不倦 神而化之 使民宜之 皇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盖取諸乾坤 = 황제요순씨(皇帝堯舜氏)가 작(作)하여 그 변(變)을 통(通)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권(倦)치 아니하게 하고 신(神)하여 화(化)하게 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한지라, 황제요순(皇帝堯舜)이 의상(衣裳)을 수(垂)하되 천하(天下)가 치(治)하니 대개(大槪) 건곤(乾坤)에서 취(取)함이라」【註三】하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의 시대(時代)는 상고(上古)보다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이 변화(變化)함으로 상고(上古)의 정치(政治)를 습용(襲用)하면 제도(制度)가 궁(窮)하여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하고 민생(民生)이 소의(所宜)를 얻지 못한다. 대개(大槪) 정치(政治)는 시의(時宜)에 맞지 아니하는 구습(舊習)을 고수(固守)하면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함으로, 민중(民衆)이 염기(厭忌)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폐거(廢去)치 아니하고, 민중(民衆)이 편안(便安)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시행(施行)치 아니하고, 오직 제도(制度)의 궁(窮)함을 변통(變通)하면 족(足)한지라, 그러므로 황제요순(皇帝堯舜)이 그를 변통(變通)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한 것이다. 신(神)이라 함은 민중(民衆)이 그 제도(制度)를 유행(由行)함이 가장 자연(自然)스러워서 마치 사람이 공기(空氣)를 호흡(呼吸)하고 있으되 스스로 그 호흡(呼吸)함을 알지 못함과 같음이오, 화(化)라 함은 아무 강제(强制)도 없고 권면(勸勉)도 없이 민중(民衆)이 스스로 낙종(樂從)하고 실천(實踐)함이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은 신화정치(神化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천하(天下)가 스스로 치평(治平)하니, 이는 정치원리(政治原理)를 건곤(乾坤)의 이간원리(易簡原理)에서 취(取)한 까닭이다. 역(易)에는 또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 천지(天地)가 혁(革)하여 사시(四時)가 성(成)하고 탕무(湯武)가 혁명(革命)하여 천(天)에 순(順)하고 인(人)에 응(應)하다」【註四】하니, 천지(天地)가 변혁(變革)함으로 사시(四時)가 생(生)하여 만물(萬物)을 생장수장(生長收藏)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하고, 은(殷)의 탕왕(湯王)과 주(周)의 무왕(武王)이 혁명(革命)을 일으켜서 천도(天道)에 순(順)하고 인심(人心)에 응(應)하여 생존법칙(生存法則)에 맞는 정치(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한 것이다. 황제요순(皇帝堯舜)과 은탕(殷湯) 주무(周武)는 공자(孔子)의 가장 숭앙(崇仰)하는 성인(聖人)이라,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항상(恒常) 시운(時運)에 응(應)하여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고, 또 천도(天道)와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여 항상(恒常) 시의(時宜)에 합(合)하는 정치(政治)를 행(行)함을 찬양(讚揚)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술(術)이 적의(適宜)치 못하면, 혹(或)은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하고 혹(或)은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하여 폐해(弊害)를 후일(後日)에 남기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정치사(政治史)를 보건대, 고려(高麗)는 계단(契丹) 몽고(蒙古) 등(等) 강적(强敵)과 수십차(數十次) 항전(抗戰)하던 강국(强國)이라, 중엽(中葉) 이후(以後)에 무신발호(武臣跋扈)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문(文)을 숭상(崇尙)하고 무(武)를 천대(賤待)하다가 도리어 문약(文弱)의 폐(弊)에 빠져서 외모(外侮)를 막을 힘을 전연상실(全然喪失)하니, 이는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함이오, 또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여러 종교(宗敎)가 병존(倂存)하고 대체(大體)로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어 사회(社會)가 활기(活氣)를 띠더니 그 말엽(末葉)에 불교부패(佛敎腐敗)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정주학(程朱學)으로써 국민사상(國民思想)을 통일(統一)하고 그 이외(以外)의 학설(學說)은 모두 이단(異端)이라 하여 일체배척(一切排斥)하다가 학풍(學風)이 편협(偏狹)하고 사상(思想)의 침체(沈滯)를 초래(招來)하니, 이는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함이다.
이조(李朝)의 중종(中宗)때에 정문익(鄭文翼)과 조정암(趙靜庵)의 정책(政策)이 상위(相違)하고, 선조(宣祖)때에 이동고(李東皐)와 이율곡(李栗谷)의 의견(意見)이 불합(不合)하니, 이 사인(四人)은 모두 일대(一代)의 명현(名賢)으로서 거기에 숙선숙부(孰善孰否)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이(相異)한 바는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노련(老鍊)한 정치가(政治家)이라 청탁(淸濁)을 병탄(倂呑)하는 도량(度量)이 있어 현실(現實)을 중시(重視)하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신진기예(新進氣銳)의 유사(儒士)이라, 청신(淸新)을 숭상(崇尙)하고 타협(妥協)을 싫어하는 기개(氣槩)가 있어 이상(理想)을 동경(憧憬)함이라, 이로써 보면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보수(保守)라 할 수 있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혁신(革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익(文翼)이 혁신(革新)의 건백(建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암주(暗主)의 밑에서 시세(時勢)를 참작(參酌)하여 점진(漸進)하려 한 것이오, 동고(東皐)가 역시(亦是) 혁신(革新)을 기피(忌避)한 것이 아니라, 신립(新立)한 유주(幼主)를 보도(輔導)하면서 일신(日新)하려 한 것이니, 이 사현(四賢)의 행적(行蹟)은 사회(社會)의 변통기(變通期)에 처(處)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하는 길이 얼마나 간험(艱險)하다는 것을 우리 후인(後人)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註一. 豐卦 彖傳
註二. 泰卦 九三爻辭
註三. 繫辭下傳 第二章
註四. 革卦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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