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鬼神)의 이(理)와 정치(政治)
이와 같이 귀신(鬼神)이라 함은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사후(死後)에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귀신(鬼神)이 되며, 그 작용(作用)은 영통(靈通)하고 변화막측(變化莫測)하여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고 심원(深遠)과 미래(未來)의 일을 통지(洞知)하며,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주고 특(特)히 기(氣)의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겸허(謙虛)하는 자(者)를 복우(福佑)한다. 그러나 귀신(鬼神)은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 소장(消長)․성쇠(盛衰)가 있어, 어느 기간(期間)을 지나면 스스로 소산(消散)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植物)과 동물(動物), 동물(動物)과 사람과의 사이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서로 분리(分離)할 수 없는 관련(關聯)이 있음과 같이 사람과 귀신(鬼神)과의 사이에도 서로 감응(感應)하는 이(理)가 있으니 이를 천인감응(天人感應) 또는 신인감응(神人感應)이라 한다. 역(易)에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 역(易)은 사(思)도 없고 위(爲)도 없고 적연(寂然)히 동(動)치 아니하다가 감(感)하매 드디어 천하(天下)의 고(故)를 통(通)하나니, 천하(天下)의 지신(至神)함이 아니면 누가 능(能)히 이에 여(與)하리오」【註十六】하고, 또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 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오,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이니, 이가 써 변화(變化)를 이루고 귀신(鬼神)을 행(行)하는 바이라」【註十七】하니, 이것은 모두 귀신(鬼神)과 사람이 서로 감응(感應)함을 말함이오, 또 「變化云爲 吉事有祥 =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함에 길사(吉事)는 상(祥)이 있다」【註十八】하니, 이는 사물(事物)의 변화(變化)와 언어(言語)․동작(動作)에 길(吉)한 일에는 경복(慶福)의 징조(徵兆)가 나타나고, 흉(凶)한 일에는 재이(災異)의 징조(徵兆)가 나타남을 말함인데, 이것도 귀신(鬼神)과 사람의 감응(感應)하는 이(理)에 의(依)하여 장차(將且) 길흉(吉凶)이 있을 때에는 귀신(鬼神)이 먼저 그 전조(前兆)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귀신(鬼神)의 영통(靈通)․변화(變化)․감응(感應) 등(等) 작용(作用)으로써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 합(合)하고 이상적(理想的)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라 하여, 귀신(鬼神)의 이(理)를 실제(實際)의 정치면(政治面)에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귀신(鬼神)의 이(理)라 함은 신도(神道)․신화(神化)․신물(神物) 등(等)으로 정치(政治)를 행(行)하여,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마치 새가 공중(空中)을 비행(飛行)하고 짐승이 임중(林中)을 주약(走躍)하고 고기가 수중(水中)을 잠영(潛泳)하되 스스로 그 비행(飛行)․주약(走躍)․ 잠영(潛泳)하는 까닭을 알지 못함과 같이, 자연(自然)스러운 정치(政治)속에서 그 생존(生存)을 즐겨 하되, 그것이 누구의 덕택(德澤)인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도(神道)라 함은 역(易)에 「聖人以神道 設敎而天下服矣 = 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써 교(敎)를 설(設)하매 천하(天下)가 복(服)한다」【註十九】함과 같이, 이간정치(易簡政治)를 말함이오, 신화(神化)라 함은 역(易)에「神而化之 使民宜之 = 신(神)하고 화(化)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 한다」【註二十】함과 같이, 사물(事物)이 궁(窮)에 이르는 때에 자연(自然)스럽게 변통(變通)하여, 백성(百姓)이 모두 스스로 그 소의(所宜)를 얻음을 말함이오, 신물(神物)이라 함은 역(易)에「是興神物 以前民用 = 이에 신물(神物)을 흥(興)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前)한다」【註二十一】함과 같이, 민중(民衆)이 기한(飢寒)한 후(後)에 비로소 경직(耕織)을 준비(準備)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將且) 기한(飢寒)이 있을 것을 예료(豫料)하여 미리 그에 대비(對備)하고, 제방(堤防)이 터진 후(後)에 비로소 치수(治水)를 논의(論議)하는 것이 아니라, 터지지 아니 하도록 미리 수축(修築)하는것 등(等)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귀신(鬼神)의 이(理)를 천명(闡明)한 것은 다만 귀신(鬼神)을 말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오, 전(專)혀 그 이(理)를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응용(應用)하기 위(爲)함이다.
註一. 豐卦彖傳
註二. 乾卦文言
註三. 謙卦彖傳
註四. 論語 先進篇
註五. 繫辭上傳 第二章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
註七. 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篇
註八. 說卦傳 第六章
註九. 乾卦文言
註十. 繫辭上傳 第四章
註十一.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十三. 同上
註十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十五. 同上
註十六.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七. 繫辭上傳 第九章
註十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十九. 觀卦彖傳
註二十. 繫辭下傳 第二章
註二十一. 繫辭上傳 第十一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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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으로 본 수(數)와 상(象)과의 관계(關係)
‣수(數)와 상(象)
사람의 지식(知識)에는 두 가지의 최대최고(最大最高)한 것이 있으니 그 하나는 공간적(空間的)으로 유심(幽深)한 사물(事物)을 통지(洞知)하는 것이오 또 하나는 시간적(時間的)으로 미래사(未來事)를 선견(先見)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하기 위(爲)하여 이 두 가지 지식(知識)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학문(學問)이니, 역(易)에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 그 역(易)은 성인(聖人)의 써 심(深)을 극(極)하고 기(幾)를 연(硏)하는 바이라, 이 심(深)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지(志)를 통(通)하고, 이 기(幾)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무(務)를 성(成)한다 」【註一】한바, 심(深)은 유심(幽深)함이오 기(幾)는 미래사(未來事)의 기미(機微)이라, 이는 유심(幽深)을 통지(洞知)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의지(意志)를 통조(通照)하고, 기미(機微)를 선견(先見)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업무(業務)를 성수(成遂)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는 반드시 수(數)와 상(象)이 있으니, 상(象)은 수(數)가 아니면 입(立)치 못하고, 수(數)는 상(象)이 아니면 나타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수(數)를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수(數)는 체(體)가되고 상(象)은 용(用)이 되며, 상(象)을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상(象)은 체(體)가되고 수(數)는 용(用)이 되어, 수(數)와 상(象)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데, 역학(易學)이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고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는 방법(方法)은 주(主)로 수(數)와 상(象)의 이(理)를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역(易)에「知來者逆 是故易逆數也 = 내(來)를 지(知)하는 자(者)는 역(逆)하는지라 이런 고(故)로 역(易)은 역수(逆數)라」【註二】하고, 또 「極其數 遂定天下之象 = 그 수(數)를 극(極)하여 드디어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定)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이 「理之錯綜處 在數上分曉 = 이(理)의 착종(錯綜)한 곳은 수(數)의 상(上)에서 분효(分曉)한다」【註四】함은, 수(數)로써 이(理)를 명효(明曉)함을 말함이니, 지금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수학(數學)과 물상(物象)으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사물(事物)을 천명(闡明)하는 것도 또한 이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自然界)의 수(數)와 상(象)은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 등(等)으로써 정확(正確)하게 표출(表出)할 수가 있으나, 복잡(複雜)하고 미묘(微妙)하고 기복곡절(起伏曲折)이 많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대(對)하여는,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만으로서 공식(公式)을 만들기도 어렵고 이론(理論)을 전개(展開)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는 까닭이다. 즉(卽)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력(强力)히 작용(作用)하고 있어 사물(事物)의 변화(變化)가 자연계(自然界)보다 격심(激甚)하고 또 전변번복(轉變飜覆)이 무상(無常)한 까닭에 금일(今日)의 공식(公式)이 반드시 명일(明日)의 공식(公式)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이곳의 물리학적(物理學的) 계산(計算)이 반드시 저곳에도 적용(適用)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연물(自然物)의 일분자(一分子)이오 그 사람으로서 구성(構成)된 사회(社會)도 또한 자연물(自然物)의 일부(一部)이니 자연물(自然物)에 적용(適用)되는 수(數)와 상(象)이 인생사회(人生社會)에 적용(適用)되지 못할 이(理)가 없음으로 그를 척도양형(尺度量衡)하는 수(數)는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는 개산(槪算)이 아니면 안되고, 그 상(象)은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황(槪況)이 아니면 안된다. 지금에 흔히 쓰고 있는 사회통계(社會統計) 같은 것은 그 조사범위(調査範圍)나 조사사항(調査事項) 등(等)으로 볼 때에 그 대부분(大部分)은 결(決)코 정확(正確)한 것이 아니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에 불과(不過)한 것이지만 이것으로써 사회상태(社會狀態)를 대강(大綱) 파악(把握)하고 통관(通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이라, 공간적(空間的)으로는 개체(個體)를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통체(統體)를 알고, 분석(分析)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종합(綜合)을 알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현실(現實)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이상(理想)을 알고 금일(今日)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미래(未來)를 아는 학문(學問)이므로, 역학(易學)이 쓰고 있는 수(數)와 상(象)은 범위(範圍)와 준사(準似), 즉(卽)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비록 정확(正確)치 못한 듯 하나,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사회사물(社會事物)에 있어서는, 수학적(數學的)공식(公式)이나 물리학적(物理學的)계산(計算)보다, 이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고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도리어 정확(正確)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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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역(易)에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 하(河)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洛)에서 서(書)가 나오니 성인(聖人)이 칙(則)하다」【註五】함은, 성인(聖人)이 역학(易學)을 지을 때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본받음을 말함이오, 또「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 천(天)이 일(一)이오 지(地)가 이(二)이오 천(天)이 삼(三)이오 지(地)가 사(四)이오 천(天)이 오(五)이오 지(地)가 육(六)이오 천(天)이 칠(七)이오 지(地)가 팔(八)이오 천(天)이 구(九)이오 지(地)가 십(十)이니, 천수(天數)가 오(五)이오 지수(地數)가 오(五)이라, 오위(五位)가 상득(相得)하여 각각(各各) 합(合)함이 있으니,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니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라」【註六】하여,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를 천지수(天地數)의 원수(原數)라 하고,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의 기수(奇數)를 천수(天數)라 하니 천수(天數)는 곧 양수(陽數)이오,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의 우수(偶數)를 지수(地數)라 하니 지수(地數)는 곧 음수(陰數)이다. 하도(河圖)는 일(一)로부터 십(十)까지의 수(數)를 모두 쓰고, 낙서(洛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의 수(數)만을 쓰는 것이니, 이가 역학(易學)의 수리(數理)의 근원(根源)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이(理)를 수학(數學)으로써 보건대 수(數)의 원체(原體)는 십(十)을 일단계(一段階)로하여 십(十)․이십(二十)․삼십(三十) 등(等)으로 표시(表示)하고 있으나, 실제(實際)로 사용(使用)하는 수자(數字)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만 있고, 십(十)은 다시 일(一)로써 표시(表示)하고 있으니,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는 수(數)의 체(體)이오,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는 수(數)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하도(河圖)는 수(數)의 체(體)가되어 음수(陰數)와 양수(陽數)가 모두 교합(交合)하는 조직체(組織體)를 상(象)함이오, 낙서(洛書)는 수(數)의 용(用)이되어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운행력(運行力)을 상(象)함이다. 이 이(理)를 사물(事物)에 의(擬)하건대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에는 칠색(七色)이 있으나 적외선(赤外線)과 자외선(紫外線)을 합(合)하면 모두 구선(九線)이되니,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은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낙서(洛書)의 수(數)와 같은 것이오,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이 있으나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에 비치는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의 외(外)에 월(月)을 통(通)하여 구선(九線)을 통일(統一) 반영(反映)하는 제십선(第十線)이 있어 합(合)하여 십선(十線)이 되니 일월(日月)의 십선(十線)은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하는 하도(河圖)의 수(數)와 같은 것이다. 인체(人體)로써 보면 양성(陽性)은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칠규(七竅)와 전후(前後) 양음(陽陰)의 이규(二竅)를 합(合)하여 구규(九竅)가 있으니, 이는 낙서(洛書)의 상(象)이오, 음성(陰性)은 구규(九竅)의 외(外)에 음양(陰陽)의 교합작용(交合作用)을 행(行)하는 제십규(第十竅)가 있으니, 이는 하도(河圖)의 상(象)이다. 월(月)은 광선(光線)의 제십선(第十線)이 되어 지상(地上)의 조석풍우(潮汐風雨)에 대(對)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는데, 사람의 음성(陰性)이 또한 월(月)의 행도(行度)를 따라서 제십규(第十竅)로써 월경작용(月經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며, 십수(十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를 통일(統一)한 수(數)임과 같이, 월광선(月光線)은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을 통일(統一)하여 반영(反映)하는 것이오, 사람의 제십(第十)도 다른 구규(九竅)와 같은 일편(一偏)의 역(役)을 행(行)하는 것이 아니라, 실(實)로 구규(九竅)를 통일(統一)한 완전인간(完全人間)을 생산(生産)하는 임무(任務)를 다하고 있으며, 사람의 임신(姙娠)은 대체(大體)로 음력(陰曆)으로 십개월(十個月)을 요(要)하니 이는 하도(河圖)의 십수(十數)이오, 모복중(母腹中)에서 구차(九次)의 일월합삭(日月合朔)을 지나서 출생(出生)하니 이는 낙서(洛書)의 구수(九數)이다. 하도(河圖)는 체수(體數)이오 낙서(洛書)는 용수(用數)이라, 태아(胎兒)는 십개월(十個月)로써 체(體)를 삼아 태중(胎中)에서 양육(養育)되고, 일월(日月)의 구합삭(九合朔)으로써 용(用)을 삼아 외부(外部)에 출분(出奮)하는 것이니, 이가 음력(陰曆)이 태모(胎母)의 월수계산상(月數計算上), 극(極)히 중요(重要)한 소이(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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